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내 조랑말들에 관해(1)
    수필/신작 2024. 10. 24. 13:32

         

          내 조랑말들에 관해(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한테는 다섯 필(疋)의 ‘조랑말’이 있다. 조선조 암행어사들 마패(馬牌)에는 두 필의 말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걸 내밀면 두 필의 역마(驛馬)를 거저 얻어 탈 수 있었다는데... . 사실 당시 마패는 한 필, 두 필 ... 다섯 필로 조각되어 있었으며, 다섯 필의 마패는 고관대작 및 왕족 한테만 주어졌단다. 그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보면, 나는 당시 암행어사들보다 높은 지위의 인물. 비록 내가 소유한 역마들이 조랑말들이기는 하지만... .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동거리 내지 활동반경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의 동선(動線)은 빤하다. 아내와 큰딸이 사는 경산시 중방동 ‘e편한세상 아파트’- 내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경산시 ‘옥산동 협화타운’ - 나와 아내가 공동으로 가꾸는 경산시 남천면 송백1리 1152번지 ‘만돌이농장’. 이들 세 구간을 주욱 펼치더라도, 승용차로는 30분 이내이고, 중간중간 ‘남천1시내버스’ 등을 끼워넣더라도, 한 시간 안에 내가 지향하는 목적지에 다 닿을 수 있다. 이런 게 다 ‘늙어감’의 이점이며 소     득. 작가들의 그 흔해빠진 말, 즉‘느림의 미학’ 따위로 덧칠할 필요는 없겠고.

       다시 내 다섯 필의 조랑말들에게 충실할 차례. 단언컨대, 그것들한테는 여물도 구유도 없다. 내가 이동하는 곳곳 가로수 등에 고삐를 묶어두었다. 비를 맞든 눈[雪]을 맞든 그것들 발목에다 ‘체인 락’, 즉 ‘네 자리 번호맞춤 열쇠’를 채워두었다. 그것은 족쇄. 아니, 십자군 원정에 나서는 혈기 왕성한 전사(戰士)가 갓 결혼한 아내가 영 불안해 정조대를 채우고, 가장 미더운 친구한테 열쇠를 맡겨두었다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나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만은 더 늦기 전에 알려드려야지. 그렇게 가로수 따위에 고삐를 묶어둔 조랑말들 다섯 필의 네 자리 숫자번호는 공히‘6779’다. 그러니 만약에 내가 이 ‘요란한 삶의 전쟁터’에서 일이 잘못되면, 그 ‘6779’ 정조대 비밀번호를 풀어, 그 조랑말을 차례로 타고 가셔도 된다. 하기야 30대에 불과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전설에 따라, 어느 나라 궁궐 앞에 묶어둔‘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알뜰히 푸는 대신, 장검(長劍)으로 난도질해버리고 그 나라를 통째로 챙겼다는 일화도 있다. 즉, 어느 못된 이가 나타나, 그 ‘6779’ 비밀번호조차도 아랑곳 않고, 커터(cutter)로 자른 후 내 조랑말을 타고 가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

       이번에는 내가 그것들 다섯 필의 조랑말들을 역마로 삼게 된 내력을 소개할 차례. 정확히 2024년 7월 27일 20시 무렵, 나는 애마 ‘투싼 50조 9115’를, ‘대조영’의 후예들 집성촌인 송백2리‘태씨(太氏) 마을’ 입구 진입로에서 낙마(落馬)했다. 다행스레, 자기 주인인 나는 멀쩡했으나, 애마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남의 복숭아밭에 기어 들어갔으되,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의 굵은 가지들이 가드레일 역할을 해주어, 다시 도로로 자기 주인을 안전하게 모셨던 것. 대신, 애마는 퇴역마(退役馬)가 되어, 고철(古鐵)로, 14년여 만에, 일백 여 만 원 헐값에 팔려갔다. 사실 그때 내 아내가 고구려의 평강공주 정신이었다면, 바보천치 행세를 하던 이‘온달’을 달랬을 텐데... . 이 무슨 이야기냐고? 평강공주는 남편 온달한테 일렀다.

        “서방님, 제가 궁궐에서 싸들고 온 이 귀금속들을 들고 장에 나가세요. 거기서 다리가 다친 등으로 퇴역마가 된 말들을 모조리 사서, 몰고 오셔야 해요. 아셨죠?”

       평강공주는 공을 들여, 그렇게 온달이 사온 퇴역마들을 완치시켜, 남편 온달로 하여금 온 나라의 연례행사인‘낙랑 사냥 대회’에 출전토록 하여 일등을 만들고, 부왕 평원왕으로부터 사위 지위를 얻게 만들고 ... .

    그랬던데 비해, 내 아내 ‘차 마리아님’과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는 수리비 600여 만 원에, 14년 여 나이임을 들어, 나의 애마를 버리라고 했다.

       그때부터 기동력이 떨어진 나. ‘불편함’은, 불편을 겪어보아야 제대로 아는 법. 유행가에도 있듯, 그야말로‘있을 때 잘해’그대로였다. 그때부터 나는 ‘걷고, 자전거 타고, 시내버스 ‘남천1’을 타고... 비가 오면 아내 승용차 편승하고... ’의 세월이었다. 돌이켜본즉, 석 달 여.

        의외로 소득이 있었다. 다섯 필의 조랑말을 얻어, 위에서 이미 소개했듯, 다니는 길목 군데군데에다 세워둘 수 있었다. 갑자기 ‘떼부자’가 된 이 기분. 애마였던 ‘투싼 50조 9115’하나를 잃음으로써, 다섯 필의 조랑말을 얻을 수 있었고, 종점인 윗마을 ‘신방리’두 코스 앞에 이를수록‘남천 1’은 나한테 리무진(Limousine)이 된다는 것을. 덕분에, 흔히들 말하는 ‘저상(底床) 버스’를 종종 타게 된다. 더욱이, 신품 ‘저상 전기 버스’를 자주 타게 된다.

    유행가 가사처럼,‘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군데군데 가로수에 매어둔 다섯 필의 역마 조랑말들. 녀석들을 얻은 나는 행운아다. 열쇠 비밀번호 ‘6779’만 풀면, 언제고 “이랴!”할 수 있는 나는... .

       대체, 그 다섯 필의 조랑말들의 정체? 7단 기어변속 자전거들이란 걸 다들 모르실까?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렸다  (0) 2024.11.22
    내 조랑말들에 관해(2)  (6) 2024.10.27
    사리  (3) 2024.10.01
    비둘기 수난 세태(4)  (8) 2024.09.09
    비둘기 수난세태(3)  (0) 2024.08.26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