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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오가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평소에는 태무심(殆無心)하던 사물도 자못 신비스럽게 또는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1년 여 하루걸러 하루씩 40여분씩 승용차를 몰고 출퇴근하고 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F.M.라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듣는가 하면, 그날 적을 수필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그러니 마주치는 그 많은 교통안전표지판을 거의 감각적으로 대처한다는 거. 그 일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너무나도 익숙해져 다른 차량들의 흐름이나 보행자들의 횡단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서도 아주 부드럽게 목적지까지 가 닿지 않는가. 이러한 경험은 웬만한 운전경력을 지닌 이라면 거의 비슷할 것이다. 사실 지난날 운전교습소에서 익힌 ‘교통안전표지판’만 하여도 셀 수 없는데... . 주의 표지판·지시표지판·규제표지판·보조표지판 등으로 대별되는 그 많은 표지판들. 그러나 속속들이 다시 익힐 일도 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감각적으로 남들 가는 대로 뒤따라가노라면, 우리네가 정한 그 교통신호약속은 제대로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하여간, 보편적인 삶이야말로 무리수가 따르지 않는 법이다.
오늘은, 그렇게 오갔던 길에서 마주친 각종 교통안전표지판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길을 가노라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난다’고 하였다. 참, 여기서 일컫는 ‘중’은 ‘중[僧]’이 아니라 ‘中’이며 ‘소’는 ‘소[牛]’가 아닌 ‘小’내지 ‘少’라고 하였다. 살다보면, 윷판에서처럼 좋고 바람직하며 큰[大] ‘윷’이나 ‘모’도 얻을 수 있지만, 차선(次善)의 ‘도’나 ‘개’도 만나게 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들었다. 60여 년 살아온 나의 길이, 내가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그 길과 어쩌면 그리도 흡사할까. 숱한 신호등으로 말미암아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것과도 비슷하기만 하고. 중간중간 신호대기를 해야 할,지루한 구간도 참으로 많았으나, 끝내는 자신이 가고자 하였던 목적지에 도달하더라는 거. 저 독일의 자동차 전용도로 ‘아우토반(autobahn)’의 경우, 속도무제한 구간은 130km/h가 허용되어, 거의 무한질주가 가능하다는데, 돌이켜보니 인생은 그렇게 무한질주할 일까지도 없었던 거 같다. 그저 남들한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게 우리네 삶이더라는 거.
나는 오늘 승용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승용차 전조등에 반사되는 차선과 신호등을 보면서 또 다른 ‘길’을 떠올린다. 우선, 1954년 이탈리아 명화(名畵) <길(la strada)>. 거칠고 힘센 서커스 차력사 ‘잠파노’와 그로부터 학대받으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어린애같이 순진무구한 백치(白痴) 젤소미나. 그들은 함께 다음 서커스장을 향해 길을 떠나곤 하였다. 젤소미나의 트럼펫소리는 잔잔한 슬픔이 배어나오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작품 <서편제>도 떠오른다. 작품 속 소리꾼‘유봉’은 양녀(養女) ‘송화’가 자기 곁을 훌쩍 떠날세라, 그녀의 눈을 고의로 멀게 한다. 그리고는 다그친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해질녘, 사위(四圍)는 어두워지는데, 그들 부녀는 악기를 메고 소리를 하면서 길을 떠난다. 그 길도 슬픔이 배어나온다. 어디 그것뿐이더냐? 1989년 윤근택 수필가의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에는 ‘해질녘’이란 수필이 실려 있다. 각자 자전거의 핸들을 잡고, 술에 취해 비틀대며 동행하여 귀가하는 동네 어른과 작가의 수작(酬酌)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 시골길은 시오 리 되었으며 저녁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여류수필가는 그 ‘해질녘’이란 수필을 읽고서, <서편제>를 연상했다고 말한 적 있다. 길은, 미국 개척시대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에 닿으면, ‘가지않은 길’이란 시가 된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시. 내가 위에서 소개한 길은 하나같이 쓸쓸한 길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네 삶 자체가 쓸쓸하니... .
내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평소에는 태무심했던 길이며 크게 관심 갖지 않았던 교통안전표지판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의미롭게 다가옴을. 참말로, 60여 년 살아오는 동안 내가 마주쳤던 길과 그 길의 교통표지판은 많기도 하였다. 그 길은 왕래였으며 반복이였지만, 어쨌거나‘앞으로 나아감’이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내일도 이 길을, 승용차를 몰고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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