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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련(101)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17. 6. 27. 17:55
문장수련(102)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이번 호에는 전주에 사시는 ‘김학(金鶴)’ 수필가께서 e메일로 보내주신 어느 분의 글을 텍스트로 삼는다.
원문과 문장치료 부분 함께 읽기)
아름다운 길과 사람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사람들 * 고쳐본 이유 : 관형어 ‘아름다운’이 ‘길’만 꾸미는지, 아니면 ‘사람’도 꾸미는지 불분명하다. * 수식관계가 불분명할 적에는 애매모호해진다.)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 ○○
1. 길을 나서며 혹은 출필고(出必告)
어제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전남 강진의 가우도 [☞ ‘가우도(駕牛島)’]둘레길과 장흥의 ‘편백나무 숲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새벽같이 밥을 챙겨 먹고는 거실 통로에 있는 장식대 위에 메모를 남겼다. '바람 좀 쐬러 여행사 통하여 당일로 강진과 장흥을 다녀오겠습니다. 다음에는 함께 갔으면 합니다.' 사실 장식대는 아내와 내가[ ☞나나 아내나 * ‘-와(과)’가 든 구문(構文)은 뜻이 불명확해지는 경향이 있다. 해서, 주의를 요한다.] 토라지면 유일하게 의사소통하는 우편함이기도 하다. 배낭 속에 책 한 권과 노트, 빵과 식혜, 사탕을[☞ 여행안내책자, 노트, 빵, 식혜, 사탕 등을 * 고친 이유 : 짝을 이룬 사물 열거 시에는 ‘a와 b, c와 d, e와 d’실례) 그 가게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갈치와 명태, 사과와 배 모두를 팔고 있다.] 조금 넣었다. 옷차림은 청바지에 아내가 준 테니스 모자, 선글라스를 끼고 집을 나섰다.(☞ 청바지, 아내가 사준 테니스 모자, 선글라스 등 비교적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얼마 전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가신 법정스님의 불일암을 다녀왔는데도 내 짐과 내 모습은 아직도 호화롭다.(☞ 그렇더라도 내 짐과 내 복장은 그저 호화롭다고 해야 하리라. 얼마 전,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불암사’를 다녀왔으며, 나는 그곳에서 스님의 ‘무소유’의 삶을 가슴속으로 느꼈거늘... .)
2. 버스 안에서
버스에 오르니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교수 사모님이 친구 분과 앉아계셨다.(☞교수 부인이 자기 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 고친 이유 : 가급적 객관화하여 존대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뒤쪽 내 자리를 찾아갔다.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가방도 의자에 두고 넓게 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시실 ‘버스가 ~ 좋았다.’까지는 전체 내용에 이바지하는 바가 적으므로 과감히 뺄 필요가 있다.)창밖을 바라보았다.(☞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랜 가뭄으로 곡식이 타들어 가는데 오늘내일 단비소식이 있어서인지 해가 뜨지 않고 그늘이 들어 시원했다.(☞ 내일쯤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예보가 있긴 하나, 오랜 가뭄 끝에 작물들이 다 타들어가고 있다.) 지금쯤 아내는 일어났을까?(☞ 단락을 바꾸어 짓는다. 그리고 화제전환을 위해 ‘심호흡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다.’등의 문장을 문두(文頭)에 두면 좋겠다. ☞심호흡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다.
‘아내는 지금쯤 일어났을까? 메모를 보고 화를 냈을까? 본인이(☞자기가) 며칠 동안 뾰르퉁한(☞뾰루퉁해) 한 걸 미안해하지는 않을까? ’(*고친 이유 : 혼자 마음속으로 한 말이니 작은따옴표 안에! 그리고 독립단락으로!)
젊은 날에는 바빠도 짬을 내서 자주(☞자주 함께) 여행을 하며 대화도 많이 나누었는데, 정작 나이가 들고 나니 시간이 있는데도 여행을 못한다.(☞그리하지 못한다. * 고친 이유 : 같은 문장 안에서 동어(同語) 사용을 피함. 대명사와 지시대명사와 대동사를 써 버릇하기!) 버스 안에는 남자라야 기사까지 대 여섯 명뿐이고, 대부분이 젊은 여자들인데 나보다 연장자도 있다. 다른 부부들도 우리 나이가 되면 각자의 왕국을 세우고 살까?(☞ 둘러보니 버스 안에는 기사를 포함해서 남자는 대여섯 뿐,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다. 연세 지긋한 여성은 몇 아니 된다. 그렇다면, 다른 부부들도 나이가 들면 각자의 왕국(?)을 세운단 말인가.)
