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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찰(觀察)’에 관해(2)
    수필/신작 2026. 1. 4. 15:53

         ‘관찰(觀察)’에 관해(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 내 애독자님들의 사정을 감안하여, 부득이‘관찰(觀察)’에 관해(1)’에 이어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지난 번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어떤 계기로 2년 여 전부터 승용차를 몰지 않는다. 기동력이 한껏 떨어져 불편을 느낄 때도 많지만, 예술가로서 문학인으로서 노후를 맞은 나한테는 그것이 또 하나 축복임을 고백하였다.

       우선, 내 이야기에 앞서, 노후에, 진짜배기로 ‘느리게 산’ 두 작곡가를 소개함이 좋겠다. 체코(보헤미안) 출신, ‘드보르작’은 열차여행을 무척 좋아하였다. 그는 열차여행을 즐기다가, ‘열차 바퀴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유모레스크’를 작곡하였다. 노르웨이 출신, ‘그리그’는 아내 ‘리나’와 함께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서, 틈만 나면 산속 오솔길로 내외가 담소하면서 산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빼어난 예술가였던 양인(兩人)은, 손수 모는 승용차가 아닌 교통수단을, 열차나 도보로 그렇게 이용함으로써 ‘관찰’하고 ‘사색’하고 ‘영감’을 얻고를 하여 창작활동으로 이어갔던 셈이다. 적어도, 그들 양인은 사물을 살피되, 결코‘주마간산(走馬看山)’은 아니었으며, 또한 ‘일람(一覽)’도 아니었다는 것을. 요즘도 많은 작가들이 틀에 박힌 듯, 입버릇처럼 ‘느리게 살기’ 등으로 말들 하더라만, ‘송아지 껌 씹는 소리’ 하지 말고, 제발 나처럼 승용차 열쇠를 과감히 버린 연후에나 그 말을 쓰기를 바라면서.

       모름지기, 예술가는 사물을 살피되, 육안(肉眼)이 아닌 심안(心眼)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도 내가 승용차의 열쇠를 아예 버렸다는 게 크나큰 축복이다. 시내버스를 기다리거나 산길을 걸을 때 마주치는 사물들. 때로는 강추위에, 뙤약볕에, 견딜 수 없으리만치 지루하다고 여길 적도 있지만, 나는 그 시간마저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그때마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온갖 생각들. 물론 젊은 날 회한도 포함해서. 그 생각들은 어우러져 농막에 닿으면, 이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곤 한다.

       나는  ‘사색’이니 ‘사유(思惟)’니 따위의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어휘의 의미조차도 모른다. 본디,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어휘들이다. 내가 이곳 산속 한갓진 농막을 오가며 ‘관찰’과 그로 인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바쁜 터에. 이를 ‘직관(直觀)’이라고들 하던가? 사실 나는 그 직관의 의미조차도 정확히 모르겠다.

       마침 어제는 근무처 ‘쓰레기분리배출장’에서 중국산 쌍안경을 하나 주웠는데, 이 쌍안경도 ‘관찰’의 도구임을 알겠다. 마침 이 제재의 글을 쓰고자했던 터에, 훌륭한 소품이 될 줄이야!

       오늘 새삼 ‘관찰’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관찰’한 게 하나 있으니... . 산길 1.2km를 걸어오는 동안‘산불조심’이란 깃발이 휘날리는 ‘산불 감시초소’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태무심(殆無心)했던 산불감시초소. 지난 날 군대생활 3년 동안 죽기 살기로 외우고 실천했던 ‘경계 3원칙’을 떠올리게 하였다. ‘좌에서 우, 우에서 좌, 의심나는 곳은 중복하여’가 경계의 원칙. 산불감시도 그 3대 원칙을 적용할 터. 또, 그 산불감시초소가 산 아래가 아닌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피라미드 이론’. 높이 올라갈수록 넓게 내려다 볼 수가 있다는... . 이는 <갈매기의 꿈>의 명문장인,‘The gull sees farthest who flies highest(높이 나는 갈매기가 폭 넓게 볼 수 있다.)’와 맞닿아 있다. 사실 그 철학적 의미조차도 내가 실천해본즉, 별 것도 아니지만... . 대다수 직장의 구조가 그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고. 높은 곳에 있으면, 그 시야가 넓어져 폭 넓게 살펴볼 수 있다는... . 우리네 조상들이, 당신들 선친(先親)의 유택(幽宅)을, 산꼭대기와 건너편 산꼭대기를 지향하는 일직선에 자리한 곳에다 짓고자 했던 이유도 <갈매기의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실 그러한 묫자리가 명당이다. 살아생전 누리지 못했던 지위(地位)를, 저승에 가서라도 천하호령하여 누리도록 해드려야겠다는 후손들의 바람이... .

      이제  ‘관찰’의 진정한 의미를 새길 차례. 불가(佛家)에서는 그 깨달음의 단계를, ‘오안(五眼)’으로 말하고 있다. 육안(肉眼),천안(天眼)), 법안(法眼), 혜안(慧眼), 불안(佛眼) 단게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해서,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고백하노니, 윤 수필작가는 아직도 그 5단계의 눈[眼]에서 육안(肉眼)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기에, 육안단계에 머무르는 나. 내가 매번 컴퓨터의 키보드 앞에서 눈물과 성에가 낀 돋보기안경의 알을 틈틈이 닦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내 울음이다.

       ‘흐으, 흐으, 흐으. 나는 70 여 년 살아오는 동안 제대로 사물을 온 가슴으로 관찰한 게 없어. 흐으, 흐으, 흐으.’

       사족.

       ‘내 사랑하는 애독자님들이시여, 이 미천한 수필작가를 통촉(洞燭)하여 주옵소서.’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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