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렸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산 속 한갓진 농막. 초저녁잠에서 깨어나, 소피가 마려워 문을 여니, 반달은 하늘에 떠 있고,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은 휑하니 불고, 가랑잎은 이리저리 우루루우루루 바람에 쫓겨 다닌다.
다시 농막 안. 다시 잠은 아니 오고... . 문득, 혼잣말을 하게 될 줄이야!
‘딱 이 시기가 좋았는데... . 경험상 그 앙증맞은 녀석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였고... . ’
그러고 보니, 참말로 나는 잃어버렸다. 이‘잃어버림’은 ‘잊혀짐’이나 ‘버림’과는 사뭇 다르다. 내 살아생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이 안타까움이여!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다름 아닌 산토끼에 관한 이야기다. 참말로, 산토끼를 본 지 까마득하다. 사실 이 한갓진 농막은 바로 뒤에 산이 펼쳐져 있건만, 돌이켜보니, 이곳에 들어온 지도 20여 년 되건만, 산토끼의 흔적을 본 적 없다. 나는, 아니 우리네는 모두 산토끼를 잃어버린 듯.
얼른 시계바늘을 60여 년 전으로 되돌린다. 그때 나는 10대 소년이었고, 국 민학교(나는 분명‘초등학교’가 아닌 ‘국 민학교’에 다녔다.) 저학년이었다. 바로 이맘때. 토요일 학교가 파하자, 나는 바로 위 ‘영택 형’과 열 남매 가운데에서 막내인 바로 아래 동생 ‘수택’과 함께 우리네 문중산인 ‘갓양달’ 기슭에 갔다. 어디에서 배워왔는지, 형은 ‘산토끼 철사 올가미’설치를 시범적으로 보여주었다. 형은, 잔솔[小松] 사이에 떨어진 깔비(솔잎)가 ‘찹찹하게’밀려나 작은 길이 만들어진 곳이면, 늘 그 구역에 사는 산토끼의 길이라고 일러주었다. 내 죽어도 차마 잊지 못할 규격 그 22번 철사. 그걸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부터 나는, 업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올가미처럼 생겨먹은 넥타이를 사 반 세기 동안 목에다 묶고 다녔지만... . 거꾸로 말하자면, 넥타이처럼 만든 22번 철사 올가미를, 그 무고한 ‘갓양달 산토끼’를 잡기 위해 설치하곤 했다.
그렇게 배운 나의 산토끼의 ‘목 매기’. 그것은 ‘목 매어 극단선택’과는 전혀 달랐다. 타살이었음이 분명타. 산토끼들 입장에서, 동물애호가들 입장에서 그 행위는 비난받거나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 사실 그 당시에도 경찰당국에 들키면 처벌받는다고들 하였다. 하더라도, 우리네 산골 학동(學童)들의 ‘겨울나기’였다.
학교에 가면 으레 자랑거리였다.
“나는 올해 겨울방학 동안에 산토끼 30마리 잡았다? 이 귀마개도 그렇게 잡은 산토끼 털이다? 엄마는 읍내에 가서 마리당 500원에 팔아, 공책도 나한테 사 줬다? 그 산토끼 살은 난티기름(산초기름)과 볶아먹으면 독감에는 거저그만이라카던데(하던데)? ” 등.
학교 공부 석차는 뒷전이고, 겨우내 산토끼를 누가 많이 잡아 팔아서 공책을 많이 샀느냐로 서로 재고 지냈던 게 사실.
늦게 배운 도둑이 새벽이 온 줄 모른다지 않던가. 정말 나는 ‘산토끼 올가미 놓기’에는 프로가 되어 갔다. 내가 살던 ‘초막골’에서 저 ‘굿바들’의‘땡벌산’이며 ‘청운’의 ‘곰나골’이며 ‘미시골’이며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산토끼 잡을 욕심으로, 어른들이 경계하는 산, 즉 산짐승 나온다는 곳마저도 겁나는 줄 몰랐으니! 국 민학교,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겨우내 나의 생활 전부였다.
그로부터 50,60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렇게 온 몸으로 익힌 ‘산토끼 잡이’ 노하우를 후진들한테 전해준들 이제 무슨 소용 있으리! 의미가 다 바래어져버렸다. 왜? 우리네 산야에는 ‘산토끼’가 거의 멸종되어버렸으니까. 환약(丸藥)처럼 동글동글하던 그 똥을 산에서 본 지가 40,50년은 넘어버렸다. 정말로, 산토끼들은 항문으로 환약을 그렇게 잘 만들 수가 없었다. 어느 한의사가 그러한 환약을 만들 수 있을까.
잃어버렸다. 참말로 나는 잃어버렸다. 이제 우리나라 산야에는 산토끼가 사라진 듯. 안타까운 맘에, 인터넷 등을 통해 살펴본즉, ‘멧토끼과’로 분류되는 산토끼가 사라진 이유가 몇 가지로 추정된다. 천적인 들고양이들 설침, 울울창창 삼림이 되어 먹이가 줄어듦, 유행성 괴질환의 창궐 등. 뜻있는 연구진들이 산토끼 복원(?)에도 애쓰고 있다니 그마나 다행.
끝으로, 산토끼를 동화 속에서만 알고 지내는 나의 후손들한테, 이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하리.
‘ 눈[雪] 위에 찍힌 산토끼의 앞발자국은 ‘♡’ 모양이다? 눈밭 쏘다니며 먹이 찾다가 발바닥 흙이 다 닦이어 흰 자국만 남긴다? 산토끼는 미식가다? 칡 덩굴, 싸리 대궁, 산초 대궁, 제피 대궁 등을 아주 예쁘게 잘라 먹는다? 산토끼들은 매일 자라나는 앞니 두 개를 갈기[磨] 위해 그러한 억센 나무 가지를 쏠아댄다? 그래서 항문으로 내어놓는 배설물은 견고한 환약 같다? 그리고 그리고 산토끼는 집토끼와 마찬가지로, 아가를 1개월마다 낳는다? 이 점도 놓치면 안 된다? 그 유명한 ‘피보나치 수열 註)1’을 창안한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도 잊으면 안 된다? 윤근택 수필작가의 ‘ 피보나치 수열’도 명작이라던데?’
註)1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장사꾼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숫자 감각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는 한 쌍의 토끼가 매월 암수 한 쌍의 새끼를 낳는다는 데 유의했다. 새로 태어난 토끼도 태어난 지 두 달째부터 매월 암수 한 쌍의 새끼를 낳는데, 갓 태어난 한 쌍의 토끼가 1년이 지나면 몇 쌍의 토끼를 얻을까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는 훗날 사람들이 ‘피보나치 수열’로 명명한 ‘1, 1, 2, 3, 5, 8, 13, 21...’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규칙은 전전항(前前項)과 전항(前項)을 더한 숫자로 질서정연 이어져 나간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세스(kisses) (0) 2025.02.10 265 (1) 2025.02.04 내 조랑말들에 관해(2) (6) 2024.10.27 내 조랑말들에 관해(1) (5) 2024.10.24 사리 (3)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