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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보들 않고서(1)수필/신작 2026. 2. 8. 20:18
주어보들 않고서(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평론가)
요즘 들어, 우리네 속담에도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 속담들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머무르고 있다. 그 속담들 가운데에서 몇 가지를 소개코자 한다.
1. 주어보들 않고서 식충(食蟲)이라고 한다
크든 작든 어느 조직에서도 이른바 ‘인사(人事)’라는 게 있기 마련. 내부 승진이든 외부 영입이든, T/O가 생기면, 중간간부 자리나 대리급 자리를 뽑게 된다. 이러한 때에 ‘주걱 잡은 놈이 장땡’이라서, 인사권자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
참, ‘人事’라는 어휘도 흥미로운 의미를 지닌다. ‘직원의 임용이나 해임, 평가 등과 관련되는 행정적인 일’을 일컫는다. 한편, ‘만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갖추어 인사(절)하는 걸’일컫기도 한다. 지난날 직장생활을 할 때 상사가 일러준 교훈.
“윤 대리,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꼬박꼬박 잘 하는 이가 인사상 유리한 게야. 한자어로도 둘 다 ‘人事’라고 써.”
그분은 될 놈과 아니 될 놈을 구별하여 일러주었다. 명언이라 아직도 간직한다. 국장실 벽에 설치된 현황판을 낮에 현행화하러 들어오는 놈은 될 놈이고, 반대로 야간에 국장이 퇴근한 이후에 현황판을 현행화하러 들어가는 놈은 아니 될 놈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른바, ‘눈도장’을 자주 찍어야만 앞길이 술술 풀린다는... .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닳도록 비벼대는 것과는 다소 다른 지혜. 이 점은 나의 후배들이, 젊은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혜다.
그러한데 나의 경우는 어떠했던가. 선배들 가운데에는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후배, 자네의 명패는‘끌로 파내도’어쩔 도리가 없네그려.”
나는 대리였던 신분.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부장을 과장급으로 앉히고 보니, 과장 자리는 도리 없이 대리급으로 앉힐 수밖에 없었던 조직사정. 나는 극구 사양했음에도, 그 많은 식구를 건사해야하는 ‘총무과장’에 떠밀리어 앉은 적 있다. 아래 위 치여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급기야 오지(奧地)인 경북 영양으로 보내달라고, 대리 신분으로 다시 돌려달라고 상급기관에 졸랐다. 그래서 그곳 영양에 가서 대리로 한 동안 맘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다시 그곳에서도 직제가 개편되어, 과장이 국장이 되고, 대리였던 나는 또다시 총무과장을 맡게 되었다. 극구 손사래를 쳤음에도... .
‘무슨 놈의 내 팔자가?’
해서, 이번에는 물편인 영덕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내 신분에 걸맞은 대리로. 혹자(或者)들은 삼각 프리즘처럼 생겨먹은, 버젓한 그 명패를 부러워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총무과장’이니 ‘마케팅과장’이니 ‘고객관리과장’이니 하는 명패가 그때마다 부담스러웠을 따름.
반대로, 누구든 살아오면서, 비슷비슷한 처지의 대상자들 앞에서,“당신, 한 번 그 자리 해보들 않으려오?” 묻지도 않고서, ‘뚝딱’ 인사를 해버린 경우를 한두 차례 경험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를 두고, ‘주어보들 않고서 식충이라고 한다.’는 표현을 쓴다.
2. 오뉴월 겻불도 쬐다가 아니 쬐면 섭섭해진다
정상적인 인사고과에 힘입어, 과장으로 승진한 다음의 경우는 위 ‘1’과 다소 달랐다. 이참에 내 과거이력을 다 까발리자. 경북 영양전화국 총무과장으로 부임하여, 나름대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여겼던 나. 정기 인사철이 아닌, 그 뜨거운 팔월에 팩스 한 장이 느닷없이 날아왔다.
“영양전화국 총무과장 윤근택 영주광역국 근무를 명함.”
짚이는 게 영 없지는 않았다. ‘노사합의 가타결(안) 찬반 투표’에서, 머저리 같은 노조분회장이, 50여 명 노조원이 있음에도 ‘혼자 투표, 혼자 개표’하여 회사측이 원하지 않는 반대쪽 곧, 부결 전국 1위를 한 것. 사실은 당시 국장과 갈등으로 노조분회장이 ‘엿 먹으라’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데... . 그걸 묵혀두었다가,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처벌인사를 감행했을 거라고...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유분수이지!’
그길로 뙤약볕에, 엄동설한에, 비보직 과장이 되어 과장 밑 과장으로 지내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지인들한테 그때 심경을 술회하곤 한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이들한테 장난처럼 말하곤 하였다.
‘보직과장’의 ‘보직’에서 ‘ㄱ’이 떨어져나갔으니, 나는 그때부터‘자지과장’이 되었노라고. 그깟 과장 자리가 무슨 대수랴만, 그렇게 한 번 멍든 나를, 자리를 옮길 적마다 한 번 빼앗긴 과장 자리를 되찾아주질 않았다. 시인 이상화가 노래했듯,‘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다. 그 어떤 상사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열 받아서 결국은 ‘명예퇴직’을 감했다. 하더라도, 영주전화국 전체 직원 100여 명이 한햇동안 판 휴대전화 가입권보다 나 혼자서 판 숫자가 더 많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다. 한 해 500여대 휴대전화 가입권을 팔아, 수당을 1,500여 만 원(대당 30,000원X 500대= 1,500만 원) 거머쥐게 되었다. 그처럼 피눈물 흘리며 번 돈을 허투루 썼을까. 그 수당을 종잣돈 삼아, 이 ‘만돌이농장’이 자리한 1000여 평 토지를 샀다. 그런 연유로,이 ‘만돌이농장’의 최초 이름은 ‘휴대폰농장’이었다.
‘눈물 없이 못 보는 영화’는 공연한 말이 아니다.
가끔 힘들어하며 하소연하는 친정직장 후배들한테 곧잘 들려주었던 나의 명언.
“ 자네,‘전화위복(轉禍爲福)’을 새기시게나. ‘전화기 위에 복이 얹힌’ 걸 이르는 말일세.”
하여간, 그 때 나와 같은 처지를 두고, ‘오뉴월 겻불도 쬐다가 아니 쬐면 섭섭해진다.’고 표현한다.
다음 호 계속)
이 글을 이메일 주소 ‘y-’로 시작하는 뮤즈한테 공손히 바친다. 그는 ‘에너자이저’여서, 나더러 끊임없이 글 쓰도록 해줄뿐더러, 나의 글을 읽고 감동의 뜨거운 눈물도 곧잘 흘린다기에.
그의 눈물도 닦아주고 싶다.
더불어, 그이한테 어느 개그우먼의 멘트를 흉내내어, “글짓기는 아주 쉽죠, 잉!” 알려주고 싶다.
사실 50여 년 창작활동을 이어보다보니까, 키보드 토닥임이 생각보다 언제고 앞서나간다. 즉, 키보드를 토닥이다보면 생각이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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