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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iseul7 (2)수필/신작 2026. 2. 4. 19:58
yeiseul7 (2)
작가의 말)
이 글은 윤근택과 'yeiseul7'의 공동작이다. 나는 방금 이 글 공동작업자한테 아래와 같은 e메일을 띄웠다.
윤쌤은 이 글로 수필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e 메일 주고받음'과 '문자 메시지 주고받음'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
그리고 '공동작업(글쓴이 연명)' 글도 현대인들 감각에 맞아떨어질 거라는... .
이 모두 그대의 가없는 사랑의 결과물입니다.
꼭 안아드리고플 정도로 고마워요.
이는 그대의 '니니'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작업이지요.
또, 오줄없이, 이 새벽에 데스크 탑 컴퓨터의 키보드에 눈물방울 떨어뜨려요.
아니, 마우스 패드에다가요.
윤근택과 'yeiseul7'
우선,내( 'yeiseul7' )가 그이로부터 받은 e메일 내용을 다 그러모아 본다.
제 1)
한마디로,
'니가 다 해묵어라.’에요. 앙증맞고, 당돌하며, 총명한 님.
혼잣말하고 있어요.
‘남의 글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읽고 있구나. 내가 졌어. 배워야 해. 여태 농땡이쳤는데, 머리 염색하고 양복 입고 성당에 가야겠어. ‘냉담’ 풀고서. 그녀를 위해 기도해야겠어. 이 모두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거대한 설계인 거 같애.
그녀는 진정한 내 사람이야. 내 여생 동행할 수 있는... .’
나의 이 고백을 그대는 아시겠지요?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 (가수 이수영의 노래이기도 하당?)
제2)
‘피아노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독일 출신 '리차드 클레이더만'에 관한 이야기부터. 총명한 나의 님은요, 어느새 눈치 다 챘더군요.그대의 ‘니니’가 그 많은 수필작품을 써올 수 있었던 에너지가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다 알아차려버렸단 말입니다.
지난 번 당신의 이메일에서 ‘종지기’와 ‘유백아’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 나의 글을 보완하였더군요. 그렇게 함으로써 니니의 토막지식까지도 더 채워주셨으니까요.
더불어,나의 그대 향한 메시지의 퍼즐을 끝끝내 풀려고 하셨단 말입니다.
마찬가지에요.
리차드 클레이더만에 관해, 잊어버렸던 걸, 윤쌤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이 연서를(?) 보완해나가면 되거든요. 이 편리한 세상에.
지금부터 내 잊은 기억 되살려요, 스마트폰으로요.
그는요,
1976년 ‘폴 드 세니비유’라는 음악가가 적은 곡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로 데뷔하였어요.
물론, 윤쌤의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시리즈물에도 이 사항 있지만요,
윤쌤은 워낙 많이 바람피워(?) 자식새끼 마구 내질러댔으니, 그 많은 애새끼들(?) 이름도 가물가물. 하여간, ‘폴 드 세니비유’는 자기 둘째딸(?) ‘아드린드’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적었어요.
그런 다음, 그 곡을 제대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전세계 피아니스트들을 대상으로 수배하게(?) 되어요.그때 “ok!” 된 이가 바로 ‘리차드 클레이더만’이에요. 둘은 서로 만족해했어요. 그런 와중에 촉매제로(?) 나타나 펌프질한 이가 나타났으니.... .
그분이 바로 고(故) ‘제임스 라스트(1929~2015) 옹(翁)’이었어요. 그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음악인이어요.국적 불문하고 ,그야말로 그 명작인 <산과 계곡을 넘어>를 제대로 실천하여, 많은 음악인들을 대성시킨 분이시니까요.
그분 제임스 라스트가 리차드 클레이더만을 꼬드겼어요.(?)
“우리 악단과 그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협연하지 않으려오?”
결과는 대박이었어요.
해서,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출세작이자 데뷔곡이 된 곡이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에요.
왜 윤쌤이 이 이야기 장황스레(?) 적어내려왔을까요?
그 이유는요,
그대 이메일 주소가... ‘yeiseul7’이잖아요?
발음하기에 따라서는 ‘예술 7’이 되기도 하지요. 거기에다가 그대의 성(姓)까지 보탠다면... . 하더라도, 그대의 성만은 세상의 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으려 해요. 왜? 당신을 금세 남들한테 빼앗겨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요.
그 이름을 누구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대의 운명적 이름이로군요, ‘예술’이잖아요.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 이메일주소 이름도... . 거기다가 왜 하필이면 숫자 ‘7’을 붙였단 말입니까? 그 숫자는‘럭키 세븐’이란 뜻을 지녔으니까요.
그래요,
숙명적으로, 내 사랑 당신은 ‘예술’로 끝을 보아야할 것만 같은...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요, 무척요.
당신은 내 인생에 등불을 밝혀주시는군요.
당신은 1977년 그 곡으로 데뷔한 ‘데비 분’의‘You light up my life.’>
* 당신의 글 스승으로 자임한 윤쌤은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나 같으면, 그 글 아래와 같이 풀어갈 겁니다.
