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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달’의 비밀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양력으로 사월임에도 연일 드센 바람이다. 비닐하우스며 지붕이이며 간판이며 온갖 게 다 날라 갔다는 피해 뉴스가 이어진다. 해서, 음력으로 이월을 ‘바람달’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침 ‘간판’전문가이며 전국 옥외간판 관련 협회 회장을 역임한 이가, 내가 근무하는 어느 아파트 경비초소에 찾아왔다. 위문차 그렇게 찾아와서는 간짜장까지 다 사주었다. 그는 성당 교우(敎友)로서, 한때 ‘어버이 성경대학’ 동기생이며,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이다. 우리 둘은 수시로 휴대전화로 문안인사를 나누는 사이인데, 언제나 첫인사말이 둘 다 개구쟁이들 같다. 아니, 군대생활을 하면서, “충성.”했던 것처럼 구호를 외친다.
“간판.”
그러면 나도 질세라, 응답한다.
"경비.”
나와 마찬가지로, 재담꾼인 그는 이 바람달 이월에, 자신이 시공한 간판이 안전하냐는 내 물음에 선하게 답했다.
" 형님, 제가 누굽니까? 형님처럼 부실시공을 할 것 같아요? 형님은 비닐하우스 통째로 날아갔다면서요?”
그의 다음 이야기는 거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맘때 부는 바람을,‘꽃샘바람’이니 ‘잎샘바람’이니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 아닌가.
이맘때 부는 바람은, 피어나려는 꽃과 잎을 시샘하기는커녕 꽃과 잎을 일깨운다는 거 아닌가. 그는 한 때 분재도 대량으로 했고, 거금 오천 여 만원도 말아먹었으나, 그 이치를 그때 배워서 정확히 안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
임학도(林學徒)였던 나는, 거목(巨木)일지라도 나뭇가지 끝까지 물이 올라가는 이치를, 두 가지 학설(學說)로만 알고 지내왔다. 첫째, 잎의 증산작용(蒸散作用). 증산작용이란, 식물체 내의 물이 기공(氣孔)을 통해 수증기 상태로 공기 중으로 나가는 현상을 이른다. 그렇게 물기가 빠져나가니, 실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이 수목의 ‘수관(水管; 물관)’으로 올라간다는 설. 둘째, 수관의 모세관형상. 호롱 심지를 타고 등유가 올라가듯, 온도계 수은이 온도에 따라 올라가듯. 사실 학계(學界)에서는 위 두 가지 설을 함께 존중한다.
그런데 오늘 낮에 내 경비초소에 다녀간 그는 위 두 가지 학설에, 전공도 아니면서, 덧보탠 학설(?)이 더 있었다는 거 아닌가. 그게 바로 바람달 이월의 바람, 꽃샘바람, 잎샘바람의 힘이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 ‘물 삐기’즉, ‘물 털기’라고 하였다. 바람이 드세게 불면, 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릴 것은 사실. 특히, 잔가지는 세차게 흔들릴 것은 정한 이치. 이때 수목의 체내에 자리한 물관에 고여 있던 물이, 잔가지 말단(末端)으로 ‘물 삐기’ 내지 ‘물 털기’가 이뤄진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운동화를 물에 씻어 양손에 잡고 물을 삐듯, 봉걸레의 자루를 잡고 마구 앞뒤로 흔들어 물기를 털 듯.
이 사실까지 새롭게 안 이상, 나만이라도 더 이상 바람달 이월에 부는 바람을, ‘꽃샘바람’이니 ‘잎샘바람’이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으리. 바람이 굵은 가지까지 마구 흔들어대야 나무는 물이 오르고 꽃을 피우고 잎을 내어놓는다는 것을. 덧붙여, 나무가 겨울을 나는 원리는, 체내에 일찌감치 ‘얼음세포’라는 특수층을 만든다는 거. 그 특수한 ‘아이스 팩’으로 격막(膈膜)을 설치함으로써, 날로 더해지는 추위를 견딘다지 않던가. 봄이 되면, 그 ‘얼음주머니’를 서서히 녹여 자기 자양분으로 삼는다지 않던가. 이 이야기는 이미 적은 나의 글 가운데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참고적으로, 인터넷 검색창에다 ‘윤근택의 얼음세포’를 쳐보아도 나올 것이다.
오,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여!
작가의 말)
수필의 묘미는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요?
상식에 머물러서는 참말로 곤란하지요. 보이지 않는 걸 볼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글감에 따라서는 굳이 길게 적지 않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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