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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갈량 vs 사마의(1)
    수필/신작 2026. 6. 5. 17:18

    제갈량 vs 사마의(1)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미리 말하건대, 이 글은 예전 중국인들과 그들에 얽혀진 이야기라서, 한자 병기(倂記)가 마땅하겠으나, 그러면 나의 글이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가급적 한자병기를 피하고자 하니, 이 점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일찍이 중국 삼국시대에 두 천재가 살았다. 그들 둘의 삶을 대비표 내지 대조표로 도해화하듯 적으려 한다. 덧붙여,‘제갈량’은 ‘ㅈ’으로, 사마의는 ‘ㅅ’로.

     

      1. 출몰년도 등

     

      ㅈ은 181년 ~ 234년(향년 53세, 남양)이고, ㅅ은 179년 ~ 251년(향년 71세,허난성)이다. 둘은 두 살 차이에 불과하다.

     

       2. 그들이 각각 다른 나라 주군(主君)으로부터 스카우트된 내력

     

      ㅈ은 자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가 27세가 되던 207년에, ‘유비(161~223,향년 62세)’가 나이 50세에 이르러, 나름의 나라를 세워보겠다고, 세 차례씩이나 20세 연하임에도, 그의 초막집에 찾아와서, 창업에 곧, 나라 세우기에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조르게 된다. 그게 그 유명한 ‘삼고초려’. 이상주의자였으며 낭만주의자였던 ㅈ은 유비의 간청에 응하게 된다. 후일 그는 삼국시대 촉 나라의 승상에 오른다.

      반면, ㅅ은 23세에 이르렀을 적에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된다. 황건적과 십상시를 물리치는 데 숟가락 하나(?) 걸친 ‘조조’가, ‘원소’를 무너뜨리고, 야심에 차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애를 쓰던 시절이었으니... . ㅅ은 조조의 성향을, 부친으로부터 들은 바도 있고 해서 진즉부터 알고 지냈던 터. 해서, 속되이 말해, 그는 조조와 엮이지 않으려고, 중풍을 앓고 있다고 꾀병을 부리며 7년 동안 침대에서 누워 지낸다. 그러했음에도, 조조는 창업에 필요한 지지세력과 나름의 정권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ㅅ에 들이대게(?) 된다. 거슬러, 조조는 ㅅ 부친의 추천으로, 성문지기 하급직으로 출발할 수 있었으니,딴에는 그 은혜에 보답도 하고, 그 은인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지혜로운 아들 하나를 골라, 사냥개로(?) 쓰고자, 그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총명한 ㅅ을 스카우트하게 된 것. 그런데 그 스카우트 과정 스토리가 무척 흥미롭다. C는 중풍에 걸렸다고‘가짜환자’행세를 하며, 7년 여 침대에서 누워 지낸다. 그런데도 본디 남의 맘속을 꿰뚫어보는 데에는 귀재였던 조조. 조조는 사람을 부려, 그의 침실에 잠입하여 허벅지에다 큰 바늘로 찔러댄다. 그 중풍의 진위를 알아보고자. 그러했음에도 C는 인내심으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조조가 8년차에 이르러 안달이 나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그가 말을 아니 들으면 목이라도 베어 오라고 지시한다. 해서, C는 굴복하고 조조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주 비천한 자리로부터 출발.

       그리하여 ㅈ은 촉한 유비의 사람이 되고, C은 후일 위나라에 이어 후주의 기틀을 마련한 조조의 사람이 된다.

     

       3. 둘 다 장가 하나는 참으로 잘 들었던 사람들

     

      ㅈ은 예비장인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보시게나, 내 딸은 머리카락이 노랗고 피부는 까맣다네. 그래도 그 애는 그림그리기, 천문학, 문학 등 다양한 재주를 지녔다네. 자네와 잘 어울릴 걸세.”

      ㅈ은 단 1초도 아니 되어 “OK!” 결혼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첫날밤이 문제였다. 색시가 너무도 못 생겨, 신방을 뛰쳐나오려는데, 새색시가 새신랑의 옷을 낚아채는 바람에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그 옷은 마치 재봉틀로 박은 듯 이뻤고, 그때부터 아내를 더는 무시하지 않았다. 후일, 그는 아내 ‘황월영’이 소녀시절에 ‘인형 만들기’를 했던 것에 영감을 얻어, ‘목우유마’라는 ‘나무 손수레’를 고안해내게 된다. 그 ‘외발 손수레’에다 군량미를 싣고, 적전지 협곡 십자십만 산맥을 지날 수 있게 되었다.

    ㅅ의 부인 ‘장춘화’도 대단한 여인이었다. 위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ㅅ은 7년 동안 침대에 누워 중풍환자인 척하면서, 조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소낙비가 내려, 마당에 말려둔 책들을 챙기려고, C는 침대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고 만다. 그 광경을 본 여종. 그 사실이 염탐꾼을 통해 조조한테 전해질세라, 그의 부인은 부엌칼로, 증거인멸 차원에서, 그 여종을 죽여버렸다는 거 아닌가.

