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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머리
    수필/신작 2017. 11. 12. 11:26

     

                                   일머리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경험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고, ‘trial and error(試行錯誤)’란 말도 있다. 어떠한 일을 행할 때에 선지자(先知者) 내지 선각자(先覺者)가 일러주는 대로만 고분고분 따라도 시행착오는 퍽 줄어들게 된다. 이는 사고(思考)가 말랑말랑한 이한테만 통한다. 그러나 벽창우(碧昌牛)는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 벽창우란,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成) 지방에서 나는 크고 억센 소에서 비롯된 비유적 표현이라는 거. 그러나 일을 처리할 적에, 철학에서 말하는, ‘실존(實存)은 본질(本質)에 앞선다.’에만 머물러서도 곤란하다. , 그 이치를 끝까지 따져볼 생각은 않고 그저내 아버지도 이렇게 하던데... .’하면서 저항없이 답습(踏襲)한다면, 능률도 아니 오르고 발전도 없게 된다.

    경험과 선지자의 조언에다 그 어떤 요소가 더해져야 비로소 그 분야에 달인(達人)이 된다. 그 어떤 요소란, 바로 일머리를 일컫는다. 일머리는, 어떤 일의 내용· 방법· 절차 따위의 중요한 줄거리를 이르며, ‘(그는) 일머리가 틔었다.’꼴로 주로 쓰인다.

    이제부터 내가 귀촌(歸村)하여 15년여 농사를 하면서 깨친 일머리에 관해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 모든 연장을 전동그라인더나 숫돌에 갈아 쓰기

     

    몇 해 전 나는 경산 하양읍에 소재한 묘목단지의 어느 농원에 날품팔이를 간 적 있다. 그날 나를 포함한 인부들한테 부여된 일은 감나무 하찌( はち,, )뜨기’. 하찌뜨기란, 나이가 든 수목을 이식하기에 앞서, 제법 크게 마치 방아확 크기만치 흙을 붙여 철사나 고무밧줄로 탱탱 감는 걸 일컫는다. 우리말로는 ()뜨기일 테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하여간, 나도 일행들이 일러주는 대로 작업을 하여야 했는데, 농장주로부터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윤근택씨, 농장에 일을 하러 나서면서 안전화가 아닌, 장화를 신고 오다니요?”

    이 무슨 말이냐고? 안전화는 밑바닥에 철판이 깔려 삽을 콱콱밟을 때 힘이 실리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하찌뜨기에는 삽날이 마치 칼처럼 날카로워야 웬만한 잔뿌리 등이 잘려 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부들은 수시로 톱을 스는 야스리(やすり,, )’로 삽날을 갈아댔다. 삽날을 갈되, 바깥쪽이 아닌 안쪽을 마치 윈도우브러쉬가 작동하듯 줄을 좌우로 흔들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양친은 한평생 삽이나 괭이나 호미를 그렇게 갈아서 사용한 적 없었고, 우리도 당연히 날 무딘 연장들을 저항없이 받아들여 양친의 농사를 돕고 있었다. 그날의 경험은 아주 소중했다. 그날 하루 품삯보다도 더 비싼 교훈을 얻었다. 오히려 수강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만치.요즘 나는 칼이나 톱이나 낫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온갖 연장을 수시로 갈아 쓴다. 전정가위의 경우, 연마하기 위해 날을 분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주 보드라운 물페이퍼[-砂布]를 모나게 접어 날을 갈게 된다. 사실 전정가위의 날을 갈 적에는 날이 아닌 가위 아귀를 갈아야 한다는 거.

    2. 레이크(rake)나 갈퀴나 호퍼괭이로 이랑짓기

     

    한 이랑 건너 이랑에 서야 하고, 전방(前方)으로부터 45도 각도를 유지해야 하며, 자루를 가급적 길게 잡아야 힘이 덜 든다. 그렇게 작업을 하게 되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흙이 많이 그러모아지고, 먼 곳에는 비교적 흙이 덜 덮이게 되는데, 이를 중첩해서 행하면, 결국 원하는 모양의 이랑이 된다.

     

    3. 손수레 끌기 및 왜낫으로 굵은 나뭇가지 베기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되, 지상으로부터 45도 각도로 세워서 잡으면 힘이 최고로 덜 든다.

    왜낫으로도 웬만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벨 수 있는데,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45도 각도로 낫으로 빗당기면, 낫의 날이 이 빠지지 않고 베인다. 나뭇가지와 직각으로 왜낫의 날을 들이대면 아니 된다. 풀을 벨 적에도 낫질은 빗당기기로 행해야 한다. 나무든 풀이든 나름의 결이 있어, 직각으로 낫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4. 파밭[蔥田] 김매기 요령

     

    언젠가 내 농장 단골손님이자 텃밭가꾸기를 하는 넷째누님 내외분이, 파밭에 바랭이풀 등 잡초가 우거져 있자, 김매기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누님, 왜 그렇게 생고생을 해요?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한 번 반대로 해 보세요. 아예 파를 모조리 뽑아 한 군데 수북 가식(假植)을 하고 물을 듬뿍 주세요. 그런 다음 제초제를 온 밭에다 확 쳐버리고 며칠 지난 다음에 그 파를 다시 심으면 될 것 아닙니까?”

    고정관념은 언제든지 깰 필요가 있다. 들깨며 콩이며 배추며 옥수수며 몇몇 작물은 직파(直播)가 아닌 모종 이식이 생력농법(省力農法)에 이바지한다. 어차피 농사란, 본인의 인건비 따먹기이니, 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걸 일러, ‘생력화라고 한다. 이는 농업의 기본지식이다. 따로 모판에서 모를 내는 것은, 병충방제나 비배(肥培)에도 도움이 되지만, 본밭에 우거진 잡초를 로터리작업 또는 제초제 살포 등으로 박멸한 이후에 작물을 이식하게 되는 이점(利點)도 있다는 것을.

     

    이밖에도 내가 터득한 일머리는 꽤나 많지만, 모두 생략키로 한다. 대신, 수필작가인 나는 이 글을 통해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달리 전할 게 있다. 사진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초상화를 세밀하게 그리는 화가가 장땡이었다. 저 스페인의 빼어난 궁중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1599~1660), 어찌나 실물과 같이 초상화를 그렸으면, 궁중전속화가의 지위까지 누렸을까.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온 피카소는 젊은 시절, 자신의 나라 대선배 화가인 벨라스케스를 흉내 내려고 그의 한 작품을 무려 50회 이상 베껴 그려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하여 탄식했다지 않던가. 하지만, 피카소는 후일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화를 구현해 내었다. 사진기가 나와 대중화된 지금은 벨라스케스 같은 세밀화 화가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사실. 텃밭가꾸기나 화단가꾸기가 아닌 이상, 농사도 마찬가지다. 100여 평이 넘으면 대충철저내지는 얼렁뚱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머리가 아니 되면, 속된 말로 개고생을 하게 된다. 참말로, 수필창작에도 일머리가 예외일 수 없다. 나는 30여 년째 수필작품을 줄기차게 적어 왔고, 요즘은 이틀마다 한 편 꼴로 적고 있는데, 골격 즉 프레임만 제대로 갖추면 된다는 걸 차츰 알아가게 된다. 골격을 갖춘 다음, 적당하게 살만 붙이면 된다는 것을. 굳이, 세밀화를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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