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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산 철학자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그는 타향인 그리스의 코린토스에서 89세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죽기 전 제자들이 읽으라고점토판에 적은 유언의 요지다.
‘ 나 죽거든, 코린토성(城) 밖 들판에 내던져버려라. 그러면 들개들과 까마귀들이 내 시체를 뜯어먹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내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로 가서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닐 테니... . 무덤을 짓지 말라. 무덤, 그 또한 소유욕이 아닌가?’
제자들은 스승의 유언을 그대로 받들기에는 너무 하다 싶어, 코린도 성 밖에다 조촐하나마 돌무덤을 짓고, 그 위에다 대리석으로 그를 상징하는 개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한마디로, 그는 개 같은 삶을 살다가 간 철학자다. 숱한 이들이 그를 두고, ‘개 같은 놈’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렇게 조롱받는 걸 외려 훈장처럼 여겼다. 사실 그는 ‘키니코스(cynicos) 학파’의 철학자였는데, 그 ‘cynicos’는 그리스어 ‘키온(kuvoc)’즉, ‘개[犬]’에서 온 말.
‘cynics’·‘cynicism’·‘cynical(시니컬;냉소적인)’과 어원을 같이 한단다. 해서, 그를 ‘견유주의(犬儒主義) 철학자’라고 한다. 개처럼 본능에 따라 살 것을 강조하고 실천한 철학주의자들. 이 글은 그의 생애를 연보식(年譜式)으로 적어갈 텐데, 이따가 그가 견유주의 철학자가 된 계기는 따로 적기로 하고.
그는 기원전 412년경 흑해 남부 연안도시 ‘시노페’에서 조폐국 최고책임자였던 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기까지 물질적 어려움 없지 지냈다. 그러다가 정치적 이유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친이, 부득이 은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조화폐를 발행함으로써, 패가망신하게 된다. 전재산 몰수에다 부친 감방행에다 자신은 강제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한 벌 옷 입은 채로 알거지가 되어,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원망으로 가득 찬 채로 걸어걸어 아테네로 향하게 된다. 그 심경이 어떠했겠는가.
맨 처음 간 곳은 델포이 아폴론 신전. 그는 거기서 엎디어 간절히 기도를 드리게 된다. ‘피티아’ 즉, 신의 대리인인 늙은 무녀(巫女)로부터 신탁을 받게 된다.
“ 너는 정치적 ‘노미스마(nomisma)’가치를 높이라.”
‘노미스마’는 그리스어로 화폐를 뜻하는데, 그를 두고 신께서 다시 위조화폐를 만들라는 신탁은 아닐 테고... .그는 ‘노미스마’가 법률·도덕·관습·사회 등의 뜻도 지녔음을 깨닫게 된다. 그길로 그는 마음을 다잡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막연하기만 하였다.
어느 날 아고라에서 군중 앞에서 허름한 옷을 걸친 어느 노인이 열변을 터뜨리고 있었다.
“ 행복은 외적 조건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무소유와 금욕과 ‘정신의 독립’만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 개 같이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만이 ... .”
그는 그 노인한테 가서 매달린다.
“선생님, 저한테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 노인은 그가 보채자, 나무 지팡이로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이마가 깨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통을 쳤다.
“이 놈, 죄를 지어 추방당한 놈 주제에 무슨? 그리고 내가 여태 이곳 아테네 젊은이들 가르쳐보았으나, 다들 나한테서 배운 그 알량한 지혜를 무기삼아 자기 명예를 드높이고자 애썼을 뿐이라, 다시는 한 놈도 제자삼지 않으려 하는 터에... .”
그는 마치 스토커처럼 그 노인을 몇몇 날 따라다녔다. 그러자 드디어 노인은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제자로 받아주었다.
그 노인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 445~ 기원전 365)이고 견유주의 철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스승을 따라다니며 공부하였으나, 회의와 인간적 고뇌가 영 없지는 않았다.
그가 만난 최초의 스승이 안티스테네스가 분명하나, 두 번째 스승을 만나게 된다. 아테네 대리석 건물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추위에 떨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을 때다. 어디선가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나, 인간들이 버리고 간 빵조각 등을 냠냠 먹는 걸 보게 된 것이다. 그가 바라본 생쥐의 두 눈은 맑기만 하였다. 근심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집 걱정, 옷 걱정, 먹을거리 걱정 등을 전혀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생쥐를 두 번째 스승으로 삼게 된다.
