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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궈야 열려
    수필/신작 2017. 11. 8. 20:12

     

     

                              달궈야 열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앎이란, 참으로 살맛을 더해준다. 일전에는 내가 전기·영선(營繕) 주임으로 근무하는 아파트의 소화전 밸브 하나가 말썽을 부렸다. 물이 조금씩 새어서 복도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설치한 지 너무 오래 되어, 밸브의 고무 패킹이 찌그러졌거나 찢어져서 생긴 일로 추정되었다. 파이프렌치 등의 연장으로 열어, 그 고무패킹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면 될 성싶은데, 도대체가 열려야지. 일단, 배운 대로, 평소 즐겨 쓰는 대로 ‘WD-40’라는 다목적 윤활방청제를 너트에 듬뿍 분사(噴射)했다. 그런 다음 하루 정도를 기다려보는 게 상책이라고 하였다. 사실 이‘WD-40’이란 분사액은, ‘Water-displace(물기 내지 습기 제거)’의 약자이며, ‘-40’은 그 약제 시리즈물 1~39 다음에 나왔음을 뜻한다. 직전의 시리즈물까지는 모두 실패작이었으나, 40번째 시리즈물이 대박을 터뜨린 거라지 않은가. 거의 만능이다.

    이튿날. 파이프렌치로 밸브의 너트를 풀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난감해하며 관리사무소로 돌아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고 있었다. 그러자 20여 년 아파트 관리소장직을 지낸 관리소장이 일렀다.

    윤 주임, 이번에도 지난번에 내가 일러준 그 방법을 써 보시오. 핸드토치램프 말이오. ”

    아차, 그걸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과연 현장 실무경험이 많은 관리소장의 말이 옳았다. 나는 부탄가스를 장착한 핸드토치램프에 불을 댕기고 쐐애밸브의 너트 부위를 달구었다. 그러기를 5분여? 그런 다음 파이프렌치로 너트를 채우고 풀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풀렸다. 24년여 볼트와 너트가 마치 한 몸체처럼 엉겨붙어 지냈으나, 가해지는 열로 인해 틈새가 벌어져 그렇게 풀린 것이다.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볼트와 너트가 엉겨붙고 녹슬어 한 몸체가 되다시피한 걸 전문용어로 ‘bond’라고 한다는데, 그걸 풀어내는 데는 뜨거운 열이 주효(奏效)하다는 것을. 지난날 물리시간에 배운 열팽창계수니 선팽창계수니 바이메탈이니 하는 것들이 적용된 사례이겠거니.

    짓궂기로 따져, ‘키치(kitsch)’도 서슴지 않는 이 수필작가가, 그 이야기로만 끝낼 성싶은가. 문득, 겨울철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홍합을 안주삼아 소줏잔을 나눌 적에 내가 즐겨 썼던 말이 떠오른다.

    하여간, 조개는 (불에) 달구어야 벌어져. 벌어지지 않는 홍합은 열어볼 것도 없이 모두 쭉정이인 걸.”

    참말로 그랬다. 다들 조개구이집에 가서 술을 마실 때 경험했겠지만, 석쇠 위에 얹힌 조개들은 숯불에 달궈지면 서서히 다물었던 입을 열게 된다. 생짜 조개는 웬만해서는 열리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아무리 다그쳐도 묵묵부답인 걸 조개 입 닫듯 한다고 할까. 사실 나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인터넷 영상물을 통해 어떤 이가가라비를 핸드토치램프로 열을 가해 강제적으로 입을 열게 하는 걸 보았다. , 바다가재가 백합조개를 앞 다리로 마구 망치질하듯 하여 깨부수어 속을 내어 먹는 영상물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날 나는 감성돔 갯바위낚시를 할 적에는 갯바위에 붙은 홍합을 망치로 깨어 그 속을 낚시밥으로 쓴 적도 있다. 감성돔은 억센 주둥이로 조개류의 껍질을 잘도 깨어 그 속을 내어먹는다는 점을 알고 지냈기에. 갯가의 아낙네들은 갈고리로 굴 껍질을 깨뜨려 그 속을 잘도 모으곤 했다.

    , 이야기를 한번 중간정리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아예 깨부수지 않는 한 녹슨 너트나 조개는 열을 가함으로써 쉽게 열 수 있다.

    다시 조개 이야기다. 조개는 두 종류의 힘살을 지니고 있단다. 입을 꼭 다물게 하는 힘살은 폐각근(閉殼筋), 입을 열게 하는 힘살은 접번인대(蝶番靭帶). 이들 두 힘살은 이른바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한다는 거 아닌가. 길항작용이란, 상반되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작용을 일컬으며, 생물체 내의 두가지 물질이 어떤 현상에 대해 서로의 역할과 반대로 작용하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종류의 힘살은 우리네 신체 50여 군데에서 작용한다는 괄약근(括約筋) 같은 거. 조개의 이 두 종류의 힘살을 실생활에 적용한 게 ‘007가방으로도 알려져 있다.

    힘살을 지닌 조개를 생각하자니, 이번에는 짝짝이로도 부르는 캐스터네츠(castanets)’악기가 떠오른다. 에스파냐와 이탈리아에서 댄스리듬에 쓰이기 시작했다는 이 짝짝이야말로 가리비조개를 연상케 하고, 그 손잡이쪽 긴장과 이완의 스프링도 조개의 두 힘살을 그대로 응용한 거라고 볼 수 있겠다.

    하여간, 녹슨 너트든 조개든 굽거나 삶으면 쉬이 열린다. 굳이, 이솝의 우화 해와 찬바람의 내기를 예로 들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열기(熱氣)의 위력은 대단하다. 결국 남녀간의 사랑의 노른자위도 열기다. , , ... . 조개, 조개, 조개 ...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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