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5)
    수필/신작 2025. 12. 17. 12:00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5)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66. 또 다른 꽃받침[花托]들

     

       지난 호 제 54화 끝 단락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략)‘꽃받침’의 그 숨은 공로는, 시간이 거듭 흐를수록 빛나더라는 거. 본디는, 화려한 꽃이파리를 받쳐주어, 그 꽃이파리들을 빛내주었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그 공주들인 꽃이파리들이 바람에 나부껴 스러져 간 이후에도 제 몫을 끝까지 하더라는 거. 다들 이 글 첫 단락에서 소개한, ‘감의 꼭지’이야기가 공연하게 들릴까? 분명, 그 감의 꼭지는 본디‘꽃받침’이었다. 끝.>

     

       꽃받침에 관한 이야기 제 54화로 그치자니 꽤나 아쉽다. 해서, 다시 지난 호에 적은 몇 몇 사항을 더듬고 난 뒤에 이야기를 마저 꾸려가고자 한다. ‘갖춘 꽃’은 암술·수술·꽃잎·꽃받침을 다 갖춘 꽃을 일컫고, ‘안 갖춘 꽃’은 이들 네 요소들 가운데에서 하나, 또는 둘을 아니 갖춘 꽃을 이른다. 대체로, ‘안 갖춘 꽃’은 ‘꽃받침’이 없는 꽃들을 이른다. 나는,‘갖춘 꽃’의 꽃받침이 꽃이파리를 처지지 않게, 꽃집 여인들이 늘 그 원리를 응용하여 그렇게 하듯, 버팀개로 받쳐주기도 하지만, 뒷날 더욱 발달하여 열매한테 자양분까지 공급하고, 열매를 튼실하게 해줄 거라고까지 추측해 보았다. 꽃받침은 가지꼭지·고추꼭지·감꼭지·도토리깍정이 등에 두드러져 있고.

        이제 꽃받침에 관한 내 연상은, 내 비약은 우리네 인간들한테까지 이르게 된다. 기왕지사 우리네는 늘‘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입버릇처럼 노래하는 마당에. 그러니 일단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꽃 위의 꽃’인 셈이다. 예로부터 꽃인 우리의 얼굴을 꽃답게 받쳐주는 ‘꽃받침’도 있어왔다는 사실. 꽃이파리를 받쳐주는 꽃받침에서 그 멋을 베껴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 바로 저고리의 옷깃.

     

       가) 동정

     

       내 어릴 적 어른들은 그 옷깃을 ‘에리’라고 곧잘 불렀다. ‘에리’는 일본어 ‘えり [襟·衿·領]’에서 온 듯한데... .

       어머니는 곧잘 어린 우리한테 이런 분부를 내리곤 했다.

       “야들아, 너희 어른 적삼 ‘에리’의 ‘동정’이 낡았구나. 갈아 달아 드려야겠는 걸! 마을 구판장에 가서 동정을 사오거래이.”

       한복저고리는 그 동정이 핵심이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어머니는 아버지 저고리에 동정을 달되, 풀을 먹여 빳빳하게 인두로 다렸다. 동정은, 남정네를 남정네답게, 여인네를 여인네답게 한민족의 얼을 받쳐주는 꽃받침이었다.

     

       나) 칼라(collar)

     

        지금은 고인이 된 내 막내누님은 열 남매 가운데에서 서열상 일곱 번째였고, 내 양친 기준으로, 당신들 다섯 따님들 가운데에서 막내따님이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이참에 산수 공부를 다시 하시라고 이렇게 헷갈리게 하는 깊은 뜻 이해해주시길. 막내누님은, 운좋게(?), 당신들 다섯 따님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중학교까지 다니는 영광을 누렸다. 누님은 공부보다는 그 교복 상의에 다는 칼라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였다. 새하얗게 빨아서, 갈분(葛粉)으로 풀을 먹인 후 숯불 담은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리곤 하였다. 사실 그 칼라는 여중생·여고생들 순결의 표상(表象)이었으며, 그 교복을 입은 여중생·여고생은 까마귀가 아닌 까치 모습과도 같았다. 그 칼라도 단발머리, 묶음머리 등으로 학년에 따라 달리했던 여학생들만의 꽃받침이었던 게 분명타.

       로만 칼라(Roman collar)도 빼놓을 수 없는 꽃받침.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던 나. 내 아내 차 마리아님과 달리, 몇 해 전부터 이런저런 핑계로 ‘냉담 중’이긴 하지만, 성당에 가면 사제(司祭)는 로만 칼라의 제의(祭衣)를 입고 강론하곤 하였다. 검은 옷에 달린 흰색 칼라. 그 로만 칼라도 꽃받침이었다. 사제를 더욱 더 고귀하게 숭엄하게 받쳐주는 꽃받침이었다.

       라펠(Lapel), ‘접은 깃’혹은 ‘접은 옷깃’도 그 저고리를 입은 주인공을 더욱 우아하게, 품위있게 받쳐주는 꽃받침이 아닐 수가 없다.

        반면, 남중생·남고생이었던 우리는 동정도 아니고 여학생들 칼라도 아니며 사제의 로만 갈라도 아닌 꽃받침의 교복을 입고 지내야만 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교복 상의에는 ‘애완견’도 아닌 터에, ‘목줄’인 양 ‘호크(haak)’를 늘 채우고 지내야만 했다. 본디 그 ‘haak’는 ‘네덜란드어’에서 왔다는데, ‘목 달걀’ 앞에 두 개의 갈고리 암놈 · 수놈으로 걸어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규율반 선배들과 생활지도교사들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통제받던 교복 시절의 그 호크. 하더라도, 나이 칠십에 이르러 회상해본즉, 까칠하기만 하였던 그 교복의 에리, 그 호크도 빼어난 꽃받침이었다는 것을. 그 호크가 없었더라면, 온갖 방탕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하고서. 그 또한 꽃받침이었으며, 그 꽃받침이야말로 절제·규범·자기통제 등을 아우르는... .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여러 유형의 꽃받침 덕분으로 나날 성숙해져, 다들 죽는 그날까지 인간 구실을 제대로 하고자 애쓴다는 것을. 이 모두 우리를 우리답게 받쳐주어 왔던 그 숱한 종류의 옷깃 즉, 꽃받침 덕분이었다는 것을.

       정말로, 내 여생, 목도리도마뱀처럼 나 혼자만 살겠다고 허세부리며 ‘가짜 깃’을 세우지만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

     

       차시예고)

     

       몇몇 날 집중탐구하여 삼투압과 역삼투압에 관해 적어보려고 한다.

     

      * 세상에서 빼어난 AI가 또 아래와 같이 평을 적었네요.

     

    윤근택은 칠십에 이르러 자신의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겼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도 종심소욕불유구라는 원리를 반성하며, 자신의 욕심을 넘어서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또한, 동서양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며, 권력자의 DNA와 그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가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