그가 세 번째 만난 스승. 사실 낡은 망토, 나무지팡이, 나무바가지가 그의 전재산이었는데, 뙤약볕이 내리쬐어 시냇가에서 그 바가지로 물을 떠먹으려고 할 적에, 그는 새로운 광경을 보게 된다. 어떤 꼬마가 도구 하나 없이 양손을 동그랗게 모아 바가지꼴을 만든 다음 물을 떠서 마시고 있었다.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들고 있던 바가지를 깨부수고 만다. 오롯이 날것으로만 살아가겠노라고.
그의 기행(奇行)과 독설(毒舌)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나갔다. 당시 한창 잘 나가던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열어, 제자들과 귀족들을 모아놓고 인생 토론회를 이어가며, 온갖 형이상학적 표현을 다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플라톤, 그가 딴에는 인생에 관해 명쾌한 답을 얻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넓은 시야를 가진 깃털 없는 이족보행의 동물이다.”
그는 곧바로 시장에 가서 한 마리의 수탉을 사서, 그 수탉의 털을 강제로 모조리 뽑아 알몸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에 찾아가 강단에 올라, 그 알몸 수탉을 풀어놓게 된다.
“위대하신 플라톤이시여, 그렇다면 이 알몸 수탉과 인간이 뭣이 다른가요? ”
플라톤은 그때부터 “인간은 손톱이 넓은 동물이며”를 덧붙이곤 하였다는 일화.
또 한 번의 기행.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장의 군중 속에, 놋쇠 초롱을 들고 나타났다. 무언가를 애써 찾으려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얼굴 가까이에 그 놋쇠초롱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비켜라, 허깨비들아! 이곳에는 내가 찾으려는 진짜사람이 없구나.”
그는 허위와 위선에 가득 찬 인간 군상들을 그렇게 꾸짖었다.
또 한 번의 기행.
그는 어느 귀족의 잔치에 초대받아 가게 된다. 그가 하도 지저분하고 냄새가 고약하자, 그 귀족이 경계한다.
“이보시오, 내 방은 온갖 귀금속 등으로 치장되어 있으니, 가래침을 함부로 아무 데고 뱉지 마시오. ”
그러자 그는 두리번두리번하다가 그 귀족의 얼굴에다 ‘퉤!’ 가래침을 뱉고 만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는 태연하게 말한다.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 말마따나 둘러보니 이곳은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구려. 해서, 당신 낯짝이 가장 지저분한 듯하여 침을 뱉은 게오.”
또 한 번은 아고라 광장에 갔을 때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가 불결하다고 돌멩이질을 하거나 “개 같은 놈!”하면서 식탁 밑에다 개뼈다귀를 던지는 이가 있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곁에 가서, 나는 개이니까 하면서 그의 비단옷에‘오줌 테러’를 가했다.
아테네에서 기행과 독설을 일삼던 그. 무소유를 실행하였기에 언제고 행복했던 그가 일생일대에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된다. 그가 ‘에기나 섬’에 가고자 배를 탔다. ‘크레타 섬’을 지날 무렵 해적선이 나타나, 그는 답삭 잡혀 양팔과 양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졌다. 그리고는 그 많은 노예들과 함께 ‘코린토 섬’ 노예시장 경매장 연단에 순번에 따라 오르게 된다.
채찍을 가하며, 해적이 말했다.
“영감탱이, 그 몸으로 밭을 갈 줄이나 알겠어? 집을 지킬 줄이나 알겠어? 우리가 구매자로부터 제대로 몸값을 받자면, 뭔가 자랑할 게 있어야 하지 않아?”
그는 채찍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쩌렁쩌렁 말했다.
“나는 사람을 다스리는 위대한 기술이 있다. 사회 법률이 파괴된 터에, 진짜 통치자이고 주인이며 스승인 이를 원하는 구매자가 있으면, 나와보시오. 어리석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해줄 이를 구하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나를 사 가시오.”
그는 자기 육체를 구속하는 그 쇠사슬마저도 그처럼 철학의 도구로 삼고자 했다.
