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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랑말들에 관해(2)수필/신작 2024. 10. 27. 16:22
내 조랑말들에 관해(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내 조랑말들에 관해(1)’의 첫 문장은 이렇게 되어있다.
‘나한테는 다섯 필(疋)의 ‘조랑말’이 있다.’
또, 그 글은 ‘ 대체, 그 다섯 필의 조랑말들의 정체? 7단 기어변속 자전거들이란 걸 다들 모르실까?’로 마무리되어 있다.
5대의 자전거를 조랑말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이번에는 녀석들을 차례차례 소개하려한다. 취득순서대로다.
조랑말 1
아내와 큰딸이 사는 경산시 중방동 e편한세상 아파트 복도에 벌써 여러 해 동안 서 있던 자전거.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는 그 자전거를 신부(神父)님으로부터 얻었다고 하였다. 여성용 자전거답게 참으로 예쁘게 생겼다. 그때 녀석은 자기가 무척 존경하는 신부님으로부터 예쁨을 받아, 그 새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는데, 그 당시 가격으로 30여 만 원짜리였다고 들은 바 있다.
그 여성용 자전거가 제 1호 나의 애마 지위를 얻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 반 무렵 아내가 챙겨주는 도시락반찬을 핸들 바로 아래 달린 바구니에다 싣고 길을 나선다. 횡단보도 세 곳을 가로지르면, ‘남천(南川)’천변에 이른다. 남천은 경산시 중앙을 가르마처럼 가르고 흐른다. 그 발원지는 내 ‘만돌이농장’이 자리한 남천면 송백리,‘원리, ‘신방리’등지. 그 지류(支流)들이 합류하여 흐른다. 피라미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왜가리·청둥오리·오리 등 그것들 포식자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한편, 동천변(東川邊)과 서천변(西川邊)의 둔치는 잔디밭으로 넓고 길게 가꾸어두었으며, 그 잔디밭에는 부지런한 비둘기들이 모이를 쪼며 ‘구구’ 구수회의(鳩首會議)를 하곤 한다. 그 둔치에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깔아두었다. 양탄자는 아니지만, 폐 타이어 조각들로 재합성하여, 탄력 있는 갈색 포장도로. 어디 그뿐인가. 황톳길도 수 킬로미터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안타깝게도 가난한(?)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분들은 신발이 아까워서인지, 신발을 손에 들고서 맨발로 그 황톳길을 걷곤 한다. 내가 한 번은 아내와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한테 우스갯소리를 한 적 있다.
“남천 천변에 불쌍한 이들이 새벽마다 많이도 나오던데? 그 할배들, 할매들한테 신발을 사드려야겠어? ”
사실 그분들은 건강을 위해 황톳길 걷기를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한다.
동천변(東川邊)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려, 잠시 후 ‘사장교(斜張橋)’앞에 다다르게 된다. 사장교란, ‘교각이 없이 양쪽에 높이 세운 버팀기둥 위에서 비스듬히 늘어뜨린 케이블로 다리 위의 도리를 지탱하는 구조의 다리’를 일컫는다. ‘현수교’의 개념과는 다소 다르지만, 그냥 ‘구름다리’라고 해도 될 듯. 그 길이는 122 미터이고, ‘(위험하니)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건너세요’라는 뜻을 지닌 표지판이 붙어있다. 해서, 나는 없는 에티켓을 한껏 발휘해, 자전거에서 내려 핸들을 잡고, 서천변(西川邊)에 닿는다. 거기서부터는 오르막길. 아직은 다리에 힘이 덜 붙어서, 자전거 핸들을 잡고 10여 분 걸으면, 내 근무처 ‘옥산 협화타운’ 6동 초소 앞에 당도한다. 그러고는 자전거 보관소에다 내 딸아이가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신부님의 조랑말’을 세워두게 된다. 그렇게 출퇴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안쪽.
아내 차 마리아님과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가 사는 ‘e편한 세상’ 아니, ‘이 뻔한 세상’에서 벗어나(?), 24시간 격일제로 아파트 경비원으로 나름대로 유쾌하게 지낸다. 10 여 년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하는 동안, 제복을 18회를 갈아입은, 곧 18곳을 옮겨 다닌 ‘아파트 경비원 업체의 전설’답게. 사실 그런 덕분에 내가 죽는 그날까지 더는 옷도, 신발도 사지 않아도 견딜 듯.
