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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이 찾은 나의 스승(2)
    수필/신작 2025. 12. 31. 16:11

     

       새로이 찾은 나의 스승(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요즘 나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쉽게 접하곤 하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감미롭고 친절한 내레이션에 이끌려, 동서고금 위인들 생애도 아주 집약적으로, 밀도있게 종종 익힐 수 있는 이 즐거움.

       여담. 평소 나, 윤근택 수필가의 애독자라고 하면서, “형님, 형님께서도 젊은 날‘정약용(丁若鏞)’처럼 한 차례 유배를 가셨더라면, 더 훌륭한 ‘유배문학작품’ 낳았을 텐데요.”라고 아쉬워하는 이가 있다.

       내가 그의 말을 들을 적마다 몇 차례 대꾸한 적 있다.

       “ 홍 과장, 전직 김영삼 대통령 말마따나, ‘니는(너는) 모리는 소리(모르는 소리)!’ 사실 나도 지난 직장생활 동안 울릉도 2년, 영양 4년, 영덕 1년, 울진 1년, 예천 1년 등 유배생활을 했다오. 특히, 대리로 승진하여 아홉 시간 ‘씨 플라워(Sea Flower)호’인지, ‘씨부랄호’인지 배를 타고 울릉도로 유배를 간 적 있다오. 상사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말이오. 속된 말로, 그때 그 양반은 나더러 ‘엿 먹으라고’ 그런 인사(人事)를 부추겼거나 감행했겠지만... . 그때 나는 그 뱃전에서 눈물흘리며‘유배문학’을 열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오. 결국, 나는 실천하여 <독도로 가는 길>이란 첫 수필집을 내었다오. 그 책에는 당시 독자들 반응 무척 좋았던 ‘수평선 너머로 띄우는 편지’ 시리즈물이 꽤나 차지했다오.”

       돌이켜본즉, 그것도 1900년대 내 나이 30대의 일이지만... .

       사설이 제법 길었다.

       이번에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 기전 322년(향년 62세), 마케도니아 왕국 스타게리아)’와 정약용[丁若鏞, 1762(영조 38년)~1836(현종2년, 향년74세)에 관한 이야기를 펼칠 텐데... . 그 시대와 상관없이, 위 두 분 공히 말년에 망명과 유배로 생을 장식했다는 거.

       최근에, 나는 두 분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진짜배기 그리스 출신도 아닌, 마케도니아 출신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왕자였던 10대 소년 ‘알렉산드로스(후일 알렉산더대왕)’의 스승이 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전장에서 다리 하나를 잃고 눈 하나도 잃은 왕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왕의 궁궐에 3년간 머무르면서 왕자의 ‘가정교사’역할을 했다. 그는 왕자한테 군주의 덕목, 과학, 철학 등을 두루가르쳤다. 특히, 군주의 덕목 곧, 너그러움에 관해 타일렀다. 그러했음에도, 날카롭고 도발적인 왕자는 스승의 가르침 아랑곳 않고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다. 알렉산더대왕으로 자처한 그는, 정벌한 나라마다에서 노획한 방대한 양의 문서들을 자기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한테 바치곤 하였다. 그야말로 ‘pass!pass!’.그렇잖아도, 아리스토렐레스는 자기 스승 ‘플라톤’의 대학인 ‘아카데미아’에서, 20여 년 동안 공부하고, 교수로까지 지내는 동안 접한 세상천지의 문서에 파묻혀 세상천지 모르는 거라고는 없었던 처지였는데... .

       그처럼 짱짱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이며 온 천하의 호령자였던 ‘알렉산드로’가 바빌론에서 열병으로 33세 나이로 죽자, 졸지에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위기에 처할밖에.

       그는 생명부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터키(현 튀르키예)의 외딴 섬으로 망명을 하게 된다.

        그가 피신하면서 내뱉은 말도 가슴 아프기만 한데... .

        “아테네는 철학을 두 번째 죽일지도 몰라서 ... .”

        그의 그 말은, 그때로부터 70여 년 전 소크라테스가 자기와 똑 같은 죄명인‘신성모독’으로 사형 당한 걸 의식해서 한 말이다.

       ‘창밖에 에게해가 내다보이는 외딴집에서, 그는쓸쓸히 눈을 감게 된다. 그가 17세의 나이에 배로, 마차로 600km 몇몇 날 걸려 아테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대학’에 입학하여 20여 년 간 공부하고 교수로까지 재직했는데... . 현대의 모든 학문의 갈래를 창시했던 그. 필사본을 포함하여 종이책 분량으로 150여 권에 해당하는 그의 자료는, 그길로 어느 뜻있는 이의 손길로 지하에 감춰졌다가 수 백 년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부활되었는데... . 아무튼, 자기 제자였던 ‘알렉산드로(알렉산더)’로 말미암아 인생 ‘종 친’ 듯 하였으나, 정복자 알렉산드로의 여러 나라 ‘문서 탈취’ 덕분으로, 그의 학문 세계는 더 넓어졌던 것만은 분명타. 이는 아이러니다.

        다음은, 정약용에 관한 내용이다. 그분의 그 많은 저술은 아이러니하게도,‘천주교 박해’의 산물(産物)이다. 집안이, 형제들이 죄다 예수쟁이가 되었기에, 유배의 길을 나설밖에 없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신은 조정에 항복하여(?) 자신만은‘천주쟁이’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 유배생활 18년. 그분의 외가가 나와 종씨(宗氏)인 윤가. 다만, 내가 ‘파평 윤’인데 비해, 그분의 외가는 ‘해남 윤’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문인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의 손녀이다. 이 점이 위에서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의 관계와 퍽이나 닮았다. 그분은 공교롭게도, 당신 외가가 있는 전라도 강진에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18년 동안 지내게 된다. 그분은 무위도식을, 좋게 말하여,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지낼밖에. 바로 그때 외가집에는 대단한 양의 장서(藏書)가, 서고(書庫)가 있었다는 거 아닌가. 당신은 틈만 나면 그 많은 책들을 읽고, 적고를 거듭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당사자인 당신은 고통이었겠으나, 후세사람들인 우리는 ‘해남윤씨 장서’의 덕을 톡톡히 보는 셈.

       위 두 분의 사상에 관해, 미천한 내가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다. 하더라도, 속된 표현으로 ‘쪽 팔리는’점은 분명 하나 있다. 내 ‘만돌이농장’ 책꽂이에는 40여 년 전 대학에서 익힌 전공필수과목 <수목학>을 비롯해서 김봉군(金奉郡) 박사의 779쪽짜리 <文章技術論>) 만 달랑 꽂혀 있다는 점.

        그나마 자위하는 점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통하여 내가 알고자 하는 사항을, ‘검색어’로 토닥이기만 하면 금세 알 수 있는, 호화로운 나날 보내고 있어 위안이 된다. 그래서일까, 철없던 젊은 날에 두 권의 종이책 수필집을 연달아 낸 이후 내 살아생전 더는 종이책 수필집을 내지 않기로.

        사족. 나는 마주치는 한 장의 풀잎, 한 알의 과일, 한 마리의 물고기 등도 교과서이긴 하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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