<나는 애칭 내지 별명 짓기에 관해서만은 대가이다. 학창시절 내가 지은 친구들 애칭들은 ?, ?,? 등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내가 지어 퍼뜨린 애칭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이 무슨 신통력? 이 무슨 예지력?
(중략)
최근 나는, 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라하면 서러워할 어느 유명한 ‘은둔의 수필작가’를 ~~한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분의 ~~ 등 수필작품을 여러 편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오 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신사임당(1504~1551, 향년 47세)의 말년 나이에 해당하는 40대에 이른다. 여기서 잠시. 흥미로운 것은, 우리네 여러 지폐들에는 각각 위인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그 초상화 우측에는 '소괄호 ( )' 안에 그분들의 출몰년이 아주 잔 글씨로 적혀 있어, 신사임당의 출몰년을 익히 알고 지낸다. 하여간, 나는 40대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문학작품들 아니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에 내 이름이 들어간 작품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연, 나는 잠시씩 작중 인물이 되어 대리만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수필작품에 내 애칭이 등장하게 되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활자화된 내 애칭이 분명 그곳, 인터넷 티스토리 등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탄복할 일.
나는 꿈틀대던 문학소녀의 꿈이... . (줄임표는 3의 배수로 찍는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14년 동안 토닥이느라 접어두었던 그 꿈. 그분은 ‘데비 분’이 1977년 발표하여 데뷔하였다는 ‘ You light up my life’를 음악선물로 부쳐주었다. 어떤 암시이기도 하였다. 이를 <심리학 개론>에서는 '타인암시'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나는, 그 아름다운 곡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 태어났는데... . 그 노랫말을 새겨본즉, ~~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참말로, '나는 밤 내내 창가에서 울고' 있었다. 데비 분의 그 노래 앞부분도 그러한 노랫말로부터 시작된다.
남편한테, 두 아이들한테 들킬세라,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였다.
오, 존경하는 나의 니니님!
당신은, 여태 한 번 얼굴 뵙지도 못한 당신은, 제가 한 번 뵙자고 번번이 보채왔으나 ~~ 이유로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데... .
어쨌든, 님은 ‘제 인생에 등불을 밝혀주시는 분’임에는 분명합니다.
존경해요. 사랑해요. 제게 꿈을 일깨워주신 당신을 사랑해요. 존경해요. 문운(文運)을 빌어요.
“You light up my life!”
* 사실 위 이야기가 그대의 수필작가 데뷔작이에요. '~~' 부분만 채워서 되부쳐주세요. 나는 당신께 협력하지 않았어요. 오리발이에요. 모두 다 당신이 쓰셨어요. 대신, 수필작가로 손들어준 이는 선배 수필작가,윤근택 수필작가일 뿐이에요.
* 윤쌤이 뼈대는 다 갖춰드렸으니, 총명한 그대께서는 살을 붙여서, 두어 차례 나한테서 숙제검사 받으시길.
그대는 ‘수필창작 속성반'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오. 이 모두 그대의 나에 대한 가없는 사랑 덕분이라오. 그대의 수확물이니, 노획물이니 사양하지 마시오. 위 글에서 빠진 부분만 ‘대입’으로 채워주시오. 나는 모르겠소. 앞으로 내 나이가 더 들어가면, 당신을 결국은 잃고말 터인데, 당신을 내 '추천사' 내지 '심사평' 하나로, 수필작가로 곧바로 데뷔시키고자 하는 내 맘을 알다가도 모르겠소.
아무튼, 그댈 사랑하오. 그 만남이, 뜨뜨미지근한 10년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소? 오직 사랑은 ‘태양광’이고, ‘spark’인 것을요. 섬광인 것을요. 설령, 그 사랑이 '오로라'나 '신기루'에 그칠지라도요.
바람둥이였던 '프란츠 리스트'는 세 개의 녹턴, <사랑의 기쁨> 세번째 곡에다, 어느 시인의 시에다 '오,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라'라고 곡을 입히지 않았던가요? 바로 그 점이지요. 'just now'만이 나의 몫인 걸요.
윤쌤의 충고)
윤쌤한테까지는 그대의 아픈 가족사 속 시원히 이야기하였지만, 앞으로 수필작가가 된 이후에는(윤쌤은 이미 맘속으로, 그댈 후계자 내지 제자로 점지했다? 부디, 그리 아시길.) 앞으로, 언어절제하자? 속속들이 이야기해버리면, 독자들 허허로워지니까!
사랑해, 널.
이 글 부분부분만 다시 고쳐서 윤쌤한테 되붙여 주세요. ‘살아있고’, 현대인 감각에 맞는 글이어야 하는데, 당신의 글은 이 시대에 부응하는 글이오. ‘이모티콘’도 적절히 부려 쓴... .
다시 캐물어요.
“윤쌤이 당신한테는? 나더러 잔망스레 ‘자기’라고 하는 여인은 당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방님으로부터 소박맞으면 보따리 싸서 내 곁에 와. 비록 가난하더라도, 서로 한 없이 마음 나누며 사랑할 수만 있다면... .”
오늘의 음악은요,
' 프랑크 푸르셀(Franck Poucel)'의 <Merci cherie(멀쉬 세리;고마워요, 내 사랑>인 걸요.
내 사랑, 안뇽. 또 쓸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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