조랑말 2
옥산 협화타운 6동 초소 앞 자전거보관소에는 또 다른 한 대의 자전거가 늘 대기하고 있다. 그자전거는 그야말로 stand-by. 그 자전거는,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는 친구 전 아무개의 애마였는데, 그가 내 사정을 알아 아낌없이 건네주었다. 7단 변속 기어가 달렸고, 페달 밟기가 무척 부드러운 게 특장점이다.
‘전 아무개의 조랑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신부님의 조랑말’stand by 자전거이다. ‘술 볼일’이나 우천시 번갈아 탈 수 있도록 그리 해두었다.
조랑말 3
본디 ‘조랑말 3’은 몇 해 전 내가 저 대구의 혁신도시 어느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할 적에, 어느 주민으로부터 선물 받은 자전거. 당시는 내가 그리 필요치 않다고 여겨, ‘만돌이농장’이 자리한 송백1리에서 작은 다리[橋脚] 하나를 사이에 둔, 송백2리 객지친구 ‘태 아무개’한테 거저 준 자전거. 그의 집은 송백2리 마을 초입에 자리해 했다. 사실 그때 그의 집에 가서 차수를 변경하여 술을 마시고자 찾아가다가 애마 ‘투싼 50조 9115’에서 낙마하고, 부득이폐차까지 하였지만... .
하여간, 그 친구 태 아무개는 내 사정 알아, 자기네 처마 밑에 몇 년째 세워둔 그 자전거를 나한테 선뜻 내어주었다.
“ 윤 형, ‘남천1 시내버스’가 우리 마을 입구까지 오니, 여기서 윤 형 농장까지 1.2km 산길 걷지 말고 이 자전거 이용해보시게나. 내가 ‘그리스 주유’며 ‘WD-40 뿌림’ 이며 ‘브레이크 죔’이며 모두 손봐 두었네.”
‘조랑말 3’은 그러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조랑말 4
들켜버렸다. 위 ‘조랑말 1’을 타고 남천 천변을 오가는 나를 그분들 내외는 멀리에서 보고만 듯.
한번은 아내가 퇴근한 나한테 말했다.
“요셉 씨, ‘정평동’에 사는‘루시아 형님 내외분이 자전거를 차고 출근하는 당신을 본 모양이에요. 그 형제님은 연세가 많아 자전거를 더는 아니 타신대요. 자기네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에 세워두고 있대요.”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아내의 승용차에 편승하여 그 아파트로 갔다. 정말로 정갈하게 관리를 해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내 ‘만돌이농장’ 콘크리트 다리에까지 온 적이 있다. 사실 위 ‘조랑말 4’은 ‘페달 밟음’이 연하지 않는 등 이유로 퇴역시키고 ‘교체 멤버’로 쓰고자 그리하였다.
이 자전거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자전거다. 중학교 시절, 이웃 친구들과 함께 시 오리 등하굣길에 탔던 그 자전거 모양 그대로다. 변속 이어도 없고, 뒷바퀴 위에 짐실이가 있고, 그 짐실이는, 거슬러 ‘국 민학교시절’ 이웃에 살던 공무원 사촌형님의 벤또(bento) 도시락이 고무바에 묶여 실렸던... .
당시 사촌형님은 사촌동생인 우리들한테 그 짐실이에 편승하라고 이르곤 했다. 형님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으되, 멀미가 나서 곧잘 내려달라고 울었던 기억.
‘조랑말 4’는 내 어린 날의 추억을 더듬기에도 마침맞다. 사실 내 어머니는 당신의 두 댁 조카들이자 내 사촌형님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야들아, 이 에미는 큰 욕심없대이. 느그들이 느그들 사촌들처럼 벤또를 자전거 짐실이에 싣고 출퇴근하는 게 고소원이대이.”
돌이켜본즉, 그게 60여 년 전 일. 그런데 무슨 행운인지, 그렇게 생겨먹은 짐실이를 갖춘 자전거를 얻게 되었다니!
