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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35)수필/신작 2025. 10. 19. 19:52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35)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36. 캘러스(Callus), 캘러스, 캘러스
접붙이기나 꺾꽂이는 식물로 하여금 잠정적으로나마 인위적으로 칼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그러면 옥신 등 식물생장조절호르몬이 그 상처 부위로 ‘삐오!삐오!삐오!’달려가게 된다. 속히 그 상처부위를 아물게 하고자 그렇게 한다. 이때 상처 난 자리가 아무는 과정에서 마치 물사마귀처럼 오돌토돌해지는데, 그 물사마귀처럼 생겨먹은 연한 조직을 캘러스라고 한다. 유합조직(癒合組織)이라고도 하며 유상조직(癒傷組織)라고도 한다.
접붙이기나 꺾꽂이는 당해 식물로 하여금 인위적으로 캘러스를 형성케 하는 작업이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캘러스는 목질부((木質部) 바깥쪽 부름켜[形成層]에 생겨난다. 부름켜는 부피생장과 높이생장에 간여하며, 일종의 피부라고 여겨도 된다. 이미 이 연작물 어디에선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접붙이기는 바탕나무의 부름켜와 접수(椄穗)의 부름켜 즉, 살갗을 정교히 맞추어, 세포분열을 통해 한 몸체가 되도록 하는 농업기술이다. 그러니 접붙이기를 기준한다면, 캘러스를 ‘癒合組織(아물게 하여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 들어있으니까.)’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듯.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농부들의 접붙이기가 외과의사들의 봉합수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아실 것이다. 동물과 식물의 생명활동이 그 하나만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이참에 알아주시길. 캘러스가 형성되면, 세포분열이 왕성히 이뤄져 두 개체가 수관(水管)은 수관끼리, 사관(篩管)은 사관끼리 서로 연결될 테고... . 마찬가지로, 외과의사사 행하는 봉합수술도 세포분열로 이어져 모세관은 모세관끼리 놀랍게도 연결될 것이며, 실핏줄은 실핏줄끼리 연결될 테지. 사실 육안(肉眼)으로는 그 부름켜를 정확히 볼 수 없다. 다만, 숙련된 농부는 감각적으로 두 부름켜를 맞추게 된다. 아마도 숙련된 외과의사도 그렇게 할 것이다.
여기서 잠시.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부터 특별한 접붙이를 경험했음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어린 날 왼 귀 중이염을 앓아,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 겪어본 적 없는 이들은 그 불편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본인도 까맣게 잊고 지냈고, 듣는 데 불편함도 없어졌다. 태무심(殆無心)하고 지냈다. 그랬는데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오한(惡寒)이 들고 왼쪽 귀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그래서 찾아든 대구 지하철 2호선 감삼역 근처 ‘효경 이비인후과’. 사실 수필작가도 공인(公人)인 터에, 실명공개는 다소 문제가 된다지만, 그분이 하도 고마워서 굳이 이처럼 간접광고 내지 간접홍보코자 한다. 그분 경쟁병원에서 나한테 시비를 걸어오든 말든.
그분은 대학시절 익힌 너덜너덜한 전문의학서적을 펼쳐가며 날마다 아주 친절히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한편, 그분은 적외선으로 내 귓속을 말려주었다. 거의 보름 동안 그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그분은 고막에 관해 꽤나 많은 정보를 나한테 전해주었다. 계란 속껍질과 두께가 비슷한 점, 그러함에도 세 겹으로 되어 있는 점, 그 세 겹은 이식수술 때에 중간층은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는 점, 임시로 그 계란 속껍질로 째지거나 뚫린 고막을 때울 수 있는 점, 고막이 지름 0.9cm에 불과한 점 등등. 가장 중요한 점은, 내 고막이 어릴 적부터‘천공(穿孔)’이었을 텐데, 얇게 먼지가 쌓이는 등 때워진 듯해서 자신은 모르고 지내왔다는 걸 일러 주셨다.
마지막 날 그분은 당신의 진료실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말씀하셨다.
“윤 선생님, 저는 고막 재생수술 내지 이식수술은 여태 익히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 메모지에 적힌 대로 범어로터리 ‘수경 이비인후과’에 가셔요. 그분들 ‘손 수준’박사와 ‘조 유경’박사 내외분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고막이식 수술 공부하고 오신 분인 걸요. 두 분은 대구에서 그 분야 권위자들이세요.”
나는 그길로 그 소개장을 들고, ‘손 수준’ 박사를 뵈러 갔다. 그분은 새벽녘에 감쪽같이 내 고막을 때워주었다.
나는 그 병원에 놓인, 접이 된 벵갈고무나무 화분을 가리키며, 색달리 그분을 치켜올렸다.
“선생님, 손이 수준급이라 ‘손수준’인가 보아요. 대체, 어떻게 하신 거에요?”
그랬더니, 그분의 화답(和答)이 더 멋있었다.
“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나무 접에는 대가(大家)이시라면서요? 그리고 어린 날 자전거 튜브도 손수 때우셨다면서요? 다만, 저는 선생님의 왼쪽 귀 트라거스(Tragus;귀젖)를 채 1 밀리미터 아니 될 정도로 얇게 도려내어 고막에 이식했을 뿐인 걸요. 친화력(親和力)을 감안해서 그렇게 했을 뿐인 걸요. 사실 저는 밑천도 아니 들이고서요.”
내 이야기 제법 장황했다. 그분도 그때‘친화력’이란 걸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무 접붙이기든 생체 이식수술이든 외과적 봉합수술이든 친화력이 핵심사항이라는 거. 근친교배는 2세들한테 위험한 일이지만, 접붙이기만은 바탕나무와 접수가 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그 유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성공률이 높다는 걸 알려드리며... .
작가의 말)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을 질식시키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쓰고는 있으나, 나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가 보다. 양기(陽氣)가 검지손가락 끝에 집중되어서, 키보드를 마구 토닥이고 있으니 ... .
사실 그때 적은 나의 ‘고막’이란 수필은 위 두 분 이비인후과 박사들한테 헌정했던 것으로, 명작이라며 많은 수필가들이 퍼날라댔는데, 도대체 연관검색어로도 걸려들지 않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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