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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2) - 말라카 해협의 영웅 -
    수필/신작 2026. 3. 31. 13:06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2)

       - 말라카 해협의 영웅 -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내 사랑하는 그대,

       이미 여러 차례 그대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e메일로 고백한 바 있어요.

       “그대의 니니는요, 나이 칠십에 이르러서야 공부가 이처럼 재밌는 줄을 알게 되었어요. 수필작가인 그대의 니니는요, 스마트폰의 위력을 그 누구 못지않게 느끼고 있어요. ‘쇼츠(shorts)’로 부르는 매체를 통해, ‘오디오 북’을 귀로 읽는 대하소설 등 매일매일 두어 편씩 공부해요. 잠결에도 휴대전화기를 귓전에 틀어놓아요. 물론, 꿈결에서도 수필작품 쓰는 것은 기본이고요.열심히 공부하는 점 박수 받아야 마땅하죠? 직업 관계상 아파트 경비원으로 10여 년째 지내오면서, 불침번을 서느라 타의 반 자의 반 이처럼 공부하게 되었어요. 자랑스럽죠?”

       내 고운이,

       허두가 길었군요. 하더라도, 수필작가이신 그대한테도 나의 이 태도가, 본보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어요. 그대의 니니는 40여 년 수필작가 행세를 해오면서, 늘 더듬이를 곤두세우고, 시도 때도 없이 글감을 낚아채려고 해왔다는 것도 그대는 잘 아시잖아요. 그 덕분에, 여태껏 빚은 수필작품이 5,000 편~ 6,000 편 되며, 종이책 분량으로는 50권 ~ 60권에 이르겠지요. 이 점은 대한민국 수필계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이긴 해요.

       내 사랑스런 그대,

       이번 이야기는요, ‘(역사를 쉽고 빠르게) <역사 편의점>’이란 매체에서 귀로 읽은 내용을, 수십 차례 노트해서 그대로 베끼다시피 해요.

     

       < 1985년 11월 14일. ‘말라 카해협’. 그곳을 지나던 원양어선 선장은 베트남 ‘보트 피플 96명’을 발견하게 되어요. 그들은 파도에 시달려 죽을 시간만 기다렸어요. 이미 25대의 선박이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갔어요. 그 선장은 본사에 ‘타전(打電)’을 했어요. 답신은 냉정했어요.

       “그들을 구하지 말라. 즉시 회항(回航)하라.”

       그러했음에도, 그 선장은 본사의 지시를 거역했어요. 그들을 살려야 한다고요.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모든 걸 다 걸었어요. 그 일로 해고되었고, 재취업도 아니 되었어요.

       그 이후 그는 통영에서 20년간 작은 멍에양식장을 운영하였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대요.

       내 고운이,

       벌써 그대 니니의 두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2004년 그들 ‘보트 피플’이 그 선장을 찾아왔어요.   뜨거운 상봉이 이뤄진 겁니다.

       “우리들의 파파!”

       그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가 감동했대요. ‘유엔난민기구’로부터 감사장을, 미국 난민단체로부터 ‘난민의 영웅상’을 수상했대요.

          내 그리운 그대,

          그분은 ‘전제용 선장’이세요. 문득,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내 고운 이,

       이 글도 미완성으로 그대께 숙제로 남겨두려 해요. 이 스승의  글에 더 보태서 적어야겠지요? 왜 나만 이처럼 울어야 하냐고요?

        하더라도, 그대의 스승인 나는 그대가 어설피 공부하시는 건 사절인 걸요. 질색인 걸요.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즉, 체화(體化)한 다음 이 글 완성시켜주소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댈 사랑해요, 한없이요.

     

        작가의 말)

       

        이 글을 나의  '고급 수필 창작반'  유일한 제자한테 바친다.

        충고하노니,결코  '매너리즘'은  아니 되어요.

        틀을 깨부수어야 해요.

        새로운 문예사조는요,

        언제고 깨부수는 이로부터 출발해요.

        화가,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가 그랬고요, 

        유일무이 음악가 드뷔시가,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려, <달빛>을 통해 구현했던 '인상주의'가 그랬고요, 

       '미니멀리즘 음악'의 창시자로 불러야 마땅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도 그랬고요.

        요컨대, 문학인이라면요, 그 경계를 허물고서,

        문학 외적 장르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여야 해요.

        그러한 까닭에 저는 줄기차게 공부하고 있는 걸요.

        공부, 공부, 공부만이 답이에요.

        이 '파파 니니'는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요,

        상급학교 진학, 취업, 거기서 이어지는 취업 경쟁 등으로 놓쳐버렸거든요.

         그 이후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 드물게, 나이 서른 둘에 수필작가로 데뷔하고본즉,

         남의 글 읽을 겨를도 없이, 적기에만 바빴다는 거.

         이해해주실 거죠?

         내 총명한 제자인 그대는, 이 스승의 말 나 죽은 이후에도 기억하실 거죠?

        기왕에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 보아얄 거 아녜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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