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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6)- 피신을 거듭한 철학자 겸 사상가 -
    수필/신작 2026. 5. 26. 16:20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6)

      - 피신을 거듭한 철학자 겸 사상가 -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그는 <사회계약론>과 <에밀>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지 전에 친구한테 편지를 썼다.

       “두 책이 세상에 나오면, 나는 파멸에 이를 게요. 그래도 나는 쓸 수밖에 없었다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사회계약론> 책이 나온 사흘 만에 파리 고등법원에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는 짐을 싸서 자기가 태어난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하게 된다. 그곳에 닿자, 이번에는 <에밀>이 길 한 복판에 쌓여 불살라지게 된다. 그는 또다시 이리저리 피신을 하고, 끝내는 스위스의 어느 섬에 은둔하게 된다.

       대체, 그 두 책에 무슨 내용을 담겨 있기에?

       우선, <사회계약론>부터. 그 동안 수백 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왕권신수설’에 항거하여, 모든 권력은 자유·평등·자연·우애에서 나오며, 왕일지라도 혹 시민의 맘에 아니 들면, 왕좌(王座)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단자로 지목되었을 게 뻔하다. 살펴본즉, 그의 저술 내용이 참으로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

      둘째, <에밀> 이다. 어느 가정교사가 가상의 작중인물 남자아이‘에밀’을 교육해나가는 과정을 적고 있다. 매질 따위의 훈육이 아닌,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 길러나가는 과정. 어릴 적에는 자유롭게, 청소년기에는 또 이렇게 저렇게 길러나가야 한다고 적고 있다. 거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 책 뒷부분에 이르면 종교적인 사항 즉,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적었던 게 말썽이었다. 목자(牧者)들의 획일적인 이끎에 맹목적으로 따를 게 아니라,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적고 있다. 종교계가 분개했을 것은 뻔하다.

       그 일로 그는 은둔과 피신을 거듭하며, 오솔길을 걷거나 식물채집을 하거나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여생을 지내게 된다. 한편, 그는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아주 진솔하게 온갖 이야기 다 담아 고백하는 <고백론>을 적음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그가 <사회계약론>·<에밀>·<고백론> 등의 주요저술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살펴볼 차례. 그는 학교라는 데를 가본 적 없다. 그의 최초 선생님은 그의 부친이었다. 제네바 시계공이었던 그의 부친은 독서광이었다. 집에는 온갖 책이 쌓여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아직 10세가 되지 않은 그를 무릎에 누이고 책을 읽어주었다. 덕분에, 이 글 주인공은 문자를 익히기 전에 이미 귀로 그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던 셈. 그들 부자(父子)는 밤을 꼴딱 새면서 책을 읽고, 때로는 웃고, 또 때로는 울고 하였다.

       거슬러, 이 글 주인공은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출산후유증으로 어머니를 잃게 된다. 후일 그는 말하곤 하였다.

       “나는 어머니를 죽였어. 그것이 내 불행의 원인이었어.”

       어린 그는 자기 모친이 어떤 분이었는지 이따금 부친한테 여쭤보게 된다.

       “아들아, 네 어머니는 똑똑하였고, 음악과 문학에도 조예가 있었어. 그 무엇보다도 이 애비를 무척 사랑했단다. 물론, 나도 네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지.”

       책 읽어주는 부친이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닥친다. 그의 나이 10세 때. 부친이 사냥터에서 어느 귀족 남자와 무엇이 틀렸던지, 칼부림한 통에 송사(訟事)에 말려들게 된다. 당시 그곳 제네바 법도 우습기만 하다. 신분의 차이로 귀족은 언제고승자가 되고... 하층계급인 그의 부친은 그쪽 법에 따라 감옥에 가거나 그곳을 떠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했다. 그의 부친은 10 살배기 아들을 두고 떠나게 된다. 그의 부친은 아들아이가 상처입을세라, 뒤돌아보들 않았다. 그 이후 더러는 부친으로부터 편지는 왔으나, 그는 천애고아가 되고 만다.

       그는 외삼촌댁에 맡겨졌다. 외삼촌 ‘가브리엘 베르나르’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어린 이 글 주인공은 불편했을 것은 뻔하다. 그의 외삼촌은 그가 13세가 되던 해에, 근교 어느 목사한테 맡겨 공부토록 한다. 그는 그 엄격한 규율 등이 영 맘에 들지 않아 뛰쳐나오고 만다.

       정처없이 몇몇 날 알프스산 오솔길을 걸으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던 10대 소년. 그는 먹고살기가 막막하자, 어느 공방(工房)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공방의 주인이 이유없이 매질을 하는 등 어찌나 구박해대는지, 어느 날 그곳을 탈출한다. 또 방랑은 이어졌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 위에서 소개한 그의 책<사회계약론>의 바탕에는 그가 10대 소년 시절에 겪었던 아픈 추억이 깔리지 않았겠나?

       그가 16세가 되던 해. 방랑하던 그는 어느 귀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바랑’. 그녀는 작위를 지닌 이의 아내로서 별거 중에 있었다. 그녀는 개종하여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있었고, 그녀는 미사를 드리러 성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후덕(厚德)하고,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맘이 컸다. 그녀는 16세 소년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그녀를 ‘마망(어머니)’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그를 ‘프티(꼬마)’라고 불렀다. 그녀의 서재에는 책들이 즐비했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그때부터 그는 10여 년 동안 세상 근심 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책을 읽고, 낮 동안에는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하고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고... .더 나아가서, 그녀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음악교사를 붙여주기까지 하였다. 덕분에, 그는 음악교사로 지낼 수 있기까지 하였다.

