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랑잎'에 관해
    수필/신작 2017. 11. 12. 21:59

     

     

                  가랑잎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것들한테는 더 이상 고유명사가 없다. 다들 개성도 버린다. 그저 뭉뚱그려 가랑잎이라고 부르는 데 만족해한다. 활엽수에서 떨어진 잎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가랑잎. 그처럼 총칭으로만 통한다. 일찍이 시인 김광균(金光均)추일서정(秋日抒情)’이란 시에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노래했지만, 참말로 더 이상은 은행나무잎이니 떡갈나무잎이니 복자기나무잎이니 느티나무잎이니 따위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싸잡아 가랑잎으로 부른다.

    늦가을, 바람에 우르르우르르몰려다니는 가랑잎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다. 특히, 내가 어느 아파트 관리실 관리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터라, 환경미화원들과 경비요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진종일 낙엽과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

    잎겨드랑이[葉腋]에 생성되는 떨켜[離層]로 말미암아 한 생애를 마감한 잎새들. 그것들은 미련없이 잎겨드랑이를 떠나게 된다. 물론 자신들 잎자루로 붙어, 본체(本體)한테 광합성이며 그늘 지움이며 호흡이며 온갖 머슴 역할을 다 수행한 다음에 그렇게 홀가분하게 떠난다. 그 자리에는 새봄과 함께 자신들이 수행했던 임무를 대행해줄 잎눈[葉芽]을 하나씩 남겨두고. 후사(後嗣)를 두지 못한 잎사귀들은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여 가지에 남아 대롱거리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順命)하는 자들.

    그것들이 지녔던 개성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나란히맥이니 그물맥이니 더 이상 소용치 않다. 그 가장자리 생김새를 따져, ‘전연(全緣)이니, 파상(波狀)이니, 예거치(銳鋸齒)이니 ... 전열(全裂)이니마저 더 이상 소용이 없다. 그저 바람에 이리저리 쫓기다시피 해서 어느 곳에 모이면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통틀어 가랑잎이라고 불리면 된다. 그 색깔이 고왔든 추했든, 짙었든 옅었든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볕에 바래어 하나같이 짙은 갈색이 되고,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하더라도, 그것들을 퇴락(頹落)했다거나 쇠락(衰落)했다거나 탈락(脫落)했다거나 내 편의에 따라 함부로 말하기는 싫다. 그것들도 여느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흙에서 왔으니 온전한 부엽토(腐葉土)로 돌아가,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수목의 자양분이 되는 까닭에.

    내가 지금 꽤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다면, 몇 해 전 나도 몇몇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그 잎사귀들의 떨켜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교란시켰다는 거. 대체, 어떤 일이 있었냐고? 농약회사 연구진들은, 떨켜가 생성되는 데에는 옥신’, ‘에틸렌’, ‘아브시스산등의 물질이 간여하고, 이들 물질의 농도에 따라 낙엽 시기나 결실 시기가 달라진다는 걸 알아내었다. 해서, ‘에틸렌 가스를 발생시켜 잎들을 질식시키는(?) 농약을 개발해내었다. 나는 무서리가 오기 전에 고추밭에다 에틸렌 가스를 발생시키는 이른바 생장조절제를 한 바탕 살포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고, 끝물고추까지 마저 익더라는 거 아닌가.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 하나, 내 욕심으로 작물의 생장을 그렇게 임의적으로 조작했으니... . 그 이후 다시는 그러한 짓을 아니 하지만, 여전히 후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잎들마저도 생명체인 관계로, 자신의 생명 사이클대로 천명(天命)을 다 하고 떠나야 옳은 것이니까.

    가랑잎, 그것들한테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느 나무의 잎입네 고유명사가 없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천명을 다하고 떠나는 자들이기에, 그냥 우리가 가랑잎이라고 통칭하여도 불평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하느님의 소명(召命)을 기꺼이 따르는 자들. 솔잎이 그것들을 바스락댄다고 비아냥댈지라도...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품격 있는 외교  (0) 2017.11.17
    어떤 우정과 어떤 아내 사랑  (0) 2017.11.15
    일머리  (0) 2017.11.12
    풀매듭  (0) 2017.11.11
    ‘실리콘(silicone)’에 관해  (0) 2017.11.1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