3, 영암 월출산을 지나며
버스는 어느새 영암 월출산을 지나고 있다. 지인이 교장모임에서 영암으로 배구시합 가고 있다는 카톡이 왔다. 교직에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가 배구를 잘하는데 혹시 같이 가냐고 문자를 보내니 그렇다고 했다. 어제 만났는데 오늘은 다른 차로 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으니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르고 산다는 게 이럴 때 쓰는가 보다. (☞ ‘지인이~ 보다’부분은 과감히 뺄 필요가 있다. * 이유 : 전체 내용에 이바지하는 바가 적다.)내가 갑자기 영암 땅을 그렇게 지날 줄이야! 영암은 기부천사 하춘화의 고향인데, 작은 금강산처럼 보이는 월출산은 산세도 아름답다.(☞그곳 영암은 기부천사로 알져진 ‘하춘화’ 가수의 고향 아닌가. ‘작은 금강산’으로 알려진 ‘월출산(月出山)’이 있는 곳.) 영암아리랑을 부른 그녀는 40년 동안 200억을 기부했다니 연예인 기부왕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그녀 하춘화는 ‘월출산’을 노랫말에 담고 있는 그 유명한 ‘영암아리랑’을 불렀으며 40여 년 동안 200억을 사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연예인 기부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1991년에(☞그뿐만도 아니다. 그녀는 1991년 한 해 동안에) 8,000회 공연으로 세계 최다 개인 공연 기록으로 (☞공연을 함으로써 세계 최다 개인 공연 기록으로 * 고친 이유 : ‘~으로 ~으로’ 가 거슬려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한다. 만 6세 때 가수가 되어 금년에 만 61세이니 55년 동안 가수 생활을 한 셈이다.(☞ 가수 하춘화는 자기 고향인 영암을 ‘영암아리랑’으로 널리 홍보한, 영암의 홍보대사인 셈이다. 그녀에 관한 에피소드는 퍽이나 많다. 만 6세에 가수로 데뷔했다는 거 아닌가. 그녀가 금년에 만 61세가 되니, 무려 55년을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 그는 학업에도 열중하여 성균관대 '예술철학박사'로 거듭나서 국내 최초의 박사가수다.(그녀는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다. 학업에도 열중하여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전주의 얼굴 없는 기부천사도 생각났다.(☞사실 이곳 전라북도가 자랑하는 기부천사가 하춘화 가수뿐만 아니다. 내가 사는 이곳 전주에도 기부천사가 있으니... .
4. 내 고장 전주의 기부천사도 생각함
☞[단락 바꾸어 다른 예화(例話) 끌어들이든지] * 고쳐야 하는 이유 : 하춘화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다가 느닷없이 전주의 기부천사 이야기라니?)지난해에도 (☞그는 지난해에도 정확히) 오천이십일만칠천구십사원을 기부했다. 박스 안에는(☞그는 기부금과 아울러 박스 안에다 감동적인 편지도 남겼다.
“소년 소녀 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는 50대 남자라는데 아마도 어릴 적에 불우한 소년 가장이었나 보다. 17년간의 긴 세월을 소년소녀 가장을 위하여 써달라고 기부한 금액이 5억여 원에 이른다. 돼지저금통까지 기부한 것을 보면 필시 그는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인 듯하다. 또 한 사람 우리 고장 김제의 가수 현숙(본명 정현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8년간 중풍으로 누운 어머니와 7년간 치매를 앓은 아버지를 동시에 병 수발하다가 그만 결혼시기를 놓쳐버리고 올해로 만 58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그나마 다행한 것은, 그녀의 or 그러자) 남동생이 자기 자식을 누나에게 양자로 보냈단다.(☞양자삼게 하였다는 점이다. or 양자로 보냈다.) 2004년 고향 김제를 시작으로 작년에 경북 청송까지 13번째로 1억을 호가하는 이동식 목욕차량을 기부했다니 우리(☞그녀 또한) 고장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장관으로(☞나는, 잠시 인사검증 등을 거쳐 장관으로 쓸) 사람이 없다고만 하지 말고 그런 분들 중에서 복지부장관을 고르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보았다.(* 이상은 버스 안에서 이동 중에 생각한 것으로 처리하기 바람.)
