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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33)수필/신작 2025. 10. 18. 14:09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3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이 시리즈물 32화에서는 ‘접붙이기[接木]’를 다루었다. 이번 호에는 내가 접붙이기를 하여 연거푸 낭패당한 경험담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겠다.
34. 개복숭아 실생묘(實生苗)로부터
대학 학과 동기생 ‘김 규성’은, 경상도 출신인 나와 달리, 전공을 살려 자기 고향 쪽인 충북 괴산군 산림조합 간부로 지내고 있었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 일. 그는 내가 그 짱짱했던(?) 지난 직장에서 4반세기 근무 후 은퇴를 하고 첫 해가 되던 해, 안부전화가 왔기에,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묘목 생산업자가(?) 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가을날 돌복숭아(개복숭아) 씨앗을 한 포대 택배로 나한테 부쳐주었다. 그 씨앗은 휴면타파를 위해 ‘황산침지(黃酸浸漬;약황산용액에다 일정시간 담그어두는 일)’된 것으로, 그 황산 내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내음은 임학도(林學徒)였던 우리의 아릿한 추억을 이내 더듬게 하였다. 나는 곧바로 서늘하고 물기가 있는 감나무 아래에다 구덩이를 파고, 그 씨앗들을 모래와 섞어 묻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걸 ‘노천매장(露天埋藏)’이라고 하며, 위에서 말한 ‘황산침지’와 더불어 휴면타파의 일환이다. 이를테면, 나는 두 종류의 휴면타파법을 그렇게 병행했던 셈. 학창시절 배운 대로 제대로 행했다. 그 효과도 배가(倍加)가 될 터. 사실 복숭아씨앗은 인위적인 그러한 휴면타파법을 쓰지 않으면, 직파하더라도 2년 후에 발아하는 습성을 지녔음을, 그 학우와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여기서 잠시. 우리네가 먹는 과일들 대부분은 접으로 새로운 개체를 얻게 되는데, 그 이유도 다양하다. 접을 해야 하는 이유 내지 ‘접의 이점’에 관해서는, 이 연작물 이어가면서 꼭히 한 번은 몰아서 밝히기로 하겠고. 개복숭아의 씨앗을 심어 접의 바탕나무로 삼는 가장 큰 이유는, 실생묘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일로 먹고 있는 그 많은 품종의 맛 좋은 복숭아 열매는 그 씨앗만은 영 아니다. 그것들, 핵과(核果)인 복숭아는 씨앗이 생기다 만 게 대부분이다. 거의 다 쭉정이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복숭아과일을 즐기시면서 종종 경험하시겠지만, 그 씨앗만은 거의 다 엉터리이다. 대신, 돌복숭아만은 그 알의 크기와 맛은 영 아니지만, 그 씨앗은 또록또록하다. 해서, 우리가 과일로 먹게 되는 복숭아며 자두며 매실이며 앵두며 살구며 여러 종류의 ‘벚나무속’ 과일나무 바탕나무 실생묘로는 만판이다. 이에 관해서도 요 다음에 한꺼번에 몰아서 이야기하겠지만, 위에서 열거한 과일나무들은 분류학상 같은 속(屬)에 든 나무들이다. 서로서로 대목(臺木;바탕나무)과 접수(椄穗)로 교차 접목도 가능하다. 이참에 함께 분류학상 ‘門>綱>目>科>屬>種’의 체계(사닥다리;stage;step)도 다시 복습해가면서. 즉, 접붙이기는 같은 ‘속’에 든 나무끼리는 비교적 된다는 말이다. 이 점은 ‘교잡’보다는 다소 유연한 셈. 대목과 접수의 관계가 식물학적으로는 ‘같은 속에 들어’, 유연관계가 밀접할수록 성공률 내지 활착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분류학상 최하단인 ‘種’은, 서로 교잡으로만 2세를 만들 수 있느냐 여부로 결정되지만... .
여기서 또 더듬고 넘어가야 할 사항. 무식한(?) 내 ‘만돌이농장’방문객들 가운데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음을.
“윤과장(나의 택호임.), 자네는 접을 잘 하신다니까 물어보겠는데, 소나무에다 복숭아를 접해도 되는가?”
그때마다 나는 ‘종의 개념’을 누누이 설명해야 한다. 어떻게?
“당신께서 원숭이와 연애를(?) 하면 아이가 생기는가요? 지난 날 자연 시간에, 생물학 시간에 다 배우셨으면서도... . 이게 ‘種의 개념’이잖아요?”
페이지 넘기고.
이듬해 봄날,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그렇게 노천매장해둔 개복숭아씨앗들은 일제히 깨어났다. 그 딱딱한 종피(種皮)를 벗고 콩나물 머리 같이 생긴 싹들이 다 돋아나 있었다. 그야말로 대박을 꿈꾸며, 미리 관리기로 로터리(쟁기질)로 이랑, 고랑을 지어둔 밭에다 한 뼘 간격으로 정성스레 심었다.
