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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1)
    수필/신작 2025. 12. 12. 20:20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작가의 탄식)

     

       마른 행주 쥐어짜듯, 제 이야기는 거듭거듭 쥐어짜내고 있습니다. 40여 년째 수필작자로서 지내왔는데, 이 작업은 제 ‘마지막 승부수’인 걸요. 때늦게 이렇게 ‘열공’하는 것도 행복하기는 합니다. 짧은 지식이나마 나날 하나하나 보태 나간다는 이 자위(自慰).

       그리고 애독자님들을 두루두루 사랑해요.

     

       62. 외래종

     

       지난 호에서는 ‘귀화식물’에 관해 적었다. 이번 호에는 우리네 의식주와 깊은 관련이 있는 몇 종류의 외래종에 관해 적고자 한다. 국내에 도입된 순서대로 적는다.

     

       가) 호두[胡桃]

     

       그 이름에 든 ‘胡-’는 ‘오랑캐’란 뜻이고, 그 전대(前代)까지 중국은 물론 한반도까지, 미개한 오랑캐족으로만 여겼던 몽골족이 세운 중국 대륙 원나라를 일컫는다. 사실 우리네 바지나 저고리에 달린 ‘호주머니’도, 약탈을 일삼던 그들 몽골 정복자들이 귀금속 등을 많이, 효율적으로 쓸어담아가고자 고안해내었다고 한다. 즉,‘호주머니’는‘호(胡)주머니’에서 비롯된 말. 우리 고향 쪽에서는 ‘호주머니’를 ‘갯주머니’로 부르긴 하지만... .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몽골어에 능통했던 유청신(柳淸臣,?~ 1329년)이 원나라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금수품(禁輸品)인 (?) 호두를 수차례 시도 끝에, 끝내는 상투 속에 숨겨 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여왔다는 야사(野史)가 있다.

       유청신은 자기 고향인 천안의 광덕면에 그 호두씨를 심었고... 그리하여 오늘날 천안은 호두와 호두과자로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호두가 이미존재했다는 주장도 있다. 호두의 원산지는 중국의 원나라가 아닌, 페르시아(현 이란)와 ‘튀르키예’로 알려져 있다. 또,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점 하나. 토종 호두가 우리네 산야(山野)에 엄존(儼存)한다는 사실. 그 토종 호두를 ‘가래’라고 하며, 요즘 우리가 종종 보게 되는 호두보다 그 껍질이 여물고, 길쭉하게 생겼다. 그 껍질을 반으로 쪼개면, 농기구 가운데에서 하나인 ‘가래’처럼 생겼다 하여 ‘가래’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내 어린 날 그 가래알을 종종 줍기도 하였다. 뜻 있는 육종학자들께서는 더는 늦지 않게 우리의 토종 호두인 ‘가래’도 육종하시되, 다수확이고 내충내병(耐蟲耐病) 강한 품종으로 육종해내어주시길. 이 이야기에 더해, 토종 개암나무 열매도 더 훌륭하게 육종해내주시길.

     

       나) 목화(木花)

     

       여말선초 문익점(文益漸),1329~1400)은 위 ‘유청신’과 마찬가지로,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금수품인 목화씨를 붓두껍에 감춰 왔다는 야사가 있다. 그런데 2010년에 백제 위덕왕 시기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군 능산리의 절[寺] 유적에서 목화에서 뽑은 면사(綿絲)로 짠 직물이 발견되었다니, ‘문익점의 목화’는 한낱 야사에 지나지 않음을. 대신, 문익점은 파직되어 고향 경남 산청에 낙향하여 딱히 할 일이 없자, 목화재배·목화 육종· 목화 보급에 힘썼던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목화의 원산지는 인도이고, 그 목화가 한 갈래는 신대륙 아메리카로 넘어가서 노예농사로 이뤄졌고, 주인 몰래, 노예들이 도대체 흥이 나지 않자, 농땡이치며 건성건성 목화를 따던 그 손놀림과 발걸음 행위가 ‘Go Go’라는 색다른 춤을 만들어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 한 갈래는 중국 대륙 원나라로 갔다가,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거나, 우리네 의복에 일등공신었던 목화. 내 ‘만돌이 농장’에도 관상용으로 해마다 몇 그루씩 자라고 있다.

     

       다) 결구배추

     

       본디 토종 배추가 있었고, 고려시대부터 그 토종배추로 김치를 담그어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디는 소금에 절인 ‘백김치’였다고 한다. 일종의 겉절이. 향신료인 고추가 들어온 게 대략 조선조 임진왜란(1592~1598) 전후이니까. 사실 당시 왜놈들이 그 고추작물을 들여온 것도 이런저런 군사적 이유 때문이었지만... .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관심을 새로 갖게 된 사항은,‘토종 배추’와 ‘청무’가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결구배추 곧, ‘알 배는 배추’는 전확히 1950년 무렵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것을. 우장춘(禹長春 박사,1898~1959)의 업적들 가운데에서 하나다. 그분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모자였던 ‘이범선’이 일본으로 도주하여 일본여자와 결혼해서 생겨난 아이였는데, 부친이 일본으로 잠입한 의인(義人)에 의해 암살당하자,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어 갖은 고생을 다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일본의 어느 농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 대한민국 1호 박사 '임호식'에 이어 제 2호 박사학위를 받은 분. 1950년에, 그분이 부친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환국(還國)하여 ‘결구배추’를 들여온 점은 위 ‘가)’와 ‘나)' 야사와 달리,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분, 우장춘 박사 일생에 관한 눈물 나는 이야기를 다 하자면, 몇 몇 날 새도 다 못할 지경. 나는 당시 이승만 정부가 그분을 거금 들여 일본에서 사왔다는 즉, 빼돌려왔던 것도 알고 지낸다. 이 글 길이를 생각해서, 결구배추를 비롯해서 제주도 감귤·제주도 유채·강원도 감자 등을 보급한 분이라는 것만 힘주어 밝히고자 한다.