5. 휴식시간에
[* 이하는 어느 특정장소 혹은 특정시간에 있었던 사항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예)‘우리 일행은 ~~한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저마다 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삽입! * 단락의 시간적 배열,공간적 배열, 물리적 배열 등.)
독서모임 회원이자 ‘아름다운 길과 사람’의 대표 K가 떡을 다 나눠주고 내 곁으로 왔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어요?”
“잠시라도 짐 내려놓고 잊고 싶어서 무작정 나섰어요.”
“참 잘하셨어요. 오늘 코스가 한적하고 좋아요.”
K는 우리 독서모임에 나온 지가 1년쯤 지난 것 같다. 첫날 나왔을 때의 인상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은 소감을 돌아가며 얘기하는데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말하면서도 겸손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신중하게 얘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뒤 일 년이 지났어도 처음과 같다. 까만 눈동자에 야무진 모습이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 박식하다. 그래서 나는 K가 내공이 깊다고 생각했다. 그런 K의 해박한 지식은 여행사대표로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
나는 여행사 이름이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산과 강을 따라 길이 있고 이 길을 동행하며 걷는 사람도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길과 사람'의 슬로건이 버스 상단에서 자막으로 계속하여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버스를 보는 사람들은 말하겠지 '저 차 안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타고 있나 보다'라고…. (* 이 단락의 내용이 과연 전체 글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과감히 뺌이 좋겠다.)
6. 가우도에서
첫 목적지인 강진의 가우도(駕牛島)(☞가우도 * 첫 단락에 이미 한자 병기했으므로.) 선착장에 도착했다. 섬에 위치한 보은산이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가우도라 했다는데, 소등을 탄 것처럼 섬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편안하게 보여주었다. 내륙인 도암면에서 716m 출렁다리를 지나 가우도에 도착하니 보은산 허리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었다. 아름다운 그 길을 따라 섬을 일주하고 마을이 가까워지니 바닷가에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웬 조각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물고기도 잡고 쉼터로 쉬기도 했는데 유배 5년 만에 장남 학연이가 찾아와서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 조각은 다산이 아들을 껴안고 반기는 장면이다. 다산은 이곳 강진 주막할머니 골방인 사의재(四宜齋, 사의는 생각은 맑게, 용모는 엄숙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무겁게 하라는 뜻이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4년을 지냈고, 가우도 보은산방에서 1년을 지냈는데, 이때 유배 5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온 장남 학연이를 만난 것이다. 부자의 감회가 어떠했을까? 서로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장남이 하는 말이 남양주에 살고 있는 우리 집에 옛날에는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척들마저 외면한 지 오래여서 세상인심이 원망스럽다고 했단다.(☞그때 장남이 하는 말이, “아버님, 남양주 우리 집에 옛날에는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척들마저 외면한 지 오래여서 세상인심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주목사로 있던 아버지 정재원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둘째형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갔으며, 셋째형 약종은 처형당하고, 다산 본인은 강진으로 유배당해 그야말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아들에게 (☞아들에게, )‘남의 (☞“남의)은혜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도와라. 남이 어려울 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때문이다.”* 직접화법!)라며 오히려 질책했다고 한다. 밤새 둘이는 그렇게 지나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얘기하고 허구한 날 눈물로 지새웠을 엄마의 근황을 묻고 답했을 것이다. 바닷가 조각 옆에 서있는 황소만 한 큰 돌이 다산 부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간직하고 있었는데 바닷물에 조금씩 지워지는지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었다. 다산은 이곳에서 시간이 나면 보은산 우두봉 산봉우리에 올랐다고 한다. 아마도 그곳에서 흑산도로 유배된 둘째형 약전을 그리워하며 먼 바다를 바라다보았나 보다.