그런데 그런데 ... .채 보름 아니 가서 9할대 개복숭아 실생묘를 잃고 말았다. 산새들이 콩나물 대가리같이 생겨먹은 그 떡잎을 죄다 쪼아먹어버렸다는 거 아닌가. 낭패여!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유분수이지, 그제야 성한 실생묘를 보호하겠노라고 살충·살균제를 살포했던 게다. 내 한 해는 그렇게 해서 망쳐버렸다. 아니, 두 해를 망쳐버렸다. 지난 날 <농학개론> 첫 페이지에는 농사의 특징들 가운데에서 아주 부정적인 것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생산이 1년 주기인 관계로) 자본회전율이 낮으며’라고 분명 적혀 있었다. 농학도였던 나의 기를 확 죽이고만 그 아픈 문장.
근근이 한 포대의 돌복숭아 씨앗에서 구해낸 실생묘는 그 수효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는 낙담 않고, 그 이듬해를 기약하며 공을 들였다. 사실 그렇게 얻은 실생묘는 한 해 후에나 접목 대목이 되었지만... .
한편, 당시 묘목생산으로 제2의 인생을 꿈꾸었던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종묘사’를 통해 인터넷 구매로 여러 종류의 복숭아와 매화 묘목을 따로 심어 가꾸고 있었다. 이듬해 봄날 가지를 잘라 접수 삼고자 그렇게 하였다. 나름대로 부가가치가 대단히 높을 거라고 여기며.
주로 내가 그때 종묘사에서 구입해 모수(母樹)로 심은 복숭아는 꽃복숭아들. 기왕에 버린 몸, 그 이름들을 낱낱이 소개하련다. 직립백도·직립홍도·홍도화·남경도·국화도 등등.
주로 매화는 꽃매화들. 기왕에 망친 내 사업, 그 이름들도 낱낱이 소개하련다. 삼색매화·분홍매화·운룡매·백매·청매·실매·능수매·겹매 등등.
이제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그러한 복숭아 실생묘를 바탕삼은 접목의 현재 상황을, 내 아픈 흔적을 들려드릴 차례.
위에서 열거한 꽃복숭아들 가운데에는 몇몇 종류의 꽃복숭아나무가 뒷동산에 멀쩡하게, 의젓하게 자라고 있다. 국화꽃처럼 갈래꽃으로 피는 국화도, 반듯 서서 소복한 여인처럼 흰 꽃을 피우는 직립백도, 겹꽃으로 이 농부를 혼란케 하는 홍도화 등. 그러니 애독자님들께서 뜨락에 그것들을 심어보시겠다면, 내년 봄에 접을 해서 선물로 부쳐드릴 수는 있다.
위에서 열거한 꽃매화(꽃매실)들 가운데에서 능수매, 운룡매는 여러 그루 건재하니, 이 또한 원하신다면, 새로 묘목 만들어 선물로 부쳐드릴 수 있다.
늙어갈수록 이처럼 말이 많아지는 모양. 하더라도, 이참에 이것도 함께 공부하고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고요. ‘梅實’과 ‘梅花’는 같은 나무를 달리 부르는 말에 불과하다는 점. 열매를 중시하면 ‘매실’이요, 꽃을 중시하면 ‘매화’라는 거. 마치, 약제로서 ‘목단’이요, 꽃으로서 ‘모란’이듯. 위에서 같은 단락 내에서 ‘완성’치 못한 매화 이야기를 마저 들려드리는 것으로. ‘능수매화’는 가지가 쳐져 땅에 닿을 듯하면 ‘능수매화’다. ‘능수- ’ 혹은 ‘수양 -’이란 이름을 가진 나무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교양으로 알아두시길. 능수버들, 능수벚꽃·능수느티·쳐진 소나무 등등.
그래도 이야기 끝내자니 아쉽다. ‘청매실’, ‘홍매실’은 그 가지가, 그 열매가 청색을 띠느냐 홍색을 띠느냐에 따라 대별(大別)해서 이르는 이름일 뿐이라는 거. 이 대목에 이르러, 재치로운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이런 대꾸가 자연 뒤따라야 하는데?
“윤쌤, 당신 그 말씀 듣자하니, ‘독수독과(毒樹毒果)’가 퍼뜩 떠오르는군요.”
차시예고)
다음 호에서는 ‘고욤나무 실생묘로부터’ 내 아릿한 추억담을 적도록 하겠다.
작가의 말)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을 질식시키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쓰고는 있으나, 나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가 보다. 양기(陽氣)가 검지손가락 끝에 집중되어서, 키보드를 마구 토닥이고 있으니 ...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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