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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4) - ‘모례리(募禮理)’, 모례리, 모례리-
    수필/신작 2026. 4. 8. 13:30

    감히, 말씀드려요.

    제 글은요,

    살아있는 글 즉, 곁에 누구를 두고 들려주는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뜬 구름 같은 이야길 더는 적지 못하겠어요.

    40여 년 동안 글짓기를 해오다가 보니까요.

    님들 두루두루 사랑해요.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4)

                     - ‘모례리(募禮理)’, 모례리, 모례리-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내 사랑하는 그대,

      그분은 당신의 고국인 캐나다로, 21년간의 주님의 사역(使役)을 마치고 돌아갔어요. 1975년, 81세로 눈을 감기 직전에 지인(知人)한테 고백했어요.

      “사람들은 나한테 왜 젊음을 그 낯선 땅에 버렸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나는 버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한국 땅에서 매일 그분을 만났으니까요. ‘남한테 지극히 작은 거 하나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그 약속 하나만 믿고 갔을 뿐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나한테 더 큰 사랑을 보여주었어요. 한국은 내 집이었고, 그들은 내 형제들이었어요.”

      너무도 귀여운 나의 그대,

      지금부터는요, 그분 삶에 관해 간략간략 메모 형태로 적을 텐데요, 그대는 이 ‘파파 니니’가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항을, 마저 채워서 이 글 완성해보시길.

      이 작중 인물은요, 1921년 캐나다 어느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여인이었어요. 신앙심으로, 목사가 되고 싶었으나, 그 당시 분위기상 여성이 목사 안수가 아니 되자, 선교사 자격으로 조선으로 오게 되었어요. 1942년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일으키자, 외국인을 추방하게 되어요. 그분은 뱃전에서 다짐하게 되어요.

      “기어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거다.”

      그분은 1947년에 다시 돌아왔어요. 그러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다시 쫓겨나게 되어요. 그러했음데도, 그분은 다시 한국으로, 주님의 ‘미션’ 즉, 사명으로 여기며 돌아왔어요. 그분의 첫 수술 대상은요, 일곱 살 소녀였어요. 그 소녀의 배를 가르자, 그 뱃속에 500마리의 회충이 들어 있었고, 그 회충으로 인해 그 소녀는 죽고 말았어요. 이에 충격받은 그분은요, 1959년원주에 ‘원주연합기독병원’을 세우기에까지 이르렀어요. 그때 한 소녀환자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두고 독백한 것도 퍽이나 인상적이지요.

      “있잖아요, 저 밝은 햇빛만 보아도 제 병이 곧 다 나을 것 같애요.”

       내 그리운 그대,

       그분은요, 원주의 빈곤한 이들한테 소를 사주고, 쟁기를 사 주는 등 자활의 기회를 만들어주기까지 하였대요. 그밖에도 그분이 이 빈곤했던 대한민국에서 이룩해낸 업적은 퍽이나 많더군요. 하더라도, 살이가 바쁘단(?)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그대께 이 미완성 글도 숙제로 또 남겨두려 해요. 그분 생애에 관해 공부하시길.

      내 보고픈 그대,

      그분이 누구시게요? 바로 위 부제목에 소개한‘모례리(募禮理)’인데요, 그분의 성함을 음차(音借)한 것입니다. 그분께서도 그 이름을 무척 좋아하셨대요. ‘예를 존중하고(사모하고)... ’의 뜻을 지녔으니까요. 그분이 바로 ‘프로렌스 제이 머레이(Florence J. Murray;1894~1975, 향년 81세) 의학박사’세요.

     

     

      작가의 말)

      

      이 글을 나의 유일한 ‘수필 창작 고급반’ 제자한테 선물로 준다. 하더라도, ‘나무위키’ 등을 통해, 그분의 일대기를 더 탐구하여 이 글 완성하길. 이 스승이 그분 일대기를 왜 공부 아니 하였을까만, 교육적 효과를 생각해서 여기서 끝.

    왜 나만 줄기차게 공부해야하냐고? 수제자 하나 두고서, 힘도 부치는 터에. 하더라도,삐질세라, 이 말은 해야겠어.

    “ 그댈 한없이 사랑해.”

     

     

      문제)

     

      이 글 적는 동안 750ml들이 이곳 ‘남천 (맥반석) 막걸리’ 몇 병 마셨을 거 같아요?

     

    (가) 한 병 (나) 두 병 (다) 세 병 (라) 모르겠다

     

    답은 ‘(다) 세 명’이다? 물론, ‘(라) 모르겠다’도 답이다? 왜? 그댄 내 곁에 없으니, 모를 거 아닙니까?

      그댄 또 잔소리하시겠지요?

     

      “파파 니니, 건강 챙기셔야 해요. 저한테 걱정 끼치지 마세요. 오래도록 니니의 ‘연서(?)’거듭거듭 받아 읽고프니까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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