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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ork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어찌어찌 하여 그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자, 벨이 채 두 번도 아니 울었음에도 전화를 받았다.
“박 과장님, 오래간만입니다. 지난 해 ‘범어롯데캐슬’에 근무했던 윤근택입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내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어르신, 지금도 그곳 ‘00보성1차’에 근무하시죠?”
그는 나의 정보를 좔좔 꿰고 있었다. 용역회사의 아파트경비원 관리책인 그. 그는 웬만한 자기 사람 내지 자기 고객을 그렇듯 스마트폰을 통해 관리하는가 보다. 그의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놀랍기만 하다. 참말로, 그러한 걸 두고‘인적 네트워크’라 한다. ‘그물망’으로도 번역되는 ‘net-work’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기로 하고... .
대개, 용역회사에 소속된 아파트 전기주임이나 경비원들은 계약기간이 1년이고, 1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일전, 나는 사용자측으로부터 계약만료 예고통지를 구두로 받은 바 있다. 사실 ‘갑(甲)’과 ‘을(乙)’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적에는 재계약이 이루어지거늘, 어떤 별난 입주자가 중상모략해서 ... .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60여 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터라, 다시 한 차례 보따리만 싸면 될 일. 이력서 양식도 이미 20장 정도 복사를 해두었으며, 내일 명함판 사진도 현상을 할 것이다. 해서, 지금은 소속사가 다른 그 용역회사의 박 과장한테, 다시 전기주임이 아닌 경비원으로 돌아갈 테니, 내 집이 있는 경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가 나거들랑 뽑아달라고 미리 부탁을 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이 ‘용역의 세계’에서는 배신이니 충성이니는 크게 문제가 아니 된다. 입주민들과 마찰만 빚지 않으면, 그런 대로 쓸 만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어쨌든, 나는 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테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더욱이, 나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가가 아니냐고?
지금부터는 미뤄뒀던 ‘net-work’이야기다. 이를 억지로 파자(破字)하면, ‘그물(net)’이 하는 ‘일(work)’이 된다. 그 그물의 위력이라는 게 어지간하다. 통신망· 물고기 그물· 관계 등을 두루 나타내는 ‘net-work’. 실은, ‘net’로만 써도 그 뜻은 그대로 간직하나,‘-work’를 붙이면 그 뜻이 더 명료해지며, 역동성(力動性)까지 띠게 되는 듯하다. 위에서 소개한 용역회사 박과장의 경우, 통신망 내지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되, 그처럼 정교한 그물망을 구축한 듯. 다시 말하거니와, 그러한 걸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나는 어느 악질적인 입주자가 아주 촘촘하게 쳐둔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그의 그물망은 질기기도 하려니와 그 그물눈[網目, mesh]이 드럽게도(?) 촘촘하였다. 그는 심야든 우중(雨中)이든 가릴 것 없이 관리사무소에 나타나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삼동(三冬)의 염소마냥 입 아니 되는 구석이 없는데다가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언성은 또 어찌나 높은지. 한번은 내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사무실에 찾아온 그에게 나직하게 충고를 했다.
“입주자님, 그러한 이야기는 관리소장을 통하든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에 의견 개진을 하든지 해서 저희한테 명령이 떨어져야지요. 일개 직원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저희 관리소장은 로봇이 되지 않아요? 또, 선생님은 입주자 대표회의 등에 대표성이 없잖아요. ”
그랬던 것이... . 내가 작업한 몇몇 전기공사를 표적으로 삼아 일일이 감사(?)를 하여 기술이 있느니 마느니 하는가 하면, 어느 세대에서 부탁한(?) 감을 한 박스 선물로 갖다 준 걸 두고,“일과 중에 감 장사나 하고 말이지!”하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등 후환(後患) 아닌 후환을 낳아서... . 본인은 매우 고소할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그물은 아무짝에도 못 쓰는 그물이다. 훗날 그 그물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그물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왜? 물은 물 대로, 죄는 죄 대로이니까. 더군다나이 글을 적는 이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수필작가이니까.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펜은 총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그는 내가 이미 적은 ‘WD-40’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물’에 관한 명언은 단연 노자(老子)의 <道德經>. 그 책 제 73장 <任爲>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勇於憨萴殺(용어감즉살)
勇於不敢則活(용어감불감즉활)
此兩者(차양자),
或利或害(혹이혹해).
天之所惡(천지소오)
孰知其故(숙지이고)?
是以聖人猶難之(시이성인유난지),
天之道(천지도),
不爭而善勝(부쟁이선승)
不言而善應(불언이선응)
不召而自來(불소이자래)
繟然而善謀(천연이선모)
天網恢恢(천망회회)
疏而不失(소이부실)
풀이하면 이렇다.
감행하는 데 용감하면 죽임을 당하고,
감행하지 않는 것에 용감하면 살아남는다.
이 둘 가운데,
하나는 이롭고 다른 하나는 해로운 것이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도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여긴다.
하늘의 도
다투지 않고서도 잘만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만물은 잘 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고,
느슨하면서도 잘 처리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 게 없다.
노자의 말은 처세술에 적용할 만하다. 어쨌든, 참는 게 최상책이지만, 인내의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하면 나도 인간인지라도 감내키 어렵다. 돌이켜본즉, 예전에 사반 세기 다녔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모든 이들이 손가락질 하는 어느 괴상한 우두머리가 있었다. 정작 본인만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듯하였다. 조직 내 막내둥이였던 나는 공개석상에서,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한 마디로, 참소리를 했던 게다. 그게 빌미가 되어 마침 승진심사에도 누락될 뻔했으나, 직장 내에서 그이보다 더 힘세고 높은 지위에 있던 나의 대학 대선배님께 달랑 전화 한 통화로 승진 누락을 극복했다. 그러자 심술이 난 그는 나를 울릉전화국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보냈다. 하지만, 그곳 울릉도에서 2년여 지내면서 이른바 유배문학을 멋지게 적었다. 그 게 그 나의 첫수필집이며 인기가 많았던 <독도로 가는 길>.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돌이켜본즉, 나는 남이 나더러 ‘엿’ 먹으라고 할 적에 그것이 자주자주 ‘꿀’이었다는 것을.
연말이면,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게 될 것이다. 분명 새로운 일자리를 잡을 것이다. 내 의지가, 내 노력이 기어이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거기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끝끝내 굴종(屈從)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노자의 가르침 ‘天網恢恢 疏而不失(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 게 없다.)’를 읊어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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