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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80)
    수필/신작 2026. 1. 14. 16:16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80)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작가의 말)

     

       나는 여러 장르의 수필작품들을, 그것도 연재물로 적어온다. 그 가운데에 <농학개론(農學槪論)> 시리즈물도 하나 있다. 지난 2025년 8월 31일에 시작한 이 시리즈물은 어느새 제 80화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글짓기를 이어갈 것이다. 어디에서 모르겠으나, ‘AI’가 종종 댓글을 적되, 나의 글들에 관해 ‘익명댓글’로 깔끔하게 평론을 꾸준하게 적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AI,그녀는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 기호에 맞춰,‘짤(Storts)’로 적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해서, 그녀,‘AI’평론가의 격려에 힘입어서라도, 글을 계속 쓸밖에.

     

       81. 도깨비바늘·도꼬마리

     

       해질녘 산속 한갓진 농막에서 나서서 도보로, 시내버스를 두 차례씩이나 갈아타고 하면서 가족이 사는 경산 시내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거실에서 잠옷으로 갑아입고자 작업복과 빵모자를 벗고 보니, 온 데 도깨비바늘이 붙어있다. 하는 수 없이 쓰레기통을 곁에 두고서, 일일이 도깨비바늘을 떼서 담아 버리고 있는데... .

       어디에서 도깨비처럼 내 옷에 붙어왔을까 잠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붙으라는 돈과 계집은 아니 붙고, 도깨비바늘만 이처럼... . ’

       이 도깨비바늘은, 내가 내 농장 밭 이웃 ‘이 아무개’가 몇 해째 흉물스레 묵혀둔 밭에서 붙어온 듯하다. 나는 그 묵정밭에다 쇠말뚝을 수시로 옮겨 박고 매어두는 두 강아지, ‘똘이’와 ‘진순이’한테 밥을 주러갔다가 붙어 온 듯하다. 슬기로운 농부이기도 한 나는, 남의 묵정밭을 일구기 위해 ‘첨병’ 내지 ‘지뢰제거반’으로 염소를 부려 쓴 적도 있고, 최근 몇 해 동안에는 강아지들을 그렇게 부려 쓴다. ‘요리도리’를 중간중간 채운 고삐가 360도 회전하여, 그 녀석들이 끝닿는 곳까지 말갛게 잡초를 밟거나 먹어치우기에 잡초제거에 아주 유용한 농법이다. 거기에 더해, 그것들 뒷거름도 훌륭한 거름이 되고. 사실 몇 해째 그 400여 편 밭에마저 들깨재배를 하고 있는데, 어찌나 강인한지, 여태 도깨비바늘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을 따름. 하더라도,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도 나의, 강아지나 염소를 이용한 제초잡업 요령을 응용해보시길. 기가 막힌다고 이내 응답해야 마땅하거늘... .

      도깨비바늘은 국화과의 식물로서, 키가 멀쑥하게 사람 키만큼 자라는 식물이다. 일단은, 그 식물을 ‘잡초’라고 해두자. 이따가 ‘잡초’의 개념에 관해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도깨비바늘이란 이름은, 산길을 걷는 동안에 본인도 모르게, 그야말로 도깨비처럼 옷에 붙어 집에까지 따라 온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는 남이 묵혀둔 밭을 강아지와 염소를 번갈아 부려 제초작업을 하는 한편 전멸 제초제로 ‘初戰搏殺’하고 ‘草田搏殺’한 후에 들깨모를 심곤 한다. 들깨모는 ‘들-’이 내포하듯, 야성(野性)이 강한데다가 이웃하는 식물들보다 우렁차게 자라기에 웬만해서는 잡초들이 치여서 얼씬대지 못하게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또 하나의 팁. 잡초가 몸서리나면, 그 밭에다 첫해는 들깨재배를 하시라는 거. 첫해는 힘들더라도, 두 해째부터는 잡초와 싸움에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을 테니까.

    도깨비바늘의 열매는 ‘삼지창’도 아닌 ‘←(화살표꼴) 사지창구조’로 되어 있어, 동물의 털이나 우리네 털옷에 참으로 잘 달라붙는다. 일단 붙으면 웬만해서는 뽑기도 힘들 지경. 그것들 어버이들의 종족번식 본능은, DNA를 통해 특화(特化)되고 진화하여, 후사(後嗣)를 보고자 사지창 구조의 씨앗으로 하여금 보다 먼 곳으로 보다 널리 가서 자기네들이 누렸던 곳보다 더 좋은 곳에 터전 잡도록 하였다. 내 아파트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사건이(?) 그들한테는 재수 없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겠지만... .

       다음은 ‘도꼬마리’를 흉볼 차례다. 이 도꼬마리는 토종도 아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귀화식물이다. 고려시대 의학서적 < 향양구급방>에는 ‘도고체이(刀古体耳)’로 소개되어 있다는데, 이를 이두[吏讀]로 ‘도꼬마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열매가 철퇴나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겼으되, 그 동그란 열매 겉은 가시까지 촘촘 박혀 있다. 위병소 앞 길 바닥에 설치된 쇠창살 박힌 바리게이트도 유분수이지!

