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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둘기 수난 세태(4)
    수필/신작 2024. 9. 9. 14:46

     

          비둘기 수난 세태(4)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지난날 나의 선친(先親)은 슬하에 5남 5녀 자녀를 두었고, 나는 그 가운데에서 아홉 번째다. 안타깝게도,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에서 셋째딸 봉자는 53세로, 맏아들 경택은 76세로, 막내딸 말자는 66세로 당신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이제 나이 칠십을 눈앞에 둔 나. 비둘기로 하여, 당신을 새삼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식품영양학 박사’ 등의 인물들은 ‘칼로리’, ‘고지방’, ‘다이어트’ 등을 심심찮게 말하곤 하던데 ... . 나의 선친은 한마디로, 자녀들 먹여 살리려고, 84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단백질 부족현상의 어른이었다는 거. 해서, 어디서 들었던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곤 했다. 정말로, 당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둘기는 알을 낳되, 2개의 알을 낳기에, 다산(多産)과 거리가 떨어지니, 비둘기 요리만은 당신만이 혼자서 먹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신이 홀랑홀랑 혼자서 잘도 구워먹곤 했다.

       자연사(自然死)였던지, 독극물로 인한 주검이었던지는 알 수 없으나, 지게에서 짐을 부리고, 사랑채 소죽 아궁이에 쭈그려 앉아, 어느 덤불에서 주워온 야생 조류의 사체(死體) 깃털을 사르고 있었다. 민망했다. 그리고 일이 잘못될세라, 적이 걱정도 하곤 하였다. 토종닭 한 마리를 잡거나, 꿩을 틀로 잡았을 적 추억. 소죽 끓이는 사랑방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부엌의 큰형수한테 주문하여, ‘참기름 소금 간장 종지’를 부탁했던 일.

        그때는 당신의 평소 말투를 흉내 내어, 내가 형수한테 대변했다.

        “숙(애숙) 에미, 카면(말하면) 알제(알지)?”

        당신이 기거하는 사랑방에는 미역귀와 됫병소주와 소주잔이 늘 있었으나, 그날은 술병의 술이 떨어진 날.

        그때 나는 애교를(?) 떨었다.

        “아버님, 이 닭똥집이 술안주로는 최고네요. 매번 닭똥집만 꺼내 구워먹고, 다시 닭의 뱃가죽 실로써 꿰매어 놓아두면요?”

        사실 열 남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나. 졸업 후 잠시나마 비렁뱅이가 되어 낙향했던 나. 그렇게 사랑방 아궁이 앞에서 짧게잛게 부자(父子)의 정을 나누곤 했다.

       선친은 다시 일렀다.

        “야야, 비둘기는 말이야, 한 번에 두 개의 알밖에 낳지 않는다카더라. 그러니 이 ‘비둘기 구이’를 너는 먹으면 안된대이. 이 애비야 너희열 남매를 낳고 이만큼 살았으니... .”

        나의 과년한 두 딸년들, ‘요안나 프란체스카’와 ‘미카엘라’한테는 참말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제발 속히 외손주를 하나씩 안고 오길. 혹여 이 글 읽으면  '발끈'  삐지겠지만... .

       불연속성(不連續性)의 내 화제(話題)는 성큼 대전역 광장에 닿는다. 그 ‘대전역 광장’은 나한테 특별한 곳. ‘대전광역시 괴정동’이란 곳에 ‘한국전기통신공사 (현 KT)대전연수원’이 자리한다. 당시 입사 2년차였던 나는, 무슨 행운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구·경북 본부(당시는 ‘대구지사’라고 불렀다.)에 스카우트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2년 여 연필을 여러 자루 깎아 공부했으며, 연수원 성적이 95점 이상이면 곧바로 ‘대리’로 승진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잡고 있었는데... . 그 결과는 88.25.

    낙망한 나는 대전역 광장에, 후들대는 몸으로, 한 달여 교육과정 끝내고, 낙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대전역 광장의 비둘기들은 무심했다. 그들은 이른바 ‘구수회의(鳩首會議)’를 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많은 여행객들은 안중(眼中)에도 없고, 오로지 누군가가 던져주는 팝콘 따위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돌이켜본즉, 40여 년 전 일. 감히 이젠 말해도 되겠다.

        “인생, 별 거 없어. 그냥 사는 거야.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야. 그 동안 추억거리도 장만할 대로 장만했고... . 나아가서, 대전역 광장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공원과 역 광장에는 비둘기들이 대를 이어 떼 지어 사는 걸!”

     

     

     

     

      작가의 말)

       ‘비둘기 수난 세태’ 연작 수필은 한 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 또 기대하시길. 내가 생각해보아도 예술가는 아주 특별한 족속입니다. ‘비둘기 세태(1)’에 적은 대로 그 해프닝으로(?) 말미암아, 나는 정나미 떨어진 그 아파트 경비실을 떠나, 18번째 아파트 경비복으로 지난 9월 1일자로 갈아입었어요. 어쨌든, 아내 차마리아님을 비롯한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와 작은딸 ‘마카엘라’한테는 이 애비가 중단 없는 돈벌이니... .

       위 주기(朱記)된 부분은 술김에 단숨에 적은 초고(草稿) 가운데에서 눈가는 곳을 고쳤사오니, 이미 초고 작품 읽으신 분들은 ‘문장 공부’에 참고하셔도 좋겠네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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