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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4)수필/신작 2025. 12. 15. 15:39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4)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작가의 탄식)
마른 행주 쥐어짜듯, 제 이야기는 거듭거듭 쥐어짜내고 있습니다. 40여 년째 수필작자로서 지내왔는데, 이 작업을 제 ‘마지막 승부수’로 여기면서요. 때늦게 이렇게 ‘열공’하는 것도 행복하기는 합니다. 짧은 지식이나마 하나하나 보태져 나간다는 이 자위감(自慰感).
그리고 애독자님들을 두루두루 사랑해요.
65. 꽃받침[花托]
내 ‘만돌이농장’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개여울이 감싸안은 곳에 자리하는데, 이 밭둑에는 서른 그루 안팎의 감나무가 늘어서 있다. 씨 없는 반시(盤柴;쟁반감)가 주(主)를 이루고, 상주둥시[상주 (물동이처럼 생긴 감]·대봉감[하찌야감]·부유단감 등도 섞여 있다. 그런데 몇 해부터 해마다 감 농사를 망치고 있다. 수확기에 이르러, 채 한 상자의 과일 수확도 못 보는 이 안타까움. 기상변화와 깍지벌레· 미국 선녀나방·둥근무늬낙엽병·탄저병 등으로 인해서다. 난들 왜 때맞춰 살충살균제를 아니 치겠냐만, 수령(樹齡) 40~50세가 되는 감나무들이라서인지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린 원인도 있겠으나... .
이 겨울에, 그런 대로 끝까지 버텨줄 줄 알았던 ‘감알’들이 다 ‘줄줄’ 흘러내려버리고... . 감꼭지만 달린 감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자니... . ‘갈래꽃’처럼 생겨먹은 그 감꼭지들. 더러는 밭 바닥에 즐비하게 떨어져 있는데, 감나무 가지에서, 차마 떨어지지 못한 감꼭지들은, 나더러 자기네 주군(主君)을(?) 끝까지 제대로 모시지 못한 데 대하여 무척 미안해하는 것만 같아 안쓰럽다.
이러할 때 농부들이 혼잣말하는 것은 하나다.
‘괜찮아. 내년도 있지 않은가?’
그처럼 자위하면서, ‘속고... 속고’를 거듭하면서, 해마다 농약 값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농사를 한평생 하게 된다.
자, 지금부터는 내 이야기 ‘가속페달’을 밟을 차례. 위에서 ‘감꼭지’라고 한 것이, 정확히는 ‘꽃받침’이다. ‘꽃잎을 받쳐 주었던 받침.’그 꽃받침이 발달하여, 나중에는 ‘어린 왕’즉, 그 과일의 ‘알’을 공손히(?) 받쳐준 게다.
‘꽃’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갖춘 꽃[完全花]’, 또 하나는 ‘안 갖춘 꽃[不完全花]’. 암술· 수술· 꽃이파리· 꽃받침을 다 갖춘 꽃을 ‘갖춘꽃’이라고 하며, 그 넷을 다 갖추지 못한 꽃을 ‘안 갖춘 꽃’이라고 부른다. 나이 칠십 되도록 여태 제대로 해 놓은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야말로 ‘안갖춘 꽃’의 전형(典型)이겠고... .
학창시절, 전공필수과목으로 익힌 <樹木學) 교재> 총론편을 다시 펼친다. 40여 년 <바이블>처럼 여겨온 책이다. 그 자잘한 글씨체. 부득이 돋보기를 끼고서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 모형도와 함께‘꽃의 구조’가 설명되어 있다. 위에서 말했던 ‘암술’은 ‘암술머리’·‘암술대’·‘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씨방’은 동물의 ‘자궁’과도 같은 존재. ‘수술’은 ‘수술대’와 ‘꽃밥’으로 갖춰져 있다. ‘꽃밥’은 동물의 정액에 해당할 터. 수술과 암술 아래 켠에는 꽃이파리가 존재하며, 그 꽃이파리 아래 켠에 비로소 ‘꽃받침’이 자리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말씀드리오니, 지금부터는 내 이야기 ‘성큼 두어 발자국 앞’으로다. 즉, 비약이다. 발전이다. 연상이다. 확대재생산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못 빼 올릴 거면, 뭣 하러 작가라고 혀(해)?”
이미 위에서 힌트를 드렸지마는, ‘꽃받침’은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에 불과하다. 아니, 스스로 ‘-받침’으로 낮추어 말한다. ‘꽃받침’은, 화려한 꽃이파리가 얄랑대어, 벌이나 나비나 바람에 의해 수컷(수꽃) 암컷(암꽃)이 그 요란한 연애질을(?) 하는 동안에도 거세(去勢)된 내시(內侍)처럼, 입 다물고 자기 몫을 충성스레 한다는 것을.
‘꽃받침’의 그 숨은 공로는, 시간이 거듭 흐를수록 빛나더라는 거. 본디는, 화려한 꽃이파리를 받쳐주어, 그 꽃이파리들을 빛내주었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그 공주들인 꽃이파리들이 바람에 나부껴 스러져 간 이후에도 제 몫을 끝까지 하더라는 거. 다들 이 글 첫 단락에서 소개한, ‘감의 꼭지’이야기가 공연하게 들릴까? 분명, 그 감의 꼭지는 본디‘꽃받침’이었다.
차시예고)
사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꽃받침’ 후속작이 여러 몇 편 있으나, 현대인들 취향을 감안하여, 이번 호에서는 여기까지만 적기로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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