7. 영랑의 시비(詩碑) 앞에서
다시 가우도 입구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해변에 나있는 나무 널 둘레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누군가 긴 의자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있는 조각을 붙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김영랑 시인의 조각이다. 조각 옆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오-메 단풍 들것네’ 란 시들이 목판에 적혀있었다. 한참을 더 가니 또 다른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섬에서 내륙의 대구면을 있는 (☞잇는)438m의 출렁다리다. 그곳까지의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는 평탄하여 노약자도 걷기 좋고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이어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었을 것 같았다. 배를 타지 않고 연육교를 통하여 섬을 넘나들더니 가우도는 강진에서 첫째로 손꼽는 관광자원이구나 싶었다. 다리를 건너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미항(美港) 마량포구인데 마량 놀토수산시장이 있다. 토요일에 와서 놀라는 뜻으로 ‘놀토시장’이라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럭회에 탕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특설무대에서 각설이 공연이 있다는데 오늘은 각설이 공연 대신에 노래자랑이 있었다.(☞식사를 하고 나오니, 특설무대에서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있었다. 본디는 그 특설무대에서 늘(날마다) 각설이 공연 이 펼쳐졌다고 한다.)전직 KBS 아나운서인 S가 사회를 보며 진행하는데 야한 얘기도 구수하게(☞어찌나 구수하게) 잘하는지 모여든 사람들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아가씨네'라며 칭찬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다들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수준급 가수들이어서 그런지 전주에서 온 우리 팀은 구경만 했다. 우리민족은 본디 풍류를 즐기고 무색옷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유교 풍습이 강해서 초하루, 보름, 그믐에다 5대조 제사까지 다 챙겨 치르다 보니 백의민족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마량포구는 먹거리가 풍부하여 가우도와 연계하여 아름다운 여행길이 되었다.
8. 장흥 편백나무숲에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40여 분을 가니 두 번째 여행지인 장흥 편백나무숲 우드랜드[☞편백나무숲,‘우드랜드(wood-land)’]에 이르렀다. 가우도는 덤이고 나는 이곳에서 책도 읽고 힐링을 하려고 했는데 가우도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이곳 억불산 편백나무숲은 이 고장 출신 교육자인 고(故) 손석인 씨가 정년 뒤에 고향에 내려와 민둥산인 억불산에 편백나무를 조림했다고 한다. 36만여 평에 40년생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3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서있다. 둘레길 곳곳에 쉼터인 원두막이 여러 동 있고, 둘레길도 톱밥길이 있어 걷기에 촉감이 좋았다. 이곳은 상관의 편백나무 숲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산속에 숙박시설이 즐비한데 흙집촌, 한옥촌, 목조 2층 펜션 등 여러 형태의 구조로 숙박시설이 되어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국내에서는 유일한 편백 소금찜질방도 있었다. 나는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와서 조용한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오던 길에 목공예전시관에서 조그만 나무 조각에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 놓았다. 가족의 건강과 아들의 소원성취를 적었다.
9. 귀갓길에서 혹은 반필면(返必面)
그런데 나의 눈을 멈추게 한 것은 '항상 웃으며 살자'였다. 현숙 가수는 부모님 병시중으로 청춘을 다 바쳤는데도 기부천사로 살며 항상 소녀처럼 해맑은 표정이다.
아직도 내속에 남아있는 분노가 있나 보다. 기부천사들은 하나같이 '아가페' 사랑을 나누는 것일까? 자신의 소원을 써서 매달고 빌지 않는다. 남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그런 사랑이 항상 웃을 수 있고 마음속에 있는 독소를 제거한 것 같다. 다산 선생도 아들에게 그렇게 훈계하지 않았던가? 잠깐은 편백나무 숲이 답답한 가슴을 풀게 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여행이었다.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할 시간이다. 가는 곳마다 버스를 탈시간만 알려주고 자유시간이니 자유가 행복 그 자체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단비가 내렸다. 홀로 무작정 떠나온 나를 '아름다운 길과 사람들'은 행복이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하루였다.
문장치료사 윤쌤(윤근택)의 말]
편의상 1,2,3...9로 소제목을 붙여보았다. 글쓴이도 나처럼 소제목을 붙여서 소제목마다 내용을 밀도있게 고쳐 적어보기 바란다.
참고적으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나 무조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각각 여러 개의 소제목들이 있으며, 거기 충실하게 곡을 적어나갔다. 해서, 각 소제목마다 똑똑 떼어내어도 독립 작품이 될 수 있다.
* 공지사항 :
나는 여태도록 이 ‘문장수련’ 시리물 100회분까지 공짜로 많은 독자들한테 제공해 왔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나는 농부이면서 수필가이다. 특히, 나는 농부인 관계로, 농주(農酒)와 비료와 농약이 늘 필요로 한다.
이제 감히 요청하오니, 적정 ‘문장치료비(文章治療費)’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나.
성심성의껏 농주값,비료값, 농약값에 보태쓸 돈을 앞으로는 부쳐주시길.
계좌 : 703967-02-028696(우체국,윤근택)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 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