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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7)- 999일의 기적 -수필/신작 2026. 3. 13. 11:45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7)
- 999일의 기적 -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내 사랑하는 그대,
이번에는 어느 여류수필가가(?), 가뭄에 콩나듯, 자기가 필요할 때에만 한 해에 한 두 차례 전화 걸려와서, 이메일로 자기 글 보낼 테니,‘눈가는 부분’ 좀 고쳐달라고 볼멘소리(?) 하던 걸 전하고 이야기 펼쳐가려해요.
“윤 선생님, 저는요, 최근 4년 동안 한 편도 적질 못했어요. 그것도 문제이지만, 그런데 윤 선생님께서는 헤프게 마구 쏟아내시는 것도 문제 아닐까요? 더군다나, 인터넷에 있는 이야기를 베끼다시피하시니... .”
자신이 게을러터진 걸 뉘우치지 않고 그렇게 말하다니 우습죠? 바보멍청이가 따로 없지요. 글감은 흔해빠졌거늘, 늘 ‘더듬이’ 곧두세워두지 않으면 그런 꼴이 되어요.
사랑스런 그대,
그대도 잘 아시다시피, 나는 스마트폰를 통해 유튜브를 24시간 개방해두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취득하고 있지요. 오디오북을 통해 세계 명작 대하소설 등도 잠결에 귀로 읽는다고도 말하지 않던가요? 이 스승의 이 충고는 꽤나 중요해요. 글은요, 쓰는 게 아니라 편집하는 겁니다. 다양한 경로로 취재(取材)를 하는 한편 A4용지에다 몇몇 날 메모해나가다 보면, 방향이 모색되고 제법 쓸 만한 ‘글 꼴’이 저절로 갖춰지더라는 거.
지금부터 펼칠 이야기도 마찬가지 경로를 통해 얻은 내용을 재편집하는 걸로 만족해하는 걸요.
시작은 어느 유튜브 ‘명령을 어기고 고아들을 배에 숨긴 남자’였어요. 그대의 니니는 그 내용을 수차례 듣고, 보고, 메모하는 등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지요. 이어서, 그 ‘남자’의 정체 등을 끈기있게 검색해나갔죠. 출처는 ‘재외공관 소식’ 외교부 공식 블로그 2016.6.21. 9:11.입니다. 굳이, 내가 살을 따로 붙일 것도 없이 그대로 베껴다 붙인 다음, 내 말을 몇 마디만 (註1) 과 (註2) 중심으로 보태도 되겠군요.
<재외공관 소식
[덴마크] 전쟁통에 열차 사고로 죽을 고비…15세소년 구해준 ‘덴마크의 천사’
덴마크 정부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유엔에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고 곡물 수송선이었던 유틀란디아(Jutlandia)호를 급히 개조하기 시작했다. 4개의 수술실과 365개의 병상은 물론 X선 장비와 치과, 자체 의학연구소와 약국 시설을 갖춘 병원선으로 탈바꿈한 이 배는 1951년 1월 23일 국왕의 명을 받아 한국으로 출항했다. 당시 의료진으로 유틀란디아호에 승선했던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최정예 요원이었다. 42명이 정원이었던 간호사 선발에 몰려든 지원자는 4000여 명을 헤아렸다. 선장이었던 (註1)카이 하메리히 씨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한국을 돕기 위해 덴마크 적십자 의장직을 던지고 유틀란디아호에 올랐다.
안데르센과 인어공주의 나라에서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유틀란디아호는 999일 동안 한국인과 함께 웃으며 전쟁 속에서 ‘동화’를 만들었다. (중략)
주덴마크 한국대사관 내에 문을 연 유틀란디아호 기념홀에는 덴마크공과대학교에서 기증한 유틀란디아호 3D프린팅 모형이 전시됐다. 기념홀에는 당시 4명의 간호사들이 착용했던 유니폼과 군용 배지, 여권을 대신했던 선원 수첩과 한국 민간인 환자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전시됐다.(중략)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북선을 아는 것처럼, 덴마크 사람들은 모두 유틀란디아호를 안다. 이 배는 1951년 초 부산항에 도착해 휴전 이후까지 999일 동안 3차례에 거쳐 한국에 파견됐다.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배인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는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엔군 부상자 5000여 명과 수만 명의 한국 민간인을 치료했다. 이 배는 50여 년 전인 1965년 임무를 마치고 해체됐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진 이후 피 흘리고 아파하던 한국에 처음으로 달려온 유틀란디아호는 배 이름과 같은 제목의 노래로 되살아나 덴마크의 (註2)‘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하략)>
사랑하는 그대,
위 기사에는 없지만, 이제 그대의 니니가 (註1) 카이 하메리히 씨 (註2)‘국민가요’로 따로 빼내어 보충하면 되겠어요.
(註1) 카이 하메리히(Kai Hammerich, 1894~1963) 사령관
그분은 덴마크 적십자사 수장이었대요. 사직서를 내고, 그 병원선 지휘관으로 승선했대요. 유엔군의 규정과 지시에 따라, 군인들 외에는 민간인 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음에도 죽어가는 전쟁고아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야음을 틈타 몰래몰래 6,000여 명 태워 시술해주는 한편 선박 한 칸에 고아원을 만들어 운영했대요. 나아가서, 그 아들을 포함해서 민간인 18,000명을 치료해주었대요. 그분의 노력은 후일 국립중앙의료원 기틀이 되었대요.
(註2)‘국민가요’
1986년 그곳 덴마크 가수, ‘킴 라이센’이란 분이 <유틀란디아(Jutlandia)>란 노래로, 금세 국민가수가 되었다고 해요.
그 노랫말 한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 그때 한국에 전쟁이 있었지/‘유틀란디아’라는 이름의 배가 전쟁에 참여했어/병원으로 쓰기 위해 항구를 나섰지(하략)//>
내 사랑스런 그대,
굳이, 내가 ‘분탕질’할 일이 뭣 있어요. 이 내용만으로도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인 것을요. 감동 스토리인 것을요.
내 그리운 그대,
이처럼 글감은 흔해빠졌어요. 다시금 이야기하지만요,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마시길. 편집만으로도 가능하기도 해요. 이는 그 많은 문학 장르들 가운데에서 수필장르만이 지닌 특장점이기도 하다는 걸 결코 잊지마시길. 슬기로운 그대께서는 이 스승이 이처럼 암시를 주는 것조차도 금세깨달으실 듯해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요.
요다음까지 안뇽.
작가의 말)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도 더 궁금한 점 있으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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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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