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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에 관한 추억(2)수필/신작 2026. 3. 10. 22:34
참새에 관한 추억(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참새, 그 누구라도 금세 떠오르는 말이 있을 듯. 바로 ‘참새 방앗간’. 방앗간을 만난 참새들은 그냥 지나칠 리 없다는 말 아닌가.
‘참새에 관한 추억(1)’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 참새, 그것들 이름에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참꽃’과 더불어,‘참새’라고 부르게 된 내력과, ‘참새과(-科) 참새’에서 ‘베짜기새과 참새’로 분류학상 이름이 바뀐 내력까지 다음 호에는 적으려 한다.>
자, 이야기 이어가기로 하자. 분류학상 참새가 참새과(-科)로 분류되어왔으나, 현재는 ‘베짜기새과’로 재분류되어 있다. ‘베짜기새과’라니, 흥미롭지 아니한가. 사실 지난날 나의 수필작품들 가운데에는 ‘베짜기새’도 한 편 있다. 그 글에는 아프리카 ‘나미비아’라는 나라의 나미브 사막 강변에 베짜기새들이 살고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그 새들 무리들이 집을 짓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대를 거듭하여 집을 짓되, 우리네 아파트 형태로 ‘공동주택’을 짓는다. 지푸라기 등을 물고 와서, 마치 베를 짜듯이 시도때도 없이 이엉을 인다. 사실 베를 짜듯이 교직(交織)하는 게 아니라, 이엉을 이듯 거듭 꽂아나간다. 한낮의 더위와 한밤의 추위를 견디고자 그렇게 한다.
참새를 ‘베짜기새과’로 분류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 참새들 집짓는 방식이 그러한 데에서 비롯된 듯. 하더라도, 내 어린 날 경험했던 참새들 집은 꼭히 그렇지만은 않았다.
‘ 어땠기에?’
우리네 초가집 처마 끝 이엉을 그대로 이용하더라는 거. 특히, 겨우내 그것들은 초가 처마 이엉 속에 깃들이더라는 거. 그곳은 온돌, 그 온기(溫氣)가 머무는 곳. 겨울이 되면, 어린 우리는 참새잡이를 하곤 하였다. 국방색 ‘기역자형 후라쉬(‘프래시’를 그렇게 불러야 제맛이었다.)를 켜고, 사다리를 걸치고... 손을 집어넣으면 쉬이 참새를 포획할 수 있었다. 석쇠에다 구워 먹던 참새. 그 맛을 고추달린 우리만 즐기려고, 다섯 살 손위 누부야 ‘말자 씨’한테는, 어른들 말씀을 빌어 ‘용용 죽겠지’하며 그대로 말하곤 하였다.
“누부야, 딸아들(여자아이)이 참새고기를 먹으면, 종발이(종재기) 깬다던데?”
사실 그렇게 참새 포획을 할 때 지금은 고인 이 된 내 막내누님 ‘말자 씨’의 협력은 놀라웠으나... .
어른들은 어쩌다가 산비둘기를 잡아, 아궁이 숯불에 구울 때에도 요상한 전설을(?) 말하곤 하였다. 이제금 생각해보니, 그 속셈 뻔하건만.
“야들아, 비둘기는 두 개 알만 낳는다는구나. 그러니 너희들은 먹으면 안 돼. 자식이 귀하면 아니 되니까.”
참새 사냥은 초가지붕 이엉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겨우내 논둑에 가면, 쥐구멍을 임차하여(?) 그 귀여운 것들이 둥지삼아 밤잠을 자고 있었고, 우리는 가차 없이 포획해 왔다.
참새들은 ‘포장마차’ 주요 메뉴였던 시절이 있었다. ‘참새구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공급이 딸리자, 포장마차 주인들은 ‘메추리’혹은 ‘어린 병아리’를, 참새라고 속이고 장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새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는 사라졌지만... .
참새잡이에 관한 짜릿한 추억은 내 나이에 이른 이들은 다 갖고 있을 터. 겨울이어야 했다. 그 무대는 소여물 써는 작두가 있는 곳이어야했다. 내 아버지는 당신의 큰아들인 ‘경택’이와 그 위험천만인 작두로 짚을 매일 썰었다. 그렇게 썬 짚과 콩깍지를 헛간에 쌓아 두곤 했다. 그곳이야말로 ‘참새 방앗간’. 우리 조무래기들 형제는 덫을 놓았다. 아버지가 삼은 싸리삼태기를 그곳에다 비스듬히 세우고 작대기로 괴고, 좁쌀을 흩여놓고 ... 줄 달아 안방 창호지를 뚫고서... 저격수인양 그것들 목숨을 노리곤 하였다. 사실 그렇게 하여 그 귀여운 것들을 포획한 일은 거의 없었지만... .
아, 세월이여! 추억이여!
‘새마을운동’ 노래에도 있듯.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에 따라, 급속도로 도시화해버렸기에, 참새는 초가집 이엉이 없는 내 고향마을에서도 아주 가까이에서는 보기 힘들다. 하더라도, 그것들 후손들은 사람의 새끼들인 우리와 언제고 ‘가까우면서도 먼 당신’관계로 지내는 건 분명타.
‘재잘재잘’ 내 고운이의 전화목소리는 종일 들어도 반갑듯, 참새들 ‘재잘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립다. 내일은 일부러라도 저 아랫녘 ‘금곡정미소’로 가봐야겠다. 그러면 거기서 휴대전화기 벨이 울리고, 내 고운이의 전화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려나. 그 목소리는 ‘가짜 새’가 아닌 ‘참새’일 테니.
작가의 말)
내 고운이한테 이 글을 바친다. 모자라는 부분은 나의 제자답게 과감히 고쳐서 ‘숙제검사’ 받는 맘으로 되부쳐주시길.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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