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새에 관한 추억(1)수필/신작 2026. 3. 9. 12:52
참새에 관한 추억(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참새,(*제시어 다음에는 쉼표를 친다.) 그 누구라도 금세 떠오르는 말이 있을 듯. 바로 ‘참새 방앗간’. 방앗간을 만난 참새들은 그냥 지나칠 리 없다는 말 아닌가. 실제로, 나는 마을 초입에서 승강장 시내버스에서 내려 1.2km 산길을 걸어, ‘만돌이농장’으로 오곤 하는데, 이따금씩은 시내버스 배차시간에 못 맞추어, 윗마을 ‘신방리’가 종점인 시내버스를 못 타는 예가 있다. 대신, 아랫마을 금곡리 ‘금곡 삼거리’(*독자들로 하여금 작은따옴표(‘ ’)처리함으로써 ... .)까지는 같은‘남천1’ 시내버스이되,‘원리’ 종점 차도 있고, ‘하도리’가 종점인 차도 있다. 덕분에, 경산시장 앞에서 ‘남천1’이면 무조건 타도 된다. 다만, 걷는 거리가 다를뿐. 그래서 아랫동네 금곡리에서 내릴 적도 있다. (*내 고운이이며 유일한 ‘고급수필창작반’제자인 그대가 이 부분 더욱 압축해서 짓기를 바란다. 대신, 독자들로 하여금 아주 쉽게 상황 그릴 수 있도록은 해야 한다. 이 점도 숙제이며 문장수련의 일환이니까. 군대에서 하는 말, ‘고참이 철모에 똥을 싸도 그것은 작전이다.’명심하면서.)그곳에는 ‘금곡정미소’가 있고, 그 정미소에는 늘 참새들이 무리지어 ‘재잘재잘’ 쌀알을 주어먹곤 한다. 마치 발바닥에 스프링을 달아놓은 듯 ‘통통’ 튀는 그 귀여운 것들을 보면, 내 고운이의 ‘통통대는’ 그 목소리 떠올리기에 족하다. 작사가 겸 소설가인 양인자 선생이 적고, 그분 부군인 김희갑 작곡가가 곡을 입힌, 이선희 가수의 노래, <알고싶어요>에도 이런 노랫말이 들어있다.
<(상략)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하략)>
내 고운이의 그 전화목소리와 겹쳐지면서, 그 방앗간 참새들의 재잘댐은 언제고라도 귀엽기만 하다. 실제로 온종일이라도 내 고운이의 전화목소리만 듣고프다.
한편, 1982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조정희는 <참새와 허수아비>란 곡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나는 나는 외로운/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날 찾아온 널/ 보내야만 할/슬픈 나의 운명/ 훠이훠이 가거라/ 산 너머 멀리멀리/ 보내는 나의 심정/ 내 님은 아시겠지/(하략)>
하필이면, 볏단에다 어설피 옷을 입힌 허수아비와 참새의 숙명적인 관계를, 그처럼 애절하게 노래하였다. 사실 나도 본심과는 달리, ‘지푸라기허수아비’처럼 ‘노란 참새’를 ‘훠이훠이 ’쫓으려고 한 일도 많았다.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본 내 고운이는, 연륜답지않게 태연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곤 한다.
“누구 맘대로요?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친다하여 이‘고운 참새’가 쉬이 달아날 성싶어요?”
참새, 그 ‘훠이훠이’쫓는 일은 주로 어린 우리들 몫이었다. 참말로, 쫓는 일에 관해서만은 너무도 익숙해 있었다. 몸으로 익혀왔다. 학교에 갔다 오면, 양친은 일렀다.
“야들아, 뒷논에 가서 참새 쫓아래이.”
전혀,(* 문장 전체를 꾸미는 부사어인 경우, 쉼표를 치는 버릇들이기.)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님에도 왜 우리한테 그 무의미한(?) 일을 자꾸 시켰을까? 평소 내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큰소리로 노래를 하곤 하였다.
“운호네 새야! 안호네 새야! 오늘만 까먹고 내일은 송호네 논에 오지말거래이.”
사실 내 어머니는 언어감각이, 후일 청년기에 이르러 수필작가로 데뷔한 이 아들보다 빼어났던 것 같다. 마을에 택호가 ‘운호’인 영감과 ‘안호’인 영감이 실제로 살았다. 그리고 내 선친의 택호는 ‘송호’였다. 즉, ‘윗논(웃논)’과 ‘아랫논’을 그처럼 패러디하여 일러주었던 게다.
어쨌든, “훠이!훠이!”해도 그때뿐이었다. 깡통이나 냄비를 두드려 소리를 내어도 그 순간 뿐이었다. 떼지어 ‘포르르 포르르’운호네 논에 날아갔다가 또 다시 송호네 논으로 돌아왔다. 또 요란법석을 떨면, 안호네 논에 날아갔다가 또 다시 송호네 논에 날아오곤 하였다. 다 지은 나락농사,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새들이 그렇게 훔쳐가는 양도 만만치 않았을 터. 하더라도, 그 몸집 작인 것들이 축내는 벼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무모한(?) 짓을 우리한테 시켰을까?
자, 곧바로 중국으로 내 이야기 물꼬를 돌린다.(* 그대의 윤쌤이 위에서 펼친 이야기가 하나의 복선이기도 했다는 걸 지금부터 깨우쳐야 해요.) 일전,‘오디오 북’으로 ‘펄 벅 여사’의 대하소설 <대지>를 귀로 다 읽었다. 그 소설 주인공인 ‘왕룽’과 그의 아내 ‘오린’이 메뚜기 창궐로, 벼 수확이 급감하자 온 마을 사람들과 메뚜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도 군데군데 나왔다. 그런데 참새 이야기는 없었다. 펄벅 여사가 그 대하소설을 적은 때는 1931년.