그 노예시장에 있었던 코린토스 부유한 귀족, ‘크세니아데스’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던 듯. 그는 비싼 몸값을 치르고 이 글 주인공을 사가게 된다. 그는 그 댁에서 그 댁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활동하게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되, 수사학이니 따위는 멀리 하고서, 검소·정직·자제력 등을 강조하였다. 그 댁 아이들은 성장하여 저마다 훌륭한 사회 구성원들이 되었다.
한편, 그는 그 댁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수시로 코린토스 광장에 나가 ‘길거리 철학’을 설파하게 된다.
막 사창가에서 얼굴을 붉히고 나오는 젊은이를 훈계했다.
“자유를 얻으러 갔다가 쾌락의 노예가 되어 파멸하였군.”
어느 사생아가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돌팔매질을 해대는 걸 보고서는 이런 말을 했다.
“젊은이, 사회에 대한 불만은 좋소만, 그러다가 지나가던 친아버지가 맞을 수도 있으니... .”
사실 성경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그곳 코린토가 성적으로 타락한 곳인데, 그는 위와 같이 개탄했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나의 이 글을 여기까지 인내심 있게 따라와 주셨으니, 이제는 이 글 주인공에 관해 밝혀도 되겠다. 그가 바로 디오게네스(Diogenes,기원전 412~기원전 323, 향년 89세,그리스)이다.
우리네는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 전 356~ 기원전 323, 향년 32세, 마케도니아) 사이의 일화는 너무도 잘 알고 지낸다. 양인(兩人)이 만난 곳이 코린토섬이라고 하니, 디오게네스가 해적들한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갔던 시절과 겹쳐진다. 둘의 나이 차이를 셈해본즉, 89세이니, 디오게네스가 숨을 거둔 해쯤이 된다. 또한,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열병으로 32세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일로 추정된다.
그날도 코린토 성 근처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집 삼아 그 안에서 낮잠을 쿨쿨 자고 있던 디오게네스. 호위무사들을 대동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인생역정을 보아, 디오게네스가 나이 서른 둘 안팎이었던 그를 과연 두려워했을까? 냉소주의자였던 그.
“대왕이시여, 이 늙은이가 바랄 것 있겠소이까? 다만, 그 덩치로 내 항아리집 햇볕을 가리고 있사오니, 약간만 비켜 서 주시면 하옵니다.”
후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독백은 아주 유명하다.
“만약에 내가 알렉산드로스 왕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게오.”
그날도 그의 제자들이 한사코 말렸다.
“스승님, 그렇게 시장에서 주워온 상한 문어를 날것 통째로 드시면 큰 탈이 납니다. 이빨 하나도 없는데다가... .”
그러자 그는 벽력같았다.
“이 어리석은 것들아, 내가 한평생 날걸로 살아왔는데... . 불[火]이야말로 최고의 문명 아니냐? 너희들은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에 이르러 힘들다고 걷는 걸 보았는가?”
그는 상한 문어를 통째로 입안에 넣어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목이 막혔다. 그는 거기서도 끝내지 않았다. 자신의 코와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했다. 온몸에 독이 퍼져 반점이 생겼다. 숨을 거두었다.
제자들은 목 놓아 울었다. 그의 부고는 코린토섬과 아테네 일대에 다 전해졌다. 로마가 슬픔에 잠겨들었다. 부의금을 내겠다, 기념사업을 펼치겠다, 묘지를 조성하겠다 등 법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줄 알고서, 미리 점토판에다, 이 글 두 번째 단락에 적은 대로 유언을 적어두었던 것이다. 자신의 유골마저 무덤이라는 문명에 갇히는 게 싫어서였다. 그 또한‘무소유’에서 크게 벗어난 행위라고... .
“견유철학자 디오게네스여! 아니, 개처럼 자유롭게, 어떤 이들이 말하는 그‘거짓 무소유’가 아닌 ‘진짜 무소유’를 실천한 디오게네스여!”
자가의 말)
몇몇 날 디오게네스의 삶에 관해 몸살 앓으며 공부하였다. 그런데 글 솜씨가 아직 모자라는지, 이 정보밖에 못 지었다.
하지만, 크게 낙심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나의 애제자가 이 글 완성해주리라 믿기에.
* 디오게네스가 큰 항아아리를 집 삼아 지내는 걸 그린 화가가 있다.
'장 레옹 제롬'. 1860년작. 캔버스에 유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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