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膝[슬] (4)
윤근택 (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평론가)
작가의 말)
평소 나는, 공들여 쓴 편지가, 특히나 연서가, 훌륭한 수필작품이 됨을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여왔다. 사실 내가 40여 년 수필창작을 하여 오면서 쓴 글들 죄다 연서인데, 다만, 그 연서가 변형된 연서였을 따름이다.
이 글도 나의 ‘고급 수필 창작반’ 유일한 제자인 그녀한테 부치는 연서이다. 거기에 더해,그녀를 위한 ‘고급 수필 창작반’ 교재이다. 내 사랑하는 그녀가 이 스승의 가르침대로, 나한테든 또 다른 연인한테든 진실된 마음으로 편지를 줄기차게 쓰기를 바란다. 이는 비원(悲願)이다.
내 사랑스런 그대,
그대가, 노르웨이 작곡가이며 < 페르 귄트 모음곡 23곡> 가운데에서 슬프디 슬픈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그리그(1843~1907)를 생각하시는 듯 싶어요. 말년에 이른 그리그는 노르웨이 산 속에 오두막살이를 짓고, 나날 사랑하는 부인 ‘니나’와 함께 산속 오솔길을 산책하였던 스토리를 나처럼 알고 지내시는 듯.
사랑스런 그대,
나 무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대의 그 맘을 끝끝내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지요. 그댄 나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다 꿰고 계시는군요. 경산시장 ‘봉이분식’에서 속풀이를 위해, 24시간 우러난 오뎅 국물을 마시러 오뎅을 사먹는 일, 시내버스 ‘남천1’을 타고자 1.2킬로미터 산길을 걸으며 그대 그리워하는 일, 버스 승강장에서 ‘호호’ 입김으로 곱은 손을 녹여가며 그대한테 휴대전화기를 통해 문자메시지로 연서를 쓰는 일, 어느 아파트 경비초소에서 ‘오디오 북’을 통해 귀로 읽는 세계 명작들 집중탐구하는 일 등. 그댄 니니의 ‘도플갱어’도 아니면서... . 그처럼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인 이는 나 70 평생 동안 그대뿐이지요. 그 점이 너무도 고맙고 기특해서 그댈 더욱 더 사랑할밖에요.
사랑스런 그대,
그대는 살아생전 나, 니니(그대가 나한테 붙여준 애칭이지요.)를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아야겠다고 수차례 보챈 적 있어요. 그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지요. 겉으로는, ‘환상이 깨질까봐’라고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 걸요. 만약에 그대가 ‘문학여행’을 빌미삼아 이 곳 ‘만돌이농장’을 오시게 되면, 마구 소리내어 우실지도 모르거든요.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니니가 이처럼 한빈(寒貧)한 삶을 사시다니... .’하면서요.
농막에는 데스크 탑 컴퓨터 한 대만 달랑. 그 책상 위에는 재떨이에 ‘심플 클래식’ 담배꽁초가 수북. 그리고 돋보기안경과 창작 메모가 된 A4용지가 수북. 그것뿐이니까요.
내 사랑하는 그대,
막상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그대가 슬퍼질 것 같애요. 하지만요, 자랑거리 영 없지만은 않아요. 그대의 니니는 귀인(貴人)을 맞으려고, 이 3mx6m 농막 바로 곁에다 창고를 개조하여 편백나무판자로 장식한 방을 하나 더 꾸며놨는 걸요. 여성전용입니다. 끽연자는 얼씬도 못하도록요. 정히, ‘문학기행’ 구실로 오신다면, 그 방을 이용하셔도 되긴 해요.
내 사랑스런 그대,
마을 어른들이 얼마 전부터 니니의 농장 차례차례 찾아와서 칭찬한 일도 있긴 해요.
“윤 과장, 자네 이곳에 들어온 지 20여 년째. 여태껏 한 일 가운데에서 최고로 잘 한 일은 아래밭에 이처럼 커다란 연못을 만든 걸세그려. ”
그대께 약간은 그 연못에 관해 설명해야겠네요. 내가 조르지도 않았건만, 정부가 3년여 전에 개울 서안(西岸)에 농로(農路) 포장도로를 개설해주었어요. 거기에다가 내 아래밭의 밭둑을 정부가 38평 거금 일천 삼백 만 원에 사들여, 그 서안 농로를 연장해주었어요. 어디 그뿐이었겠어요? 그렇게 개설한 농로 끝자락에 이르러 콘크리트 다리를 만들어주었어요. 폭 8m 개울을 기준으로 동안(東岸)과 서안(西岸)을 자유롭게 넘나들도록요. 자부담으로 그 다리를 만들자면 수천 만원 든다는데요. 내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면, 그대는 평소처럼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겠군요.