     

       4. ‘적과 동침’

     

       여담. 기왕지사 내가 작가의 길을 40여 년째 걸어오는 터에, 잠시 더듬고 넘어갈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와 동향(경북 청송)인 이오덕 아동문학가(1925~2003,경북 청송)께서는 맹비난하였다. 그분은 일본어투의 표현도 지적하였다. ‘~에의,~로의,에서의,~로서의,~(으)로부터의, ~에게서’의 불필요한 음절들. 이것들은 생략하거나 바꾸어야 한다고.

       그러니 나는 ‘적과의 동침’이니, ‘범죄와의 전쟁’이니, ‘무도회에의 권유(베버의 작품)’를 들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인다는 점 이해해주시길.

      그 건 그렇다 치고... .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촉나라에 가서 승상에까지 오른 ㅈ과 조조의 농간에(?) 후일 조조의 손자인 조예가 연 ‘진’ 직전의 ‘위’나라의 책사였기도 한 ㅅ. 50여 년 동안 이들 둘은 ‘적과 동침’을 하였다. 살펴본즉, 제대로 피 철철 흘리며 싸우지도 않았다는 점. 이 무슨 이야기냐고? 각각 나라에 문제가 있었다. 촉은 짚신장수 출신이었던 유비가 ‘이엄’을 대표로 하는 토착세력과 갈등을 완전히 해결해하지도 못했으며, 남방의 ‘맹획’ 도발 등을 갈아앉히는 데도 힘들었다. 게다가, 유비는 출정했다가 ‘육손’과 전투에서 참패하는 등. ㅈ은 유비의 유언에 따라, 충성을 다하여 나이 어린 유비의 아들인 ‘유선’이 16세로 황제로 즉위한 207년, 자기 나이 46세에 <출사표>를 적은 후 북방인 ‘위’를 5회나 침공하고자 애썼다. 반면, ㅅ은 조조의 ‘시바바리’ 즉, 최하단부터 차례차례 야심을 품고 높이높이 오르고자 했다.

       살펴본즉, 그들 둘은 제대로 대판 싸운 것 같지가 않았다. 국력으로 따져, 이상주의자였으며 낭만주의자였던 ㅈ은, 행정과 군권을 모조리 거머쥐고 북벌을 꾀했으나, ㅅ은 조조를 부추겨 이룩해낸 ‘균전제’로 군량미도 풍부했고, 군사력도 10배 넘었다. 애가 타는 쪽은 언제고 ㅈ. 대신, ㅅ은 군사력이나 군비(軍費)에서나 다윗과 골리앗 관계로 따져, 언제나 골리앗. ㅅ은 애탈 것이 전혀 없었다. ㅅ은 숨을 거두는 71세까지 그 인내심을 끝까지 지녔다. 결코,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ㅅ는 ㅈ을 전장에서 패퇴시키고 목을 따버리면, 언뜻 보기에는 자기 나라에서 잠시잠깐 영웅 대접받을는지는 모르지만, 조조를 비롯하여 내리 3대에 걸친 조씨 황권이, 자기가 거머쥔 군권(軍權)을 아예 뻬앗거나 ‘토사구팽’하거나 할 것을 지혜롭게 알고 지냈다. 참으로, 무서운 그의 집념. 심지어, 그는 이따금씩 일부 군대를 보내, ㅈ로부터 패전해서 돌아오게도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황실에 보여주었다는 이야기. 어쨌든, ㅅ은 끝끝내 ㅈ의 북벌을, 아는 척 모르는 척 하였다. 사실 둘은 교감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상주의자이며 낭만주의자였던 ㅈ은 끝내 전장에서 제 풀에 꺾이어(?) 각혈하고 53세로 전사(戰死)하고 만다. ‘공성계’ 등 온갖 계책을 다 써보았으나, 결국은 ㅅ은 그 계략에 말려들지 않는다. 애가 타는 쪽은 언제고 ㅈ. 대신, ㅅ은 ㅈ의 사후에도 나이 칠십일 세까지 지혜롭게 살아남아, 아들 사마소와 손자 사자염으로 하여금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세기를 넘은 나는, 대한민국 현존 수필가인 아는, 그들 양인(兩人)의 50여 년 싸움을 비틀어본다. 과연 그들 둘 가운데에서 누가 승자(勝者)인 걸까 하고서. 귀 따귀 새파란 16세의 황제, 유선한테 <출사표>를 적어바치고, 무모하게 계란으로 바윗돌 치듯 출정한 ‘제갈량’이 과연 영웅일까? 아니면, 중풍에 걸렸다고... 이제는 은퇴하겠다고, 아들 같은 ‘대장군’ ‘조상’