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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70)
    수필/신작 2025. 12. 23. 10:51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70)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71. ‘광대싸리’와‘구지뽕’의 변명

     

       본론에 접어들기에 앞서, 꼭히 밝혀둘 게 하나 있다. 내 이름 ‘근택(根澤)’에 관한 사항이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내 양친은 기다렸다는 듯이 딸, 딸, 아들, 아들, 딸, 딸, 딸, 아들에 이어 아홉 번째로 태어난 나의 이름을 ‘根澤’으로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나 다음 열 번째는 내 동생 ‘水澤’. 극비사항. 우리끼리만 이야기인데, 여러 정보에 의하면, 정력가였던 내 선친은 열 번째 막내를, ‘나시골’물가에서, 부부가 밭일을 하다가 호미자루 던져두고 어머니를 업어치기하여, 자식 몸서리나서 뿌리치는 내 어머니를, 강제로 취해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최초 발설자는 내 맏누님. 아직도 내 맏누님은 생존해 계시니, 내가 이 비밀 폭로로(?), 법정 증언대에, ‘사자 명예훼손죄’로, 서야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남매들 가운데에서 가장 부자인 막내 윤수택. 크크크.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허우대 건장했고 장군이었던 ‘숙량흘(叔梁紇)’이, 똘똘한 아들 하나 얻고자 세 번째 첩실로 얻은 나이어린 무당, ‘안징재(安徵在)’와 야합(夜合)하여 , 노나라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公子)를 얻었던 사건과(?) 겹쳐지기도 하고. 내 하나뿐인 동생‘水澤’도 그처럼 내 양친의 야합에서 얻은 아이였다니! 지금은 저승에 가 계신 양친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들 다섯 가운데 유독 4년제 대학교를 나온 나한테는 토지 한 고랑도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았던 점. 나시골 그 세 뙈기논은 당신들 막내아들 수택이한테 ,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당신들의 그 젊은 날 ‘물가 야합’과 관련이 있는 듯. 그 기념으로?.

      ‘참으로 좋았겠다?’

       “지금은 저승에 가 계신 내 양친, 당신들께서는 놓친 게 하나 있는 듯합니다. 아니, 당신들은 이 아홉째 자식의 재능을 익히 알고 계셨던 듯 하옵니다. 저는 대한민국 최고봉에 오른 수필작가이길 바라는 사람이지요.”

       다시 내 이야기 본류로. 우리 돌림자인 ‘澤[못;pond]’앞에다 ‘根[뿌리]’을 보태서 ‘根澤’이라고 지었다. 커다란 인삼 같기도 하고 도라지 같기도 한 태몽을 꾸어서, 그 뿌리를 아우르는 ‘뿌리 根’을 고민 없이 지었다고 들었다. 돌림자 ‘澤’은 못[澤]을 일컫는데, 쌀밥이 귀하던 시절, 벼농사의 원천이 못 즉, 저수지였음을 들어 항렬(行列)에 따라, 그 획수 등을 감안하여, 당시 면장으로 지냈다는 내 조부(祖父)가 지었을 테고... . 안타깝게도, 내 선친(先親)이 여러 남매분들 가운데에서 막내였기에, 나는 조부 당신을 뵈온 적은 없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점쟁이, 작명가들로부터, 내 이름이 사주(四柱)와 연관해서 하도 좋아서, 이름을 삼국에, 조선 팔도에 널리 떨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얼굴 내밀지 않고 숨어지내는(?) 애독자들이 그렇게 많아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뿌리[根]’와 ‘못[澤]’이 썩이나 잘 어울리는 듯.

       하더라도, 다들 살아오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한,두 차례는 해보았겠지만, “언제 내가 내 이름을 ‘근택’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가요?”식으로 박박 대든(?) 적도 있다. 이 점은 샤르트르를 비롯한 일군(一群)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명쾌한 답과도 통한다.

       ‘( )은 ( )에 앞선다.’