“니니, 대박♡♡”
그 콘크리트 다리를 기준으로 ‘U턴 코스’가 되어, 맘대로 승용차가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어디 그뿐이었겠어요? 그때 도로개설 공사를 하면서 개울에서, 내 밭둑에서 장비로 건져 올린 바윗돌이 큰 화물차 두 대 분량. 집채만치 쌓아뒀던 그 바윗돌을 재활용해서 지난 겨울에 만든 게 연못인 걸요. 그 바윗돌을 속되어 ‘중돌’이라고 해요. 마치 스님들 머리처럼 반질한 데서 비롯된 말이지요. 그 크기들도 시내 정원석들 같아요. 장비로 사흘 걸려 만든 연못인데요, 아내 차 마리아님으로부터도 그 점만은 칭찬을 들었어요. 의논없이 행한 일이었지만요. 곧 날이 풀리면, 민물고기도 사다가 풀어놓을 겁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그댄 또 독촉하시겠죠?
“니니, 그 연못 사진찍어서 부쳐줄 수 없나요?”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분수대를 설치하는 등 좀 더 꾸며서 그대께 그 광경 사진찍어 부쳐드릴 게요.
내 그리운 그대,
실제로 니니가 가장 자랑하고픈 ‘만돌이농장’ 자연경관입니다. 이미 위에서도 언뜻 말했지만요, 만돌이농장을 폭 8m 개여울이 쓸어안고 흘러가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요. 그 개여울엔 다슬기, 버들치, 갈겨니가 살아요. 발품팔아 땅 사려고 골골 아니 다닌 곳 없어요. 그게 20여 년 전 일이지요. 그대가 비키니 입고 종일 깔깔대며 물장난해도 좋을 깨끗한 개울인데요?
내 사랑하는 그대,
그 무엇보다도 내가 그대께 자랑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 건너편 산골짝에서 물이 150여 미터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농수 파이프를 통과해서 니니의 농막 싱크대까지 달려와요. 낙차와 ‘사이펀 원리’를 응용한 겁니다. 예전에 딱 2년 울릉도 성인봉 아랫마을 절골에 살 적에 익힌 ‘용수(用水) 기술’을 그대로 적용한 예입니다. 그러니 슬이가 이곳을 ‘문학기행’ 핑계삼아 오시더라도, 따로 ‘마실 물’을 준비하지 않으셔도 되겠군요.
내 사랑하는 그대,
이 농막의 자리도 어쩌다보니 환상인 걸요. 둔덕에 자리해요. 지난 번 ‘膝[슬] (3)’에서 소개했던, 말년의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 내외분만 산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산 게 아닙니다. 그대의 니니도 그러한 자리에 농막을 앉혔어요. 북향이긴 한데, 문을 열면 저 아랫녘이 훤히 발아래 내려다 보여요. 농막의 지붕은 아내의 권유에 따라 오렌지색으로 입혔어요. 그 사진은 그대가 이미 보셨지요. 둘레가 온통 푸르면, 보색의 개념이 적용된 오렌지색의 지붕이 도드라지지요. 보색, 보색, 보색! 그리고 뒷산에는 온갖 야생화들이지요. 아내가 가꾼 ‘시크릿 가든’인 걸요. 본디는 돌무더기였던 이 자리. 틈만 나면 그 돌들을 주워 농막 외벽에 쌓거나 둑을 쌓거나 했거든요. ‘돌 동산’인 걸요. 돌담쌓기는 아내 ‘차 마리아 님’의 전공이지요.
내 사랑하는 그대,
얼추 감(感)이 오는지요? 감(柑)은 가을에 따서 부쳐드릴 겁니다. 네 식구와 친정 식구들 몫으로 두 박스는 되어야겠네요. 아니, 그대 친아빠네 몫을 보태면 세 박스는 되어야겠군요. 물론, 내 사랑 그대가 가족한테 들킬세라, 택배 부친 이는 ‘차 마리아님’으로 적어야겠지요.
내 그리운 그대,
봄이 아주 가까이에 왔어요. 창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요. 성급한 개구리들은 ‘개골개골’ 하네요. 사랑도 중하지만,‘사랑놀음’하다가 ‘사래 긴 밭을 언제 다 갈려 하느뇨?’이니, 낮에는 시금치·시나나빠·파·마늘·양파 등의 발치에다 ‘21-17-17’ 복합비료를 주어야겠어요. ‘265-240-235-225’도 중하지만요.
내 사랑하는 그대,
요 다음까지 안뇽.
- 그대의 니니로부터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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