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자점[破字卜]에 관해수필/신작 2025. 12. 27. 12:53
파자점[破字卜]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그 누구라도 살아오는 동안 점[卜]을 한,두 차례 아니 쳐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크고 작은 선거 투표장에 가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의원 선거 등에서 투표지에 날인하는 그 붓두껑에 새겨진 글자가 바로 점 ‘복[卜]’이기도 하고. 그 유래에 관해서도 알고는 지내지만, 생략키로 한다. 대신, 투표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장차 내가 뽑은 이가 어떤 사람일지는 그 누구도 예단키 어렵다. 그야말로, ‘복불복(福不福)’이다. 복불복은,‘복이 될는지 불복이 될는지 모른다’는 뜻을 지녔다. 그 발음상 ‘福’과 똑같은 ‘卜[점]’도 마찬가지.
점쟁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내방객에 관해 점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파자점’도 있다. 한자(漢字)의 획을 잘게잘게 쪼개어 해석하는 걸 파자(破子)라고 하지 않은가.
이 파자에 기초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로부터 출발.
설날 아침, 딴에는 예의범절이 있다고 자부하는 젊은이가 이웃 99세의 노인댁에 세배를 드리러 가서 넙죽 큰절을 하면서 덕담을 건넨다.
“어르신, 새해에도 강건하게 지내시고 ...‘백수’를 누리소서.”
이에, 그 노인은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예끼, 이 놈! 나더러 올해 죽으라고 악담을 하고 있구먼.”
여기까지 내가 이야기하였건만,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애독자님들도 계시리라. 나이 99세를 ‘白壽’라고 한다. 일백 ‘百’에서 한 획 즉, ‘一’을 뺐으니,‘白(99)’이 된다. 마찬가지로, 파자에 의거, 나이 88세를 ‘米壽’라고 부른다. 이 ‘米’를 차례대로 읽어나가면, (거꾸로 선) ‘八’ ,‘十’,(바로 선) ‘八’이기에. 참, 쌀을 일컫는 ‘米’는 볍씨뿌리기부터 한 톨의 쌀알을 얻기까지 88회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단다. 우리는 ‘America’에서 따와서, ‘美國’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인들은 ‘米國’으로 표기한다는 것도 이참에 알아두시길.
파자점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국 송나라 시절 ‘사석(謝石)’과 ‘소강절(邵康節)’이 유명하다고 한다.
사석이 유명하다가기에, 남송 황제 고종이 평복을 입고 사석한테 파자점을 보러가게 된다. 사석은 고종한테 흙에다 마음 내키는 글자를 한 자 써보라고 하였다. 고종은 손가락으로 그 흙 위에다 ‘一’을 그었다. 그러자 사석은 ‘土[흙]’위에 ‘一’이니, 금세 점 보러 온 이가 ‘王’임을 알아맞히었다.
북송 때 소강철은, 어느 날 말[馬]을 잃어버린 사람이 와서 ‘墻(담장)’을 써서 내보인다. 그러자 소강철은 찾으라는 말은 아니 찾아주고,‘침상 밑에 도둑이 있다’고 엉뚱한 답을 한다. ‘墻’을 파자하면,‘牀(평상)’의 왼쪽 ‘來’아래 ‘面(얼굴)’인데, ‘來’아래 얼굴을 숨기고 있어, 눈에 아니 띄니 침상 알래 도둑이 숨어있다고 단박에 알아맞히었다.
이제 한반도로 넘어와서 파자점에 능했던 인물들 소개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재자 박정희 전직 대통령의 운명을 풀이한 점쟁이가 있었단다. 그는 파자점을 통해 의뢰인인 박정희의 운명을 이렇게 풀이하였다고 한다.
“ ‘木(十八;18년. 사실 그는 ‘18년 단임제’였다.)만에 ‘卜[점]’을 쳐보니, ‘一(한번만)’ 더 해쳐먹고 ‘止(그치라했거늘)’, 말을 아니 듣다가, ‘己(내 몸 같은)· 巳(뱀 같은)· 已(이미 이) ’ ‘臣(신하)’로부터 ‘....(불 火 받침임. 땅!땅!땅!땅!) 총을 맞되, 확인사살당할 운명이다.”
정말 놀랍게도 독재자 박정희는 그러한 최후를 맞았다.
다음은,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그 애비를 본따 다시 반란을 일으켜 권좌를 찬탈한 이방원의 파자점괘. 글 길이를 감안하여, 이성계 파자점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계유정란(癸酉靖亂)’을 꾸미고 있던 이방원은 한양에서 유명한 맹인 점술가인 ‘홍무광(洪武光)’을 찾아간다. 점술가는 앞을 볼 수는 없으나, 흙바닥에다 의뢰인이 내키는 한자(漢字)를 쓰도록 한 다음, 감각 빼어난 검지손가락으로 그 글자를 더듬어 풀이하는 걸로 유명하였다.
이방원은 ‘田’자를 썼다.
그러자 점술가가 검지손가락으로 그 글자를 짚어 탄식조로 대답하게 된다.
“쌍일병립(雙日竝立)이니, 두 개의 태양이 나란히 떠 있는 형국이오. 역적지사(逆賊之事)로고.”
‘日’과 ‘日’이 겹쳐져 있음을 그렇게 풀이하였다.
점술가는 이어갔다.
“사방개구(四方開口)이니, 백성 여론이 두렵구나.”
순간, 이방원은 흠칫했다.
의뢰인 반응 아랑곳 않고 점술가는 풀이를 이어나갔다.
“ 입 口 네 개이니, 왕위 찬탈로 백성들 구설 면하기 어렵겠소이다.”
점술가의 풀이는 끝나지 않았다.
“ 좌벌우벌(左伐右伐)하여, 王이 되겠소이다. 즉, ‘田’자의 좌측벽과 우측벽을 허물면 ‘王’자가 된다. 사실 공교롭게도, 후일 이방원은 왕위찬탈 즉시 문신 장몽주와 무신 김종서를 쳤다.
이방원은 며칠 후 다시 그 맹인점술가 홍무광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그 흙판에다 ‘一’자를 적어 점괘를 물어보았다.
“ 土(흙판) 위에 ‘一’이니 ‘王’이 아니오?”
그제서야 홍무광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임을(?) 알아, 예를 갖춰 이방원한테 큰절을 하였다고 한다.
끝으로, 여기까지 내 글을 따라와 읽어주신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만 덤이다. 이는 파자점이 아니라 통계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라니, 앞으로 자녀들, 손주들 작명에 도움되기를. 역사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지닌 이들은 대개가 이름 두 자 가운데에서 받침 없는 글자로 끝난 이들이라고 한다. 이는 동서고금 공히.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새끼’인지 ‘-스키’인지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받침이 ‘니은(ㄴ)’으로 끝나는 이름도 좋다고 한다. 그 기준이면, 내 이름은 ‘근택’보다 ‘택근’이 나은 듯. 또, 하나 .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큰일을 저지르는 이들의 이름 받침에는 ‘이응(O)’으로 끝나는 예가 많다고 한다. 김일성·문세광·김우중·김대중 등.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울타리[生-] (2).... 저는요, 유년시절부터 '모국어 공부' 철저히 했어요 (2) 2025.12.29 산울타리[生-] (1) ..... 저는 천재가 아녜요. 이야꾼일 따름이에요 (2) 2025.12.27 라디오가 일곱 대(3) (2) 2025.12.25 라디오가 일곱 대(2) (2) 2025.12.25 라디오가 일곱 대(1) (2) 202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