그런데 1950년대에 이르러, 그 곳 중국에 ‘모지리’ 최고권력자가 나라를 온통 휘젓게 된다. 그는 권력욕에 취해 본마누라 버리고, 마구 휘젓고 다니며 성병(性病)에 걸린 상태에서, 두 번째 어린 여자를 거의 강제로 취했고, 그녀한테 성병을 감염시켜 영구불임토록 하였고...... 그것도 부족하여 세 번째 여자를 취했고... . 인간적 기본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그가, 그 거대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도 기가 막힐 일. 그가 바로 ‘마오쩌둥(1887~1975(향년 82세)’이다. 딴에는 뭘 좀 해보겠다고, 1953년에는 ‘5개년 경제개발 계획’, 1956년에는 ‘백화제방 정책’, 1956년 겨울에는 ‘대약진운동’, 1958년~1962년에는 ‘인민공사정책’등을 마구 분별력 없이 쏟아낸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 ‘인민공사정책’의 일환으로 명령내린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은 기가 찰 노릇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타마작운동(打麻雀運動)’혹은 ‘소감마작운동(消減麻雀運動)’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온다. 그도 빈농(貧農)의 자제로 태어났기에, 내가 위에서 이야기하였던, 어릴 적 참새의 폐해를 경험하기는 했을 듯.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무식할 수가?
그는 전 인민한테 명령을 하였다.
“참새는 우리 인민의 곡식을 훔쳐가고 빼앗아 가는 해로운 새이니, 지금부터 모조리 잡아죽여라.”
그 길로,그 한 마디가 곧 법이 되어 버린, 자연법 무시한 무법천지의 나라 중국이 되어버린다. 온 인민은 수령의 지시에 따라, 꽹과리 치고, ‘훠이훠이’ 하고, 총을 쏘고... 참새집을 허물고, 알을 깨고... 온갖 지랄을(?) 다해 2억 마리의 참새를 직접 죽이거나 스트레스 받아 뒈지게 하거나 하였다. (* 이 대목에서 내 고운이 전화목소리 듣고프다. 이처럼 격렬한 표현을 그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소?)
이듬해 벼농사가 대풍(大豐) 이뤄, 온 인민이 배불리 먹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60년 4월 중국인민 4,000만 명이 굶어죽게 된다. 그길로 부랴부랴 구 소련 후르시초프 서기장으로부터 20만 마리 참새를 수입하여 들판에 풀어놓게 되지만, 그것은 뒷북이었다. 뒷꽹과리였다. 그 무식쟁이 통치자는, 손가락 끝에 지문 다 닳을 지경으로 비벼대는 휘하의 충고에도 다소 힘입었겠지만, ‘참새 목숨 20만 : (그가 말한)인민 목숨 4천만’과 맞바꿔치기 한 셈.
지난날 농학도였으며,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 등단한 지도 40여 년 되는 나. 내가 이렇게 글을 적고 있음에도 내 고운이, 그대마저도 이 대목에 이르러 마구 헷갈릴 듯.
나는‘천적(天敵)’과 ‘생태계의 질서’의 개념을 이미 암시적으로 다 말한 거다.
중국의 그 멍청이 최고지도자가(?) 그렇게 씨부릴 적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학자들로 하여금 ‘쇼프트 웨어’ 개념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대처했다는 거 아닌가. 덩치만 컸지, 머저리 같은 중국과는 달리, 참새들 배를 메스로 쪼개어 ‘모이주머니’내용물을 분석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백성들도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한 셈. 그랬더니, 참새들 모이주머니에서 메뚜기,딱정벌레, (?) (* 열거하는 사항이 두 개는 불안하고 세 개 이상은 넘치니, 내 사랑하는 유일한 제자, 그대는 이것조차도 이참에 익혀두길.) 등이 주를 이루고, 벼알은 그 양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보너스 수준이라는 걸. 그걸 기초로 삼아, 대한민국 농촌에서는 메뚜기의 천적인 그 귀엽고 사랑스런 참새를, 내가, 내 고운이 그대를 대하듯, 멀리도 가까이도 않고 함께 산다는 거 아닌가.
참새, 그것들 이름에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참꽃’과 더불어,‘참새’라고 부르게 된 내력과, ‘참새과(-科) 참새’에서 ‘베짜기새과 참새’로 분류학상 이름이 바뀐 내력까지 다음 호에는 적으려 한다.
이만 총총. 농주인 막걸리를 벌써 세 통 부어마셨으니, 못다 이룬 글은 후속작으로 .
작가의 말)
나는 40여 년 본격 수필작가 행세를 해오는 동안, 뮤즈 없이는 단 한 편의 글도 적지 못하였다. 즉, ‘이 글을 최초로 그녀한테 보여주어야지’ 하며 적어왔다는 말이다.
이 글을 내 고운이한테 공손히 바친다. 반술 상태 지나 온술이 다 되어간다. 곧 하산하여, 경산시장 ‘봉이분식’에 갈 것이다. 거기서 오뎅 세 개와 24시간 우러난 국물 먹을 것이다. 그게 저녁밥이다. 그리고 밤새 뒤척이며 꿈속에서도 후속작을 구상할 것이다.
내 애독자님들, 두루두루 사랑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치, 꼬치, 꼬치 (2) 2026.03.11 참새에 관한 추억(2) (0) 2026.03.10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2) 2026.03.04 ‘정결한 여신’이여 (2) 2026.03.01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6)- 진주,진주,진주- (0)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