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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부화(花復花)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내 사랑하는 그대,
그대의 파파 니니는 ‘짤(shorts)’이나 유튜브나 오디오 북을 통해 엄청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지요.
이번에는 <한국사 이야기>란 유튜브를 통해 공부한 내용인 걸요. 그대께 여러 차례 말했지만요,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재편집하는 것입니다.이 편리한 인터넷 세상에, 설령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정보나 지식은 다 챙길 수 있죠. 다만, 작가의 몫은요,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만큼만 미량(微量)으로 발췌하여 정리하고 재편집하는 것.
내 사랑스런 그대,
제목으로 삼은 ‘화부화(花復花)’는요, ‘꽃에 (이어)다시 꽃이 핀다’는 뜻입니다. 면화(綿花)를 일컫는 말이며, 조선 숙종 재위 때에 태어나 정조 재위 시절에는 영의정까지 지낸 채제공(蔡濟恭, 1720~1799)과 관련된 스토리도 있지요. 사실 면화 즉, 목화는 꽃을 피운 후 다시금 하얀 솜뭉치를 꽃대에 달기에 붙은 이름이지요. 그대의 니니 농장에도 몇 포기 있으며, 겨우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하얀 솜뭉치의 꽃을 피우곤 해요.
내 고운이,
이 면화가 14세 소녀의 운명을 바꾸어버린 스토리가 있어요.
때는 조선 제 21대 왕 영조 재위시절인 1759년. 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14세 소녀가 창경궁을 향했어요. 왕비 간택령이 떨어졌던 겁니다. 1757년 왕비가 승하하자, 나이 66세인 영조는 새 장가를 들고자 했어요. 사실 후궁들 가운데에서 왕비로 스카우트할 수도 있었으나, 선왕(先王) 숙종이 ‘장희빈’으로 말미암아 궁중암투를 겪은 터에, 유언을 남겼기에 새로 왕비를 간택코자 했대요.
내 그리운 그대,
전국에서 왕비 후보자들인 처녀들이 모여들었어요. 영조는 다들 방석에 앉으라고 명했어요. 그런데 그 소녀는요, 방석을 피해 앉았어요. 왕이 그 이유를 물었어요.
“대왕마마, 제 아버지 함자가 적힌 이 방석 보 위에, 이 어린것이 앉는 것은 법도가 아니지요.”
영조는 크게 감탄했대요. 다음의 질문은 이랬대요.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무엇인가?”
그러자 규수들은 차례차례 말해나갔어요. “산이 깊사옵니다.”, “물이 깊사옵니다.” 등.
그러나 그 소녀가 자기 차례를 기다려 나직 말했어요.
“인심이 가장 깊사옵니다.”
영조는 그 소녀가 대답한 말에 관해 그 이유를 묻자, 소녀는 또렷하게 답했어요. 어진 마음이어야 한다고요.
이어지는 다음의 질문.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 이름을 하나씩 대어보거라.”
그러자 규수들은 저마다 “모란꽃입니다.”, “백합입니다.”, “장미입니다.”라고 틀에 박힌 답을 했대요. 그런데요 그 소녀는 자기 차례가 되자 총명하게 대답했대요.
“목화입니다. 꽃을 피운 후에 다시 하얀 솜꽃을 피우니까요. 백성들 의복을 만들 수 있는 그 이쁜 꽃을 피우니까요.”
영조는 그녀를 새 왕비로 낙점을 했어요. 그분이 바로 정순왕후(1745~1806)세요. 영조와 나이 차이 51세. 불행이었는지, 다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순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대요. 덕분에 궁중암투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고요.
내 고운이,
그 어린 소녀가 왕비가 되어, 궁중 시녀들한테 행한 일화는 놀라워요. 한 번은 의복을 재단(裁斷)하겠다고 자[尺]를 든 이와 나눈 이야기.
“마마, 몸을 돌려주실 수 없겠어요? 자로 몸 치수를 재려고 합니다.”
그러자 단호하게 말했대요.
“네가 몸을 움직여 내 몸 치수를 재면 될 게 아니냐?”
그처럼 위엄과 체통을 지켜나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분의 공과(功過) 가운데에서 두드러진 ‘過’는요, 정치적인 이유로 천주교인들을 박해하여 ‘정약용’ 형제분들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들한테 핍박을 가했고, 정적(政敵)들을 수백 명 살해했다는 점.
내 사랑스런 그대,
하더라도, 요즘 나이로 따져 중학교 2학년생에 불과했던 그 소녀. 슬기롭고 총명했던 그분은 궁궐 안주인이 되어, 당시 나이로 60세 장수(長壽)를 누렸더군요.
슬기로운 그대,
문득, 정순왕후를 생각하자니, 그대의 모습이 겹쳐지는군요.
파파 니니가 놓친 부분 등은 그대가 채워서 이 글 완성해보세요. 날이 갈수록 숙제더미인 거 맞죠?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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