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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1)- 나이 35세에 실명에 가까울 정도였던 왕-
    수필/신작 2026. 3. 29. 05:32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1)

      - 나이 35세에 실명에 가까울 정도였던 왕-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내 사랑하는 그대,

      친구들 간에, 가족 간에 이야깃거리가 막힐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그대의 지갑에서 오만 원 권 지폐, 일만 원 권 지폐, 오천 원 권 지폐, 일천 원 권 지폐를 순차적으로 꺼내서 좌중에 물어보세요.

      “ 신 사임당은 몇 살까지 살았게? 세종대왕은 몇 세까지 사셨게? ... 이황 선생은?”

       아마 그대께서도 내가 이 글 적기 이전에는 모르셨을 걸요? 그 각각 지폐의 초상화 옆에는요, 아주 잔글씨로 출몰년을 소괄호 안에다 적어두었거든요. 일만 원 권 세종대왕 초상화 옆에는요,‘(1397~1450)’으로 적혀 있을 겁니다. 향년 53세임을 금세 셈할 수가 있죠?

       사랑스런 그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서두가 길었을까요? 충녕대군 당신은, 대군(大君) 시절부터 고기를 엄청 밝혀대요. 밥상에 반찬으로 고기가 없으면, 숟가락을 아예 들지 않을 정도였대요. 오죽했으면, 당신의 부친이신 선왕(先王)께서 이르시길, “상중(喪中))일지라도 쟤한테는 밥상에 반찬으로 고기를 챙겨주라.”

      게다가, 재임 중에는 여색(女色)을 밝혀, 자녀를 엄청 많이 낳았고, 일찍이 노인병까지 앓게 되어요. 나이 35세에 이르러, 거의 앞을 못 볼 정도로 안질환(眼疾患)을 앓게 되자, 정사를 돌볼 수 없다며, 제왕 자리를 양위(讓位)하겠다고까지 했대요. 그러자 신하들이 울면서 말렸대요.

       나의 고운이,

       세종대왕, 당신의 위업들은 너무도 많지만요,그 가운데에는요, 당신의 처지와 비슷한 ‘장애인 예우에 관한 명령(?) 내지 법령’도 꽤나 있었어요. 선천적으로 앞 못 보는 ‘지화(池和)’라는 이를 종 3품(조선조에는 정 1품~ 종 9품까지 있었다잖아요?) 직위를 주었다는 거 아닙니까? 지화는 나라의 길흉화복을 잘도 점쳤대요. 마치, 그대도 잘 아시는, 성경 속 히브리 출신‘꿈쟁이 요셉’이, 이국(異國) 이집트까지 팔려가서, 재상이 되었던 성공 스토리와 겹쳐지는... .

       내 사랑하는 그대,

       그대의 니니가 사전 준비도 없이, 낮 동안 농주로 막걸리 네 통 부어마시고 ‘독수리타법’으로, 이렇게 그대께 편지형태의 글 적고 있다는 거 신기하고 신비스럽지 않아요? 그 힘이, 그 괴력이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사랑, 사랑, 사랑! 이 점 ‘바라건대 꼭히’ 기억하소서.

       내 그리운 그대,

      왜 내가 이 글을 다 완성해야 해요, 이 늙은이가요? 자신이 즐겨 나의 제자가 되겠다고, 도제(徒弟)가 되겠다고, 나의 ‘길드(guild)’‘이슬아지 공방(工房)’에 자기 발로 찾아들었으니, 나머지는 그대가 완성해야 되는 거 아니오?

       단, 힌트는 있소이다.

       2023. 4. 29. 16:25에 그대의 니니 ‘티스토리’인 ‘이슬아지’에 올린 글, ‘저는 축복받는 이에요’를 그대로 베껴다 붙일 터이니, 그 글을 토대로 그대가 이 글 완성시켜보시오.

     

       < 하여간, 쉼 없이 글을 적어요.

     

       ‘생활이 글이요, 글이 곧 생활이다.’

     

       저는 축복받은 이에요

       살아생전 제 어머니는, 당신 슬하 아들 다섯, 딸 다섯 합해 열 남매를 두었어요. 그 가운데에서 아홉째인 제가 4년제 대학을 유일하게 나왔어요. 하지만, 그게 저한테는 크나큰 부담이었어요. ‘가정 부흥의 몫’을 고스란히 제가 짊어져야했으니까요. 당신의 태몽은 ‘도라지 뿌리 같기도 하고 인삼 뿌리 같기도 한’ 거대한 뿌리였대요. 해서, 제 선친은 ‘뿌리 根(근)’을 넣어, 돌림자인 ‘못 澤(택)’과 조합하여, ‘근택(根澤)'으로 지었대요. 당신들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논농사가 주를 이루던 그 시절, 못[澤]은 당신들 삶의 원천이었으니까요.

       정확히 1984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저는 낙향(樂鄕)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어요. 사실 대학 1학년 2학기 제대복학했던 저. 재학 중에 언론계 기자 및 프로듀서 시험을 비롯하여 십 수 차례 입사시험을 왜 아니 쳤겠어요? 모두 낙방.

       어느 날, 제 어머니는 저를 위로해주었어요.

       “야야(얘야), 오늘 이 에미가 니 큰형수 몰래, 쌀 한 말[斗] 이고, 부남면 감연리 심봉사한테 다녀왔단다. 그 양반은 우리 집 점괘가 아주 밝단다. 서모(庶母) 학대로, 내던진 싸리빗자루에 눈 찔려 봉사가 된 그 양반. 음력으로 사월 혹은 유월에 니한테 대복(大福)이 들어온다더라. 안심하거라. 니 이름이 하도 좋아서, ‘ 한쪽 어깨에 별이 뜨고, 한 쪽 어깨에 달이 뜬다’고 하시더라. 니 이름이 하도 좋아, 삼국(三國)을 ‘떵떵’ 울린다고 하시더라.”

       배지 않은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도 유분수지!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 믿지도 않았을뿐더러, 공연한 일을 하셨다고 몹시 책망했지요. 그런데 그분의 점괘는 정확하였어요. 그 해 음력 유월(양력으로 팔월), 저한테 기적이 일어났어요.

       제 이야기 겅중 뛰어넘을 게요. 오늘 저는 제 애독자님들께 아래와 같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동시에 날렸어요.

      < 다시 말씀드려요. 이력서를 쓰되, 흑백사진으로, 그것도 복사본을 붙여도 되어요. 풀이 없으면, 남의 ‘벤또(도시락)’ 뚜껑 열어, 밥풀 하나 풀로 삼아도 되어요. 님들께서 사랑하시는 수필작가 윤근택은요, 10여 년 동안 아파트 경비원 제복을 15회 갈아입어요. 여생 옷 한 벌 따로 사지 않아도 견딜 정도. 제 삶의 의지에 박수 보내주세요. 살이가 이젠 자신있어요. 젊은 날,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일자리 구하고자 전국 쏘다니다가, 당시 대학생 선호 1위 국영기업체 공채 300: 1 경쟁에서 합격했던 것도 기적이지만요, 요즘은 제 또래 늙은이들,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취업 알선한 예만 하여도 예닐곱 차례. 제발, 저를 격려해주세요. 농막 창밖에 봄비가 이쁘게 내려요. 농부이기도 한 저한테는 단비에요.>

     

       만약에, 위 ‘심 봉사님’께서, 세종대왕 재임시에 태어나셨더라면, ‘종 3품’의 관직에 오르셨을 텐데...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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