       그분은 이승만 정부에 건의하여 제주도와 거제도에 감귤을 심자고 하였고, 배추와 양파의 1대교잡을 성공시켜 유채를 만들어 제주도 농가에 보급했으며, 더뎅이병 등에 강한 감자를 고랭지인 강원도에 보급하였다. 많은 이들이‘씨 없는 수박’을 육종해낸 분으로 알고 지내지만, 사실 그 ‘씨 없는 수박’은 일본의 다른 학자가 육종해내었다. 학계에서는 우장춘 박사가 성공시킨‘겹 페튜니아 육종’을 높이 사고 있다. 학술적으로, 세계 최초 ‘종(種)의 합성’과 ‘중간잡종’의 개념을 정립하여 ‘우장춘의 삼각형’ 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분이다. 우장춘 박사는 위 문장에 소개한 ‘종의 합성’등으로‘다윈의 진화론’까지 단번에 뒤엎어버린 분으로 ‘육종학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맘때 겨울 초입에 집집이 결구배추로 김장김치를 담그고, 어느새‘K-김치’를 만국에 자랑하게 된 것도 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임을.

     

       라) 키위(Kiwi)

     

       덩굴식물인 ‘키위’는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과일이다. 본디는 중국산 과일이었으나, 1900년대 초 뉴질랜드 ‘헤이워드 라이트’란 원예학자가 중국에서 그곳 뉴질랜드로 가져가서 육종해낸 과일로 알려져 있다. 그곳 뉴질랜드에서만 사는, 그들 국조(國鳥)가 키위새인데, 키위 열매가 마치 그 키위새처럼 생겨먹었다고 하여 ‘키위’라고 자랑스레 부른다. 또, ‘뉴질랜드’의 애칭 내지 별칭이 ‘키위’이기도 하고.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뉴질랜드의 그 키위 나무를 훔쳐와 꺾꽂이하여 대량으로 우리나라 농가에 무모하게(?) 보급하고자 했던 어떤 원예학도의 실화(實話)를 다큐로 방영한 바 있다.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종일 인터넷을 통해 그 양반을 찾아보고자 애썼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부득이, 그때 그 양반이 대박났던(?) 실화를 기억나는 데까지 소개하겠다.

       그 스토리는 이러하다. 그는 뉴질랜드에 유학을 갔던 것인지, ‘선진지(先進地) 견학’을 갔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곳 키위 새순을 몇 개 훔쳐 잘라왔던 모양. 키위는 포도와 마찬가지로, 꺾꽂이가 썩 잘 되는 나무. 그는 해마다 꺾꽂이를 거듭하여, 뉴질랜드산 키위묘목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다. 그러자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뉴질랜드 당국으로부터 제소를 당하고 만다. 이른바, ‘로열티’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국제간 치열한‘종자전쟁’에 휘말렸다는 말. 그러자, 그는 변호사를 쓰는 등 자못 지혜롭게 대처하게 된다. 국내에서 자기가 생산한, 모든 뉴질랜드 원산지인 키위묘목을 국내 시장에 풀어먹이되, 그곳 묘목업체 이름으로, 그리고 로열티를 낱낱이 다 물겠노라고. 해서, 그는 단박에 대박이 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길로 그는 떼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는 ‘라) 키위(Kiwi)’ 이야기도 ‘결구배추’와 마찬가지로, 야사가 아닌, 실체가 있는 이야기.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로 이번 호 글을 끝낼 성싶은가. 본디 우리네 산야에도 ‘토종 키위’가 존재해왔다. 그 걸 ‘다래’라 불러왔으며, 고려속요,‘머루와 다래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사실 내 ‘만돌이농장’ 원두막에도 암나무, 수나무 각각 두 그루가 심겨 있다. 여기까지 인내심 있게 읽어오신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만 덤이다. 서비스다.‘다래’라는 이름은 ‘달다[甘]’의 고어(古語)에서 왔단다.

       한편, 2014년 11월 ‘한국-뉴질랜드 FTA협상’ 타결로, 관세 45%에서, 그로부터 6년 후인 2020년부터는 ‘관세 완전 철폐’를 주요골자로 하였다. 이는 위에서 소개한 그 원예학도의 송사(訟事)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서.

       고무적인 사항도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보고하고(?) 이번 글을 맺을까 한다. 요즘은 ‘한국참다래연구회’가 ‘K-Darae’라는 브랜드로 '다래 '곧, ‘참다래’의 묘목을 세계 여러 곳으로 수출하고 있단다.

     

       차시예고)

       우리가 먹는 신품종 사과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교직과목인 ‘농업’을 이수하고서, 시골 모교에 가서 ‘사과’ 단원에 이르러 강의 중 어느 제자 겸 후배의 질문에 혼쭐났던, 아니 쪽팔렸던 이야기부터.

       그가 질문했다.

       “쌤요(선생님),‘후지(Fuji)사과’와 ‘부사(富士) 사과’가 어떻게 다릅니껴?”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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