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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 꼬치, 꼬치수필/신작 2026. 3. 11. 10:18
꼬치, 꼬치, 꼬치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참새 방앗간.’이 따로 없다. 나는 해질 무렵 ‘만돌이농장’ 혹은 ‘슬이농장’을 출발하여 1.2km 산길을 걸은 다음, 동구(洞口) 시내버스 승강장에 닿는다. 시간당 한 대씩 오가는 ‘남천1’시내버스를 타고, 20여 분 여러 곳을 지나면 경산시장 입구에 닿는다. 거기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네 버스 승강장을 지나면, 가족이 사는 아파트 앞에 곧바로 닿을 수는 있지만... .
경산시장 입구 ‘봉이분식’이야말로 ‘윤근택 수필가의 참새 방앗간’. 그곳 포장마차 형태 내지 가판대 형태의 가게는 24시간 영업을 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 눈치보들 않고 이런저런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물론, 홀도 따로 갖춰 있지만, 역시 그런 음식은 밖에서 서서 오들오들 떨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나는 그 여러 종류의 음식 가운데에서 오뎅(←oden)만을 사 먹게 된다. 참, 이 오뎅이란 말은 ‘어묵’의 비표준어이고 일본식음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오뎅은 국물이다!”
이는 나의 지론(至論)이다. 사실 나는 오뎅을 사먹으러 그곳에 가는 게 아니라, 덤으로 마시게 되는 오뎅국물을 먹고자 그곳에 가게 된다. 낮 동안 서너 병 밥 대신으로 마신 농주인 막걸리로 인한 속풀이에는 오뎅국물이 나한테만은 만판이다. 손님이 들끓는 오뎅가게나 돼지국밥집에 가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기본상식이다. 넘쳐나는 손님들 덕분에 부득이 선순환(善巡還)으로 이어져,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오기에 그렇다.
위 나의 이야기는 ‘양념’에 해당한다. 양념이되, 지나친 양념에 해당한다. 즉, 위 단락 전체를 빼버리더라도 나의 이 글은 전혀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 점을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너그럽게 받아주시리라 믿는다. 나의 유일한 ‘고급 수필창작반’ 제자인 그대도 이 점을 중히 여기길. 하여간, 위 단락은 양념장에 해당한다.
종지에 담긴 양념장. 간장이되, 파 총총, 청양초 총총, 양파 총총 들어있는 그 간장. 나는 국자로 종지에다 그 간장을 적당히 퍼담되, 가급적이면 파·청양초·양파를 많이 건져 담는다. 그런 다음 종이컵에다 24시간 우러난 오뎅국물을 국자로 가득 채운다. 오뎅국물 들이키기는 서너 컵. 그 종이컵 국물에도 간간하게 양념장을 푸는 걸 결코 잊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오뎅 먹기.
실제로, 수필작가인 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이다.
‘꼬치,꼬치,꼬치!’
내가 먹는 오뎅은 주름잡혀 대나무고챙이에 꽂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예전에 빤스(팬티) 고무줄이 터져, 새로 고무줄을 넣을 때에도 젓자락 끝에 고무줄 실마리를 묶어 그렇게 하였는데... . 우리네는 그렇게 대나무꼬챙이에다 이런저런 음식을 꿰어 먹는 음식을 ‘꼬치’라고, 약속이나 한 듯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게 되었다는 거.
거슬러, 제사상에 진설하던 그 제물을 ‘산적(散炙)’이라고 불렀다. ‘散炙’이라...... ‘散’은 ‘흩다’는 뜻도 있지만, ‘따로따로 떨어지다’라는 뜻도 지녔다. 가난하여 육류의 고깃덩어리를 제물로 바치지 못하지만, 갖가지 육류를 정성껏 꽂아 바치고자 했던 정성에서 비롯된 어휘는 아닐까 하고서. 그리고 ‘炙(적)’을 파자(破字)해본즉, 참으로 흥미롭기만 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月’같지만, 여기서 쓰인 글자는 ‘肉(고기 육)’이라는 점. 그리고 ‘火’ 받침은 말 그대로 불에 구운 걸 일컫는다. 꼬치, 꽂이, 꼬지 등으로 부르는 음식은 ‘산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제사상에는 ‘散炙’말고도 또 다른 제물을 받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煎)’이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이런저런 음식재료를 갈분(葛粉)이나 밀가루와 섞어 지져내는 음식을 통틀어 ‘煎’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우리 쪽에서는 ‘지짐’이라고 하는데, ‘부침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또한 온갖 음식재료를 섞어 조상님께 바치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산적’과 ‘전’을 즐기고 있으니, 우리네 한민족 핏속에 면면히 이어오는 식습관임에는 틀림없다.
오늘도 해질녘 하산길에는 경산시장 입구에서 ‘남천1’시내버스에서 내릴 것이다. 윤근택 수필작가의 참새방앗간 ‘봉이분식’에 갈 것이고, 거기서 오뎅을 빼먹고 난 다음, 대나무고챙이 수로 ‘700원X 2~3개=?’로 현금결제할 것이다.
‘꼬치여, 꼬치여, 꼬치여!’
작가의 말)
내 고운이한테 이 글을 바친다. 모자라는 부분은 나의 유일한 수필창작반 제자답게 과감히 고쳐서 ‘숙제검사’ 받는 맘으로 되부쳐주시길.
그대는 수필작가 윤근택의 팬 카페, ‘이슬아지’의 3대 회장임을 아소서. 240-235-225. 그댄 225이지요. 여류시인인 235는, 내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했더니, 뒷북을 치더군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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