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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3. (2)수필/신작 2026. 6. 1. 15:30
C.3.3. (2)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C.3.3. (1)’에서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향년 46세, 작가 겸 시인 겸 극작가, 아일랜드)’의 수인번호(囚人番號)임을 밝혔다. 굳이 풀이하자면, ‘C병동(病棟) 3호실 3번 죄수’가 된다고도 밝혔다. 그가 2년 실형으로 복역하면서 강제노동에까지 처해진 이유는, 미성년 남자아이들과 동성연애한 게 만천하에 밝혀져, ‘시범 케이스’에 걸렸다고도 밝혔다.
이번에는 그가 그러한 형벌을 받게 된 원인(遠因)과 원인(原因)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적어보려 한다.
우선, 遠因부터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로 부르는 시대에 태어났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64년 지배하던 시절. 당시 고전적이면서 보수적인 도덕주의, 합리주의와 발명, 탐구를 지향하던 근대 과학자들과 발명가들과 전근대의 유산인 갖가지 미신과 전설, 도시괴담을 믿던 대중들이 뒤엉켜 공존하던 시대를 일컫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위에 열거한 빅토리아 시대의 특징 가운데에서 ‘고전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도덕주의’의 그 덫에 제대로 걸린 사람이다. 사실 당시 고관대작들도 낮 동안에는 품격있게 점잖은 척 했으나, 밤이면 온갖 추잡한 짓과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한마디로 타락의 끝판왕 시절. 그들은 종교적 이유 등으로 목욕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이성(二性)한테 들이댔단다. 불결한 것들 하고서는. 그리고 집집이 자기 부인이 버젓이 있음에도... . 심지어, 동성연애도 빈번하게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정네들뿐만 아니라 귀족 부인들도 그러했단다. 그 위선들이여! 다만, 다들 드러내놓고 그런 짓을 아니 했을 뿐.
어쨌든, 영국 본토가 아닌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제대로 걸려들었다. 그는 그리스 조각품처럼 생긴 16세 연하남 ‘앨프리스 더글라스’과 동성연애를 즐겼다. 숱하게 돈도 뜯기고 행패도 당하고... . 그러했음에도 무슨 마력이 있었던지, 그 연하남에 푹 빠져 지냈다. 세상에 들킬세라, 입막음용으로 더글라스의 사치와 향락에 그 많은 뒷돈도 대어주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더글라스는 ‘삐끼’였다. 더글라스는, 자고 나면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상한가를 갱신하던 터에. 그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성을 알아, 세상에 드러내놓고 오스카 와일드의 첫 사랑이 자기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한테는 이쁘고 교양있는 아내와 두 아들아이까지 있었음에도. 한편, 더글라스의 부친 퀸즈베리 후작은 성질이 사납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아들과 오스카 와일드를 떼어놓고자, 그를 파멸시키고자 고소를 제기했다. 흥신소에 의뢰하여 오스카 와일드의 어린 남자들과 문란한 야간생활(?) 증거를 제시하는 등.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는 2년형과 강제노역을 하게 된 것. 속되이 말해, 오스카 와일드는 그때 너무 잘나빠져서 불행 또한 컸던 셈. 사실 평소에도 오스카 와일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들까불고 다녔다. 자기가 천재작가인 점을 들어,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사람.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 내가 나이 칠십에 이르기까지, 성생활에 관해 탐구한 어휘들을 한바탕 소개하고 넘어감이 좋겠다. ‘여색(女色)을 밝힌다’에 대응대는 말은 ‘남색(男色)을 밝힌다’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남색(男色)을 밝히다가 깜빵생활을 2년씩이나 했다. 여기서 말하는 ‘色’은 성교를 일컫는 말. 성교는 sex와 마찬가지로, 미안하지만, 순우리말이 아니다. 그 말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내 곧 맞아 뒈져도, ‘씹’과 ‘흘레’뿐이다. ‘씹’, 이 말은 ‘씨입’ 즉, ‘씨를 먹는 입’을 일컫고, 우리네 옛어른들은 민망해서였던지 ‘종구(種口)’라고 불렀다는데... . 수컷들은 눈구멍·귓구멍·콧구멍... 항문 등 다 보태도 아홉 개 구멍을 지녔는데, 암컷들은 열 번째 구멍을 지녔다. 그래서 ‘열 번째 구멍’이라 하여 ‘십(十)’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이 점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암탉을 비롯한 새들은 제 10번째 구멍 즉, 질(膣)이 따로 없다. 분화하지 못했다는 뜻. 계란 가운데에는 가끔씩 똥 묻은 계란이 있는 이유가... . 수탉을 비롯한 수컷 새들은 이성(異性)이 그리우면, 암컷의 항문에다 ... . 오스카 와일드가 미소년 더글라스와 ‘유사 성행위’를 어떻게 했을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냥 키스만 하고 끝냈을 리 만무하고... . 세상의 모든 ‘볼트’는 ‘너트’와 만나 죄어지는 게 이치이거늘... . 우리네 국어 대사전에도 그러한 유사 성행위에 관해 분명히 적고 있다,‘비역질’이라고. 국어대사전에서 ‘비역질’을 찾으면, ‘남자간의 유사 성행위’라고만 적고서, ‘☞ 계간(鷄姦)’이라고 표현하고 마친다. 즉, 그리 가서 알아보라고. 마찬가지로, 국어대사전에서 ‘계간’을 찾으면, ‘☞비역질’에 가서 알아보라고 떠넘긴다. 국어대사전조차도 왜 속 시원히 말 못하는가? 암컷의 질(膣), 그 입천장처럼 생겨먹은 주름진 너트 속으로 볼트를 끼워 넣지 않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항문에 넣는 게 남색. 사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실행해본 적 없으나, 그 항문의 괄약근(括約筋) 그 조여듦을 맛보면, 헤어나지 못한다고 들었다. 이 글 주인공인 오스카 와일드가 바로 그러한 데 맛들여졌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또, 내 젊은 날 국어대사전에서 ‘비역질’과 ‘계간’을 찾다가 ‘반대말은 밴대질’이라는 걸 발견한 적 있다. 즉, 여성간의 유사성행위가 바로 ‘밴대질’이더라는 거. 거기에 더해, ‘음부(陰部)에 털이 없는 그것을 ‘밴대 보 ?’라고 한다는 것도 알고 지낸다. 남성간의 유사성행위는 비역질 곧, 계간인 것이고 ... . 여성 간에는 또 어떻게? 고대 그리스의 최초 여류 시인이었던 ‘사포’가 태어난 난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처녀들을 모아 그 섬에서 성교육을 했다는데, 손가락으로 혀로 상대 여성의 질 속을 애무하여 오르가즘에 닿도록 하는... . 인류 최초의 여류시인 ‘사포’가 태어나 활동했던 ‘레스포스 섬’에서 따와서 ‘레즈비언(lesbian)’ 이란 말이 생겨났단다.