       이 점은 첫해 내가 낙방했던, 경북대학교 문과 계열 국어과목 괄호 안 채우기 시험문제에도 나왔던 사항인데, 앞의 ( )안에는 (실존)이요, 뒤의 ( )안에는 (본질). 물론, 그 문제만은 정확히 풀었다. 요컨대, 우리가 왜 태어났지는를 캐묻기 이전에 이미 태어났다는... .돌이켜보니, 문학인이 되고자, 문학박사가 되고자 했던 내가 그 첫 해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 무슨 말이냐고? 나는 ‘매너리즘’을 극히 싫어한다는... . 또, ‘어설프게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와 맥을 같이 한다. 40여 년 독학으로, 기초부터 ‘모국어 제대로 부려씀’을 공부해왔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의 맞춤법에 규정하고 있는 쉼표 기능 15개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확히 쓸 줄 아는 이면, 그를 훌륭한 문장가로 여기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쉼표 기능 15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덜렁덜렁 글 짓는 이라면 엉터리 작가로 본다는... .

       내 이야기 샛길로 빠져든 듯하다. 어쨌거나, “언제 내가 내 이름을 ‘근택’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가요?”그 대듦은(?), 김춘수(金春洙,1922~2004) 시인에 이르러, <꽃>이란 시에서 다시 나타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사실 시에 관해서만은 문외한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그 시에 관해 더 이상 말하는 것도 무리이지만, 그래도 김춘수 시인, 당신 이전에 이미 샤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그 문제에 관해서 깊이 고민했다는 것을. 해서, 그 시는 개뿔도 아닌 시였다는... . 그 시는 위에서 내가 내 양친한테 한, 두 차례 대들었던 그 말과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그 명쾌한 답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관계로. 적어도, 작가라면, 이러한 비평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믿는데, 이 글 읽는 님들께서는?

        여태껏 엉뚱한 이야기를 한 듯. 이 시간은 엄연히 ‘농학개론(70) 차’ 강의 시간인데... .

     

        가)‘광대싸리’가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언제 광대노릇을 했나요? 싸리도 아니면서 싸리 노릇한다고, 당신네들 인간들은 나더러 ‘광대싸리’라고 부르고 있지 않소?”

       광대싸리는 참으로 억울하겠다. 엄연히 ‘광대싸리’는 분류학상 ‘여우주머니과>광대싸리속’에 든 식물. 반면, ‘싸리’는 ‘콩과> 싸리나무속’에 들어있는 식물. 그러니 광대싸리는 ‘콩과식물>싸리속’에 든 나무와 족보가 다르다. 단지, 그 겉모습이 ‘싸리’ 같다고 하여, ‘광대노릇’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사이비로 지내는 듯 ‘광대싸리’로 헐뜯어 부르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길 게 아닌가.

       광대싸리 종족은 강변한다.

       “우리는 한국 원산이며, 일본과 대만에도 서식한다. 산과 들 어디서나 자라며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 나무 모습이 싸리류와 닮았지만, 싸리류의 잎이 3출엽인 반면 광대싸리는 홑잎이 난다.”

     

        나) ‘구찌뽕’도 ‘광대싸리’에 이어 불만을 터뜨린다

     

       “내가 언제 한번인들 ‘늙은이 아픈 다리 세우듯’,‘굳이뽕’이라고 ‘꾸역구역’우겨대던가요? 인간들, 당신네들이 맘대로 나를, 똥고집피우는 ‘굳이뽕’이라고 몰아세웠을 뿐.”

      ‘굳이뽕’은, 뽕나무와 같은 과(科)에 속하지만, 속(屬)에 이르면 서로 갈라진다. 뽕나무는 ‘뽕나무속’, ‘굳이뽕’은 ‘굳이뽕나무속’으로. 그러함에도, ‘굳이뽕’은, 줄기에 가시 박힌 것 외에는 그 겉모습이 ‘뽕나무’와 같다고 끝끝내 인간한테 우기게 된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속 시끄러우니, 니가 굳이 뽕나무라고 우기니, 앞으로 너를 ‘구지뽕’으로 불러줄 게.”

        끝으로, ‘광대싸리’와 ‘굳이뽕’이 나이 칠십의 나한테 일러주는 말을 전하면서 이 글 마감토록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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