       그가 그 댁에서 지낸 지 10여 년. 28세에 이르렀을 적에 그녀한테 새로운 젊은이가 생겼음을 알고서, 그는 두말 않고 그 댁을 홀연히 떠나게 된다.

       그가 말년에 적은 <고백론>에는 ‘바랑’에 관해서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어머니였고, 연인이었으며, 스승이었던 바랑.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

      그는 흘러흘러 파리로 가게 되고, 어느 날 우연히 펼친 ‘디종 아카데미’문학잡지에 논문 공모전 기사를 읽고 도전하게 된다. 그때 ‘학문과예술이 인류를 발전시켰느냐? 아니면?’이 제목이었다. 그는 1등을 거머쥐었다. 그가 펼친 논지는, ‘학문과 예술은 인류한테 불평등을 심화시켜 인간을 파괴한다’였다. 귀족과 싸움 끝에 시계공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두고 정처없이 떠나야했던 그 아릿한 어린 날 기억 왜 없었을까? 본디 자연은 위아래도 없이 평화롭기만 하거늘, 태어날 적부터 귀족의 아들, 장인의 아들로 구분되는 그 불평등 등을 담았다.

       졸지에, 그는 명사(名士)가 되어 이곳저곳 귀족들과 귀족부인들이 여는 파리의 살롱에 초대받아 가게 되지만, 대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얼마 아니 있어 한적한 곳으로 이주하여 글짓기와 사색에 전념하게 되지만... . 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아주 큰 사고를(?) 저지르게 된다. 그가 자주 드나드는 호텔 식당의 여종원과 눈이 맞아 남몰래 동거를 시작했다는 사실. 그녀 이름은 ‘테레즈 르 바쇠르’. 테레즈는 착하기 그지없었고, 그가 하자는 대로 다 따른 듯하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몰랐다는데, 아이는 ‘쑥쑥 ’ 잘 낳았던 모양. 그 시기에 그는 근대 교육학의 효시로(?) 알려진 <에밀>을 적고 있었다. 즉, 동거녀가 아이를 내리 다섯을 낳을 때와 그 책 집필 시기가 겹쳐진다는 이야기. 그와 그의 동거녀가 그렇게 낳은 아이들 다섯의 행방은? 말년에 이 글 주인공이 이곳 저 곳 도피생활을 할 즈음, 그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 사상가로 각광을 받고 라이벌의식을 가졌던 ‘볼테르’. 그는 이 글 주인공의 다섯 아이들 행방을, 익명의 팸플릿 형태로 만들어 세상에 다 까발렸다는 거 아닌가. 요지는 이러했다.

       “아동교육론 <에밀>을 쓴 그는 자녀 다섯 모두를 ‘파리 앙팡 트루메 고아원’에 보냈대요.”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인내심 있게 이 글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 그가 바로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향년 66세, 프랑스)’이다.

       이제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그의 삶 부분부분을 ‘내 여생, 절반은 눈물이다(16)’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일만 남은 듯. 그가 기성세력들한테서 핍박을 받으며 이리저리 쫓겨다니면서도 줏대 있게 자기의 신념을 글로 적었다는 점, 정상적인 학교 교육도 아니 받았음에도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나갔던 점, 알프스 산록(山麓)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했다는 점 등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고백론>을 통해 시시콜콜하게 여길 수도 있는 자기의 젊은 날 과오(過誤)까지도 후세 사람들한테 전하고 떠났다는 점. 그 <고백론>은 자서전의 효시라고도 한다. 더욱 더 나를 울리는 점은 따로 있다. 16세 나이에 알아, 10여 년 그 댁에 기숙하며 ‘마망’이라고 불렀던 ‘바랑’의 은공을 <고백론>에 적었다는 점. 속되이 말해 일자무식이었던 호텔 음식점 종업원동거녀 ‘테레즈 르 바쇠르’와 끝내는 결혼식을 올리고, 그녀가 임종(臨終)하는 가운데 뇌졸중으로 눈을 감았다는 점. 그의 위대함은, 그러한 점에서 그의 인간됨은 <고백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한 걸음 성큼 더 나아간다.

       그가 죽은 지 11년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전에 독백조로 내뱉은 말.

      “볼테르와 루소가 나를 죽이는구나.”

       달리 말해, 루소, 그는 그 책 한 권으로 프랑스혁명의 캐치프레이즈인 ‘ 자유, 평등, 박애’가 인용되었으며, 사후에 ‘프랑스의 영웅’이 되었다는 것을. 또한, 그가 그 책에서 적은 문장이 후일 미국 독립선언문에도 그대로 베껴갔다는 것을.

     

      작가의 말)

       집중탐구하기는 몇몇 날, 쓰기는 잠시. 이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오창익 박사(수필가)’는 ‘체화(体化)’라고 자주 쓰곤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공들여 쓴 이 글도 내 귀엽고 사랑스런 그녀, 뮤즈한테 바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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