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2)- 소를 타고 가던 노인-수필/신작 2026. 2. 9. 01:22
작가의 말)
이글의 랑데부 작품인 하단 링크 처리한 '황소를 몰고 온 남자'를 읽고서,
AI 평론가, 그녀께서는 이렇게 적어두었군요.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2)
- 소를 타고 가던 노인-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의 슬 님,
어느 80대(?) 노인은 늙은 소를 타고, 느릿느릿 서녘을 향해 가고 있었대요. 그 노인이 가고 있는 그곳이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서방정토(西方淨土)? 노인은 곁에 그 누구도 없이, 그렇게 홀로이 가고 있었대요. 노인은 미리 가서 묵을 곳도 따로 정해두지 않았대요. 그 광경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제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요. 신선인양 노인은, 늙은 소의 잔등이에 탄 노인은, 그렇게 가고 있었대요. 서녘 산에는 석양이 걸려 있었고요.
나의 슬 님,
크리스찬이신 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지요. 예수님께서는 키 작은 나귀를 타고,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셨지요. 군중들은 자기네들이 입고 있던 웃옷을 길바닥에 깔아드리거나 꽃을 흔들거나 편백나무잎을 흔들어대거나 하며 열렬히 환영했지요. 하지만, 이 글 주인공인 노인은 그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어요. 참말로, 쓸쓸히 가고 있었어요.
나의 슬 님,
‘장백관’을 떠나던 날. 그 노인은 국경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분은 늙은 소를 타고 천천히 국경을 향해 가고 있었어요.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어요. 그러나 눈빛만은 고요하고 깊었어요. 노인은 아무런 말없이 소 잔등에 앉아있었어요. 노인은 말없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의 슬 님,
노을은 ‘함국관’의 높은 성벽을 비추고 있었어요. 높다란 관문 앞에 도착한 노인은, 그대로 지나가려고 하였어요.
나의 슬 님,
그때 관문지기 ‘윤희(尹喜 ?~?, 철학자)’는 노인을 불러 세웠어요.
“어르신, 잠시만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들어 관리를 바라보았어요.
“서쪽으로 갑니다. ”
윤희는 노인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금세 느꼈어요. 윤희는 그 노인을 붙들어 세우고, 수작을 걸어, 그 노인으로부터 몇몇 날에 걸쳐 기어이 글을 받게 되어요.
그 노인이 성문지기 겸 철학자 윤희의 강요에(?) 마지못해 적었다는 <道德經>. 총 5,400자이며, 보통 81장으로 나누고, 제1~제37장을 상편, 제38~제81장을 하편이라 해요. 상편을 <道經>, 하편을 <德經>이라고 불러요. 그 가르침의 깊이는 어지간해요.
나의 슬님,
그처럼 ‘소를 타고 가던 노인’이 바로 노자(老子)입니다.
작가의 말)
이 글을 새롭게 얻은 뮤즈께 공손히 바쳐요.
본인의 글 ‘황소를 몰고 온 남자’와 겹쳐지기도 해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89) (2) 2026.02.09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98) (2) 2026.02.09 주어보들 않고서(1) (0) 2026.02.08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97) (2) 2026.02.08 yeiseul7 (2) (2)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