나아가서, 더 흥미로운 사실. 공평하게 ‘너도 수놈, 나도 수놈. 너도 암컷, 나도 암컷. 그러니 공평하게 성적(性的)만족도를 최대화하게 누리고자 하는 게 이른바 ‘69 체위(體位)’더라는 거. 양심적으로, 나도 그건 지금의 아내와 해 보았다. 이 글 아내가 읽으면, 큰일 날 일인데...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오스카 와일드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존 러스킨’과 ‘윌터 페이티’ 두 교수로부터 한 강좌씩(?) 강의를 듣고서, 유미주의(唯美主義) 또는 탐미주의(眈美主義)에 빠져들었다. ‘오로지[唯] 아름다움만이... .’
나이 칠십에 이른 대한민국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감히 말하오.
“ 이 바보 멍청이, 오스카! 고작 나이 46세에, 그 철딱서니 없는 16세 연하남 더글라스의 ‘똥꼬’가 그렇게도 맛있던가요' 그대 그 꼬챙이로(?) 함부러 이 구멍, 저 구멍 쑤시다가 패가망신하다니! 그게 무슨 예술? 그게 '유미주의 예술'이라고? 당신은 한창 잘 나갈 때 조심했어야지, 까불다가 천수(天壽) 다 누리지도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잖소? 그 꼴이 다 뭐요? 아직도 당신 무덤가에 가서 빨간 입술연지를 남기는 얼빠진 ‘뇬들 ’많다던데요? 모름지기, 볼트는 너트에 한 산, 두 산 정성들여 끼우는 거외다! '정히 아니 되면 w-d 뿌려서라도... . 나는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소만... .”
내 이야기가 샛길로 너무 빠져들었다. 곧바로, 내비게이션을 조작하여 경로수정해야겠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기억 환기. 저기 위 단락에서 ‘그가 그러한 형벌을 받게 된 원인(遠因)과 원인(原因)’이 있다고 하였다.
이번엔 원인(原因)이다. 그는 태어날 적부터 커다란 문제를 지닌 가정이었다. 부친은 그곳 아일랜드에서 안과의사였고, 저술가였다. 왕실의 주치의로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부친은 진료차 병원에 찾아온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여 법정에 섰고, 명예가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그 일로 오스카 와일드의 모친은 상처를 크게 입었다. 위에서 주욱 소개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가 연하남과 스캔들로, 연하남 부친과 송사를 치른 것도 그때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을 듯. 그의 어머니가 더 큰 문제였다. 그녀는 딸아이를 낳고 싶었으나, 막상 아들아이가 태어나자, 그 어린것한테 여자아이들 의복을 입히고, 여자아이처럼 키워나간다.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애쓰고, 시인이기도 했던 그의 모친. 한마디로 여걸이었다. 체구도 체구이지만, 온 몸에 귀금속으로 치장을 하는 등.
그녀는 아들아이 오스카한테 이르곤 하였다.
“아들아, 우리 가족은 ‘평범’과는 아주 멀어. 너는 빼어난 예술가가 되어야 해.”
그길로, 그는 머슴애이면서도 여성취향이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 재학시절, 이런저런 야한 복장에 해바라기나 카네이션을 들고 다니는 등 기행(奇行)을 일삼았고... 자기가 세상에 가장 잘난 사람처럼 행동하고... 언변으로나 문장으로나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예술가로 군림했다.
그에 관한 내 이야길, 여기서 과감히 ‘급브레이크’ 밟으련다. 그의 예술세계니, 문학적 깊이니 따위는 내 알 바 없다.
요컨대, 그는 너무 까불었다. 자기가 세상을 다 지배하는 듯이 하다가 망조가 들었다 . 그는 고작 나이 46세에 이승을 떠났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고, 그를 끝까지 옹호했던 극작가,‘버나드 쇼’의 묘비에 적힌 그의 유언이 새삼 다가온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작가의 말)
제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한데... . 힘닿은 데까지 공부해나갈 게요.
공부가 이처럼 재밌다는 걸 진즉에 몰랐어요. 공부하다가 ‘비틀어 보기’는요, 더욱 흥미롭지요.
내 사랑, 내 고운 이, 나의 뮤즈, 그대께 이 글 공손히 바쳐요. 막걸리 750ml 세 병밖에 아니 마셨어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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