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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의 비밀
    수필/신작 2018. 4. 19. 00:54

                 


                           ‘21의 비밀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하여간, 우리네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는 밤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답이 나올 때까지 궁리하는 것만이 우리네 몫이다.

       나는 ‘415일 밤기준으로 정확히 21일 전에,‘포스트잇(post-it)’에다 ‘325적어, 그 특수한 인큐베이터(incubator) 상단(上端)에 붙여두고 있었다.

    숨을 죽이며, 엎드려, 밤잠마저 젖혀둔 채 그 특수한 인큐베이터의 유리벽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20개 달걀에서 하나가, 마치 바늘구멍처럼 뚫어졌다. 그런 다음에도 꽤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작은 구멍은 마치 작은 가위로 색종이를 오리듯, 아주 서서히 그 달걀 상단 1/3 지점의 둘레를 오려나갔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병아리가 뚜껑을 걷어차고 튀어나왔다. 그 녀석은 뒤뚱댔지만, 나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자립(自立)토록 잠자코 두고만 보았다. 그 녀석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거의 튀밥을 튀기듯 깃털이 자라나고, 몸집조차 그렇게 늘어나갔다. , 신비여!

    내 이야기, 이쯤에서 한바탕 숨고르기를 하고 이어가기로 하겠다. 사실 나는 지난 겨울초입에도 병아리 자동부화기를 이웃으로부터 빌려, 30개 알을 부화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 닭장의 닭에서 얻은, 거의 100% 유정란. 내 눈으로 똑똑히 그것들 서방질(?)을 보았다. 자연 부화율도 9할대는 되었다. 그러나 당시 잘못된 지식 내지 상식으로 말미암아 햇병아리들을 결국은 다 죽이고 말았다. 그 잘못된 지식이란, 몇 가지가 된다.

      내 첫 번째 실수. ‘즐탁동시(猝啄同時)’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품고 있던 어미닭과 품겼던 달걀이 정확히 21일째 되는 날, 그것도 절묘한 순간에, 정확한 달걀껍질 자리에, 안팎에서 동시에, 어미닭도 쪼고[] 병아리도 쪼아야[] 온전한 생명체로 탄생한다고만 알고 지내왔다. 해서, 내가 어미닭 행세를 해주었다는 거 아닌가. 그 어린 것들이 각각 달걀 껍질을 홀로 뚫는 걸 보고서, 사산아(死産兒)가 될세라,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주었단 거 아닌가. 이야말로 발묘조장(拔苗助長)’이었음에도. 그렇게 해서 태어난 병아리들은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죽어나갔다. 이번에 알고본즉, 태어나는 병아리는 달걀 껍질속의 자양분을 마저 먹어치우며 힘을 길러 스스로 나온다는 거.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기는 하지만... .

       내 두 번째 실수. 그때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부화기에서 이내 꺼내 이불을 깐 방바닥을 보금자리로 만들어주었다. 한편, 좁쌀을 첫 모이로 내밀었다. 내 미련함이여! 이번에는 그 부화기를 빌려준 이웃 노인으로부터 제대로 배워, 햇병아리용 사료를 미리 사다 놓고 있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깨어난 녀석들을 벌써 여러 날 그 부화기 속에 노닐게 그대로 뒀다는 거 아닌가.

       세 번째 실수. 이 실수는 사실 이번에 어쩔 수 없이 범한 것이다. 내 농막 건너편 젊은 부부가 색깔이 다양한 닭들을 키우기에 통사정해 보았다.

       “ OO 아빠, 그 유정란을 나한테 서른 개만 팔면 아니 되겠어요? 아니면, 내가 마트에서 계란을 세 곱으로 사다드리든지?”

       그랬더니, 본디 집안내력이 대대로 인정머리 없는, 그 젊은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기 아이들 먹일 거라며. 대신, 그가 힌트를 주었다.

      “아저씨, 우리도 마트에서 유정란 사다가 부화시켰으니 ... .”

       그제야 나는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그 쉬운 방법을 두고서 괜히... .’

       그런데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감히 말하겠는데, 제발 사람 믿지 마시길. ‘전국 유정란 생산자 협회(?)’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 수필작가한테 제소(提訴)해도 어쩔 도리는 없지만... .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걸 어떻게 믿어? 이번의 부화율이 정확히 보여주었다는 거 아닌가. 20개 알에서 7마리밖에 병아리가 깨어나지 않았다. 3할대도 아니 되는 부화율. 나머지 13개의 알은 증거물로, 내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 중이다. 썩계란에는 생산자 표시흔적도 있으니... . 그러니 한 값 더 주고 유정란입네사먹을 것까지는 없다는 뜻이다. 그 많은 산란계를 어떻게 방사(放飼)할 수 있단 말인가.

       자, 다시 21일째 되던 날 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거의 한숨도 자지 않고, 그 작은 생명체가 태어나는 순간순간을, 엎드려 유리벽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축(自祝)의 막걸리를, 자정이 넘어서까지 거푸 마셔대며. 그날 막걸리 안주로 삼은 게 하필이면 반숙란(半熟卵)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더라도 몹쓸 짓인 듯하기도 하였다. 마음에 아니 드는 인사(人士)한테 날계란 세례를 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가끔씩 화면으로 보긴 했어도... . 그 값으로 따지면, 10개들이 달걀이 고작 수천원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은 아주 앙증스런 생명체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밤 똑똑히 보았다. 맨 먼저 태어난 병아리 녀석은, 동생들을 한없이 축복하더라는 거. 그 녀석은 새로 태어나는 병아리들의 부리를, 자신의 부리로 차례차례 입맞춤해주고 있었다. 그 갸륵함이여! 분명 그 녀석은 이런 말을 했을 거 같다.

      “ 너도 태어나는 데 무척 고생을 했어. 축복한다. ”

       내 생각은 거기서 더 얹히고 있었다. 닭의 부화기간은 정확히 21, 우리네 습관들이기에 걸리는 기간도 정확히 21, 산모(産母)와 아기가 조심해야 하는 기간도 정확이 21, 즉 삼칠일(三七日) 혹은 세이레’.

       나는 21일 만에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한테도 삼칠일을 행하고자 한다. 아무리 또 다른 달걀을 구해다 넣고 싶어 마음이 급해도, 아무리 부화기 속이 지저분해지더라도 그렇게 하리라. 이번에는 21일 동안, 부화기를 그 녀석들 보육시설로 삼으면 될 테니까. 부화한 날 415일 기준으로, 21일째 되는 날은 56. 그날에 가서야 녀석들을 미리 넓혀둔 닭장 안으로 옮겨 줄 것이다.

       과일나무 접목(椄木)도 시행착오 끝에 전문가 수준인 나. 이러다가 앞으로는 특수 조류(鳥類) 부화왕도 되는 게 아닌지? 다시 말하거니와, 끊임없는 시행착오만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하여간, 신명나는 세상이다.

     

      작가의 말)

       우리네가 좋은 습관들이기혹은 나쁜 습관고치기에 걸리는 기간도 정확히 병아리 부화기간 21일과 일치한다는군요.

      사실 위 내용과 유사한,‘21에 관해서는 이미 또 다른 작품으로 빚은 바도 있어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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