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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9)수필/신작 2025. 12. 21. 10:34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69)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70. 이슬아지
1999.11. 20. 펴낸 나의 두 번째 수필집이자, 현재까지 종이책으로 묶은 나의 수필집 가운데에서 끝인 책 제목은 <이슬아지>다. 물론, 나의 ‘티스토리’도 ‘이슬아지’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그 ‘이슬아지’의 의미를 제대로 아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5년 현재 기준으로, 26년 전에 그 책 <이슬아지>의 책머리 및 그 책에 실은 한 작품에 그 비밀을(?) 적었을 따름이니까.
이번 호에서는 그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이슬아지’는 ‘산앵두’를 일컫는 말이다. 내가 40여 년 전 익힌 <樹木學>에서는 ‘이스라지’와 ‘산이스라지’ 두 종(種)이 소개되어 있다. 둘 다 벚나무속에 든 ‘키 작은 나무’로, 우리네 산야(山野)에 자란다. 앵두보다는 알이 잘고, 맛도 앵두에 못 미치지만, 엄연히 과일이다. 분류학상 꽃자루에 털이 있으면 ‘이스라지(Prunus japonica var. nakaii Rehder).’요, 꽃자루에 털이 없으면 ‘산이스라지(Prunu ishidoyan Nakai)’다. 그런데 당시 일본 등지에서 농학을 공부하신 우리네 학자들께서는 ‘연철(連綴)’과 ‘분철(分綴)’의 모국어 공부에만은 익숙지 않아서였던지, 예를 들어‘전나무’를 ‘젓나무’로 발음되는 대로 표기한 예도 많음을, 나는 학창시절부터 익히 알고 지내온 터. 마찬가지로, ‘이슬아지’를 ‘이스라지’로 연철표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분철로 쓰면,‘이슬+아지[←‘아찌’·‘아재비’(어린아이들은‘아저씨’를 애교스레 이렇게 부른다.]’일 거라는... . 나의 수필집 <이슬아지>는 중의법(重義法)으로 썼다. ‘나의 수필작품들은 맛도 앵두에 비해 덜하고 알도 앵두에 비해 자잘한 이슬아지 즉, 산앵두에 불과하다’는 뜻에다가 ‘늘 (눈가에) 이슬 촉촉 맺히는, 감수성 예민한 아저씨’란 의미를 중첩했던 게다. 우리 쪽에서는 그 야생 과일나무를 ‘이스라지’니 ‘이슬아지’니 부르지 않고, ‘이슬아재비’또는 ‘이스라재비’라고 부른다.
이제‘이슬아지’로부터 출발한 내 이야기는 ‘-아재비’로 되어있는 식물이름에까지 닿는다.
내가 아는 대로 ‘좔좔’ 그 이름들을 열거하겠다. 미나리아재비·실미나리아재비·큰조아재비·벼룩아재비·털별꽃아재비·노랑물꽈리아재비·쇠채아재비·미역취아재비·암회색광대버섯아재비·젖버섯아재비·등골나무아재비 등.
‘-아재비’가 붙은 식물이름은, 당해 식물명에‘-아재비’가 붙지 않은 원형(元型)의 식물과(?) 그 겉모습은 아주 비슷하나, 종(種)은 분명 다르다. 하나의 예다. ‘미나리’는 ‘미나리속(Buttercup)> 미나리종’의 식물이고, ‘미나리아재비’는‘미나리아재비(Java water-dropwort)속>미나리아재비종’의 식물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그들 관계가 우리네 촌수로 따져 부자지간은 아니나, 숙질(叔姪)관계에 있기에 ‘-아재비’란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듯. 그 ‘-아재비’관계는 ‘처삼촌 벌초하듯’에 종종 쓰이는 처삼촌과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같은 속(屬)’이라는 끈끈한 혈연관계이니까.
덤으로, 동물이름들 가운데에도 ‘-아재비’가 붙은 게 있음을 알려드린다. 곤충‘사마귀’의 다른 이름이‘버마재비’인데, 이 또한 ‘범아재비’의 연철표기인 듯. 몸집은 작으나, 범처럼 사납게 생겨‘당랑거철(螳螂拒轍)’성어(成語)까지 만들어낸 사마귀. 식물 공부하기에도 벅찬 터라, ‘-아재비’가 붙은 동물에 관해서는 생략키로 한다.
다만, 이 글을 적으면서 또 다시 근심하는 일이 있으니... .40여 년 수필창작을 해왔으나, 나의 글들이 그 맛과 알 굵기가 아직도‘집앵두’에 못 미치는 ‘산앵두’ 곧, ‘이슬아지’에 불과하리라는 불안감. 거기에다 나이 칠십 목전에 이르기까지 ‘늘 눈가에 이슬 맺히는, 감수성 예민한 ‘이슬아지’라는 점. 자못 감성적인 점만은 신의 축복이라고 여길밖에. 덧붙여,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앞으로 ‘윤 작가’,‘윤과장’, ‘만돌이농장 농장주’,‘농부님’등으로 부르기보다는 ‘이슬아지 님’으로 불러주시길.
차시예고)
‘싸리’가 아니면서 ‘싸리’라고 광대질하는 ‘광대싸리’, 뽕이 아니면서 ‘굳이 뽕’이라고 우겨대는 ‘굳이뽕(→꾸찌뽕, 구지뽕)’ 등에 관해 적으려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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