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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5)- 세종대왕이 품었던 여인들 가운데에는-
    수필/신작 2026. 2. 21. 10:49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5)

        - 세종대왕이 품었던 여인들 가운데에는-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나의 슬 님,

       그대의 ‘니니’는 드디어 미쳤나 보아요. 그대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지 않건만, 그 동안 내가 그대 도움으로 쓴 수필작품이 과연 몇 편에 달할까요?

       객관식 문제에요.

       (가) 10편

       (나) 15편

       (다) 20편

       (라) 25편

       (마) 모르겠다

     

       그 정답은 ‘(마) 모르겠다’에요.

     

        나의 이메일과 휴대전화기 문자메시지를 통한 수필폭탄에, 음악 폭탄에, 용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그대께 경의를 표하며... .

       내 사랑하는 그대,

       나는 매일 거의 24시간 내내 공부하고 있어요. 농막 처마 밑에는 두 대 쌍나발(?) 이룬 라디오에서 24시간 내내 ‘KBS FM ’이 흐르고요,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격일제로 지내는 날은요, 종일 휴대전화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음악’과 더불어 유튜브를 통한 ‘오디오 북’즉, ‘귀로 읽은 세계 명작’ 등을 감상해요. 그 가치로운 매체들은요,‘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를 이어가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해요. 공부가 이처럼 재밌을 줄은 진즉에 몰랐어요. 거기에 더해, 이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점이 그대한테도 본보기가 될 듯도 하여서요. 그대로부터,“니니님은 천재세요.” 찬사(?) 거듭 듣고자 해서요.

       사랑스런 ‘눈밑 애교살’ 여인,

       이번에 나를 울린 선인(先人)들은 세종대왕의 여인들 두 분입니다.

     

       1. 소헌왕후(1395~1446, 향년 51세)

     

       당신은 내 고향 경북 청송의 ‘청송 심씨’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쪽에서는 그 마을이 ‘덕천’임을 들어, ‘덕천 심씨’라고 해요. 아직도 그 마을은 심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요.

       사실 당신은 그곳이 아닌 경기도 어느 고을에서 태어났어요. 명망가 자제였던 당신은 나이 13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왕궁으로 가게 되어요. 사실 그대의 니니가 거의 매일 공부하다시피 하여, 조선조 왕실 결혼풍습도 익혀 왔는데요, 얼굴 반반한 게 ‘뽑히는 기준’은 아니었더군요. 정략적(政略的) 결혼이었을 거라고 믿어요. 그 미모와 재능으로 따지면야, 내 사랑 그대가 그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A+’로 간택되었겠지만요.

       하여간, 그렇게 궁궐에, 당시 태종의 셋째 아드님이었던 ‘충녕대군(후일 세종대왕 됨.)’의 배필이 되었어요. 당시 충녕대군은 15세였고요. 그 어린 것들이 애기 만드는 법을(?) 어떻게 깨쳤대요, 글쎄? 그런데 그대의 니니가 셈을 해본즉, 소헌왕후는 나이 17세부터 계속 아기를 생산했더라고요.

       “그 어린 것들, 참으로 기특하죠? 그처럼 왕실의 새끼들을 무려 ‘8남 2녀’나 생산했으니까요.”

       향년 53세로 생을 마감한 세종대왕. 여러 업적을 들어 성군(聖君)으로 추앙받지만, 그 권력을 무기로, 눈에 차는 여인이면, 그 지위나 신분 가리지 않고, 나이조차 가리지 않고 다 취한 남정네였다는 것을요.

        내 사랑하는 그대,

        내가 왜 이야기를 이렇게 몰아갈까요? 청송 심씨, 소헌왕후께서는 참으로 어질고 지혜로운 여성이었음을 그대께 말하는 겁니다. 그 많은 후궁들 서리에서 질투는커녕 ‘내명부의 기장’을 세워나갔다는 거 아녜요? 후궁들은 당신을 항상 존경하고 따랐다고 해요. 그대의 니니가 셈해본즉,소헌왕후 당신은 나이 37까지 계속 왕자와 공주를 생산했더군요. 하기야, 그대의 니니도 5남 5녀 양친의 자식들 가운데에서 아홉 번째로 태어났기는 했지만요.그리고 때늦게 그대와 ‘사랑놀음’하지만요. 당신의 남편인 세종대왕한테 얼마나 귀엽게 굴었으면... . 속된 말로, 그 ‘옥문(玉門)’이 헐렁해질 대로 헐렁해졌을 텐데요.

       여기서 돌발상황!

       “윤쌤,옥문이 뭐에요?”

       이 바보, 곧바로 국어사전 펼쳐보시길.

       내 그리운 그대,

       소헌왕후는 그 많은 후궁 서리에서, 특히나 신혼 초 당신 부친과 삼촌이 역모죄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모친을 비롯한 온 가족이 관노(官奴)로 팔려갔음에도, 향년 51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그 자리, 왕후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힘은요, 희생·봉사·헌신·자애·겸손 덕분이었다고 <조선왕조 실록>에는 전해요.

     

       2. 신빈(愼嬪) 김씨

     

       세종대왕의 그 많은 여인들 가운데에는요,노비 출신 ‘김 아지’도 있었어요. 그분은요, 본디는 소헌왕후 소녀시절에 부렸던 13세 소녀 노비였어요. 소헌왕후보다 11세 아래인 분이였어요. 소헌왕후가 입궐한 이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그분을 ‘몸종으로(?)’ 입궐토록 했고요, 나중에는 당신이 발 벗고 나서, ‘아지’를 왕인 세종대왕께 천거하여 ‘승은(承恩)’입도록 했어요.셈해본즉,당시 세종대왕은 나이 30, 아지가 ‘첫 팬티’ 내린 때는 21세. 그분은 소헌왕후 (8남 2녀 생산)에 이어, 아기 생산에 2위를 차지했대요. 그 숫자도 나 다 알지만요, 내 사랑, 그대께서 농땡이치지 말고 공부하시라고 여백 남겨 두려 합니다.

       이내 그대께서는, 나더러 말해오겠지요?

       “윤쌤, 그 다음 그분들 두 여인의 이야기는요?”

       더는 알려주지 않으려오. 이 또한, 나의 유일한 수필 제자인 그댈 훈련시키는 방법이라오. 사실 이 윤쌤이 제자인 그대께 고백할 것 하나는 있다오. 아직 오전 열 시도 아니 되었건만, “윤쌤, 벌써 ‘쩨리뽕’ 되신 거죠? 근데 키보드를 그런대로 독수리타법으로 잘 토닥이시는군요. 오·탈자 그리 아니 보이는데요? ” 하시겠군요.

        자, 여기서 숙제당?

       사실 그대의 윤 쌤은 ‘신빈 김씨’에 관해서도 A4용지 넉 장 정도 메모해가면서 공부하였다고요. 그런데 스승인 나만 왜 개고생해야냐고? 나머지는 그대가 채워서 이 글 완성해.

        그리고 그 레포트 제출기한은 넉넉잡아 3월 15일로 하자?

       그댄 이런저런 핑계댈 게 분명하오.

       “윤쌤, 두 아들녀석 개학도 도와주어야 하고, 나날 덤터기로 쌓이는 직장일도 있고 해서요. 그러니 이번 봄 학기는 레포트로 때우면 아니 되겠어요? ”

        내 사랑하는 그대,

        “ 알짤(일절) 없다. 그 기간 내 과제 수행하지 않으면, 이번 학기 F학점 처리할 테니, 그리 알라고.”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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