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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언제부터인가, 나는 밤에도 전등을 밝힌 채 잠을 자는 버릇을 지니고 있다. 농막에서 낮 동안 농주(農酒)에 절인 날 밤은 세상모르고 잠을 자지만, 평소에는 거의 깊은 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천정을 올려다보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퍽이나 많이 하게 된다. 그 천정에, 한 때는 바둑알이, 또 한 때는 낚시의 야광찌가, 또 한 때는 원고지가 아른거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천정에 ‘모빌(mobile)’이 작은 바람에 움직이곤 한다. 사실 모빌은 아가의 방에나 설치되는 것이지만, 수필작가인 나도 늘 아름다운 꿈을 꾼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 ‘모빌’을 최초로 명명한 이는 미국의 조각가 ‘콜더(Calder, Alexander Stirling, 1898~1976)’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유명한 작가‘몬드리안’과 친숙하게 지냈으며 그의 작품을 꽤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는 조각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렇게 해서 창안된 ‘움직이는 미술’ 즉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모빌이라지 않던가. 그 모빌은 아가들 방에 주로 설치되며, 아가들은 그 모빌을 쳐다보며 온갖 꿈을 꾸며 자라나게 된다.
내가 오늘밤 잠이 아니 와서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꾼 꿈은 ‘반자’다. 내 농막의 천정은 ‘피죽’으로 촘촘 붙인 반자인데, 거기다가 황토를 덧발라 마감하였다.
반자란, 방·마루의 천정을 평평하게 만드는 시설을 총칭한다. 그 재료에 따라서는 지반자(紙-), 철반자(鐵-), 토반자(土-), 목반자(木-) 등으로 부른다. 그 모양에 따라서는 우물반자, 소란반자(小欄-),빗반자,장반자,귀접이반자,삿갓반자,연등반자 등등이 있다고 하였다. 기거하는 이들의 취향과 재료구하기 용이함 등의 요인에 따라, 그 재료와 모양도 다를 것은 뻔하다.
반자의 기능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그 위에 올려진 ‘알매’와 또 그 알매 위에 얹힐 기와나 이엉이나 너와 등의 지붕 무게를 온전히 지탱해야 한다. 참, ‘알매’란, 지붕을 이기 전에 산자(橵子) 위에 이겨 바르는 흙을 일컫고, 내 고향 쪽에서는 주로 ‘알매받다’꼴로 쓰였다. 반자는 철로에 깔린 갱목(坑木)이나 갱도(坑道)를 받치는 갱목과 그 기능면에서는 같은 역할을 한다. 좌우지간 이것들은 그 무엇을 장구히 받쳐야 한다. 그것이 숙명이다. 나는 그저 수수하기만 한 천정 아래서, 아니 반자 아래서 밤마다 꿈을 꾼다. 천정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전혀 없다. 비교적 견고하다는 것을.
수필작가인 나는, 환갑 나이의 나는, 더는 늙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 밤 반자와 관련된 어휘와 그 어휘가 지닌 뜻도 마치 주문(呪文)을 외우듯 하나하나 읊어대는 이유도 기억력 보존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반자틀, 반자대, 반자대받이 ... 달대, 달대받이, 다라니 반자, 연등반자(燃燈-),눈썹천정 ... . 내 읊어댐은 반자에 관한 사항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에 낀 창호(窓戶)를 보면서도 마구 읊어댄다. 그러면 내 근심이 사라지고 쓸쓸함도 사라져 곤히 잠이 들성싶어서.
‘ 귀자창, 귀갑창, 띠살창 ... 완자살창, 빗살창, 정자살창 ... 솟대살창, 용자살창, 솟을빗살창, 불발기 ... .’
* 이 글을 쓰는 동안 도와준 음악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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