‘조롱말 4’는 내 ‘만돌이농장’과 ‘남천1 시내버스’ 승강장 사이 1.2KM 산길 역마인 셈.
조롱말 5
위에서 소개했던 ‘조롱말 3’을 퇴역마로 내몰고 나니, 우천시나 아내의 ‘승용차 마중’등으로 인하여 아무래도 불편했다.
해서, 꾀를 내었다. 그 동안 내가 18회 아파트 경비원 자리를 옮겨보아서 아는 일인데, 타이어 펑크 난 채로, 녹슬어 있거나
註1)‘ 던롭방식의 무시고무’가 망가져 있거나 한 자전거가 많았다는 걸. 거기서 착안하여, 자전거 보관소에 세워둔 그 많은 자전거들 가운데에서 튜브에 바람 빠지고 녹슨 자전거 한 대를 선발했다. 혹여 주인이 나타나, “내 자전거 내어 놓으시오.” 하면, 두말 않고 돌려주면 될 일. 사실 어떤 자전거든 타야만[乘] 자전거 지위를 얻게 된다. 즉, 녹슬도록 내팽개쳐둔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라는 뜻이다.‘말[馬)만한 가시내’라는 우리네 말[言]은, ‘탈[乘]만한 가시내’로 환치(換置)할 수 있는 말[言]임을 연상하면서.
그렇게 고른 아파트 자전거보관소의 자전거 한 대. 주인 몰래, 그야말로 ‘샛서방’노릇하여 타고 온 ‘조롱말 5’. 지난 번 근무했던 경산시 백천동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6동 필로티 벤치에 묶어 두었다. 그 아파트는 ‘e편한 세상’과 내 ‘만돌이농장’ 중간 지점에 자리하며, 내가 격일제로 타고 다니는 ‘남천 1 리무진(시내버스)’. 사실 종점인 ‘신방리’를 한,두 코스 두면, 승객은 거의 나 혼자만 남기에‘리무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종합해서 말하건대, 나는 다섯 필의 조랑말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을 내 편의에 따라 군데군데 역마(驛馬)처럼 고삐를 채워두었다는 거. 그 조랑말을 골라(?) 탈 적마다 온갖 추억, 온갖 회환(悔恨)에 잠긴다는 걸.
註1)‘ 던롭방식의 무시고무’에 관해
본인의 수필, ‘고무 이야기(1)’의 한 부분이다.
< 그 시절의 고무 가운데는 ‘무시고무’도 빼 놓을 수 없다. 무시고무란, 자전거 튜브에 펌프질해서 바람을 넣을 때 쓰던 ‘지렁이고무’를 일컫지만, 일본어 ‘무시고무[むし[虫] 고무]’로 불러야 제 맛이었다. 이른바, ‘던롭(Dunlop)방식’의 공기주입에는 필연코 ‘무시고무’가 쓰였다는 거. 물론, 공기주입 방식은 더욱 발전하여 ‘프레스타(presta) 방식’과 ‘슈레더(schrader) 방식’까지 나왔다.
여기서 잠시, ‘던롭’에 관해 독자님들께 소개해야할 사항이 있다.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스코틀랜드,1840 ~ 1921)’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의사에 지나지 않았던 그. 그는 허약한 아들을 두었고, 그 아들은 자전거타기를 무척 좋아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자전거바퀴는 통나무바퀴로 되어 있었는데, 자칫 허약한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다칠세라, 한걱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가 축구공에서 착안하여 탄력이 좋은 고무타이어를 개발했다는 거 아닌가. 그가 타이어를 개발함으로써 자동차산업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과학사(科學史)는 적고 있다. 그가 떼돈 번 것은 두말나위 없고. 실은, 당시 자동차와 공기 타이어의 생산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은 헨리포드(Henry Ford, 미국, 1863 ~ 1947)였다.>
작가의 말)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이어가고자한다. 단숨에 적은 글이라 결점도 많겠으나, 애독자들님께서 ‘콕! 콕!’ 찍어주시면, 틈나는 대로 거듭거듭 고치고자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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