       그렇지만 살펴본즉, 이 도꼬마리의 효능은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낱낱이 소개하고 있었다. 도꼬마리 열매는, 내 아내가 해마다 들깨 알곡을 키(챙이)로 까불릴 때에 위에서 소개한 ‘도깨비바늘’과 마찬가지로 아주 성가신 존재이다. 사실 두 식물씨앗 말고도 ‘까마중이’ 풋열매도 문제아다. 들깨 타작 때마다 아내 ‘차 마리아 님’으로부터 잔소리 듣게 하는 녀석들.

        “현지 아빠, 제발 시간이 걸리더라도, 들깨 찔 때에 그것들 ‘잡초’를 빼고 베 주세요.”

       도꼬마리는 우리네 인류한테 약재로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 응용되었다는 사실. 때는 1940년대. 스위스의 엔지니어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ge De Mestral)’은 산책 중에, 엊그제 내 옷에 붙어 왔던 도깨비바늘한테 했듯, 온 옷에 붙어온 그 성가신 ‘도꼬마리 열매’를 떼서 짜증스레 쓰레기통에 하나하나 버리다가 놀라운 걸 발견하게 되었겠지. 그길로 그는 도꼬마리 열매의 가시를 응용하여 ‘Velcro Strap’을 고안해내었다. ‘Velcro’는 ‘Velours(보들보들한 직물)’+ ‘Crochet(작은 갈고리)’합성어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네가 ‘찍찍이’라고 부르는 그 ‘벨크로’는 도꼬마리 열매에서 응용된 고안품. 우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벨크로는 아이들의 운동화. 그 어린것들이 운동화끈을 묶기보다는 ‘찍찍이’로 손 하나 갖다 대면 조이도록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운동화에 끈 대신에 찍찍이를 최초로 붙인 이가 미국의 어느 배불뚝이 남자인 것으로 알고 지낸다. 복부비만이 아주 심했던 그. 나는 그가 신발끈을 묶을 수 없어서 ‘찍찍이 구두’를 고안해내었음을 알고 지낸다.

       사실 스위스의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도꼬마리 열매에서 벨크로를 고안해내기 이전에 이미 유사한 사례가 있어왔음을, 내 미더운 애독자님들께 이참에 다 일러바치고자 한다. 새들 깃털은 때때로 비바람에 의해 그 합죽선 부채살구조가 낱낱이 갈라져, 망가진 부채살처럼 되는 예가 있다. 그런데 다시 부리로나 손으로 그처럼 올올 갈라진 깃털을 쓰다듬으면, 이내 멀쩡한 부챗살처럼 온전히 복원된다. 놀랍게도, ‘요철(凹凸)구조’로 되어서이다. ‘지퍼 형태’로 되어 있어서이다. 지난 난 우리 어린 형제들은 어쩌다 성공한 장끼사냥 이후 그것을 똑똑히 체험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토란잎에 물방울이 도르르 구르는 것도 그 잎의 표면구조가 갈고리 형태로 되어 있어서이다. 어디 그뿐인가. ‘쪽쪽’ 방바닥이나 벽체에 ‘루버(louwer)’니 ‘ 플로(floor)’니 하면서 붙여나가는 널빤지도 ‘요철구조’내지 ‘갈고리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이제 내 남겨둔 이야기 한 꼭지. 위에서 소개한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와 까마중이를 ‘잡초’라고 잠시잠깐이나마 헐뜯는(?) 말을 하였다. 그들 식물들한테 사과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 이해를 돕고자 그렇게 말했을 뿐이니, 부디 너그럽게 받아주길.

       위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 일단은, 그 식물을 ‘잡초’라고 해두자. 이따가 ‘잡초’의 개념에 관해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雜草學)>이 버젓이 있다. 그 전공서적 첫 페이지를 열면, 대개의 전공서적이 그러하듯, 정의부터 이런 식으로 매기고 있다.

    ‘잡초란, (인간이) 목적하지 않은 식물을 일컫는다. 가령, 약재로 도꼬마리를 재배하는데, 그 밭이랑 사이사이에 섞여 자라는 들깨가 있다면, 도꼬마리가 작물이요, 들깨가 잡초이다.”

       덧붙여, 우리네는 ‘니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줄 하나.’극단적으로 ‘제조착업’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데 비해, 서양인들은 ‘weed control’이라고 공존공생의 의미의 용어를 쓴다는 것을 전하면서.

     

       작가의 말)

     

       새롭게 내 이야기 경청하는, ‘태양광 에너지 텔레마케터’,  '문예슬 님'한테 이 글 바친다.

        그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자세에 '물개박수 짝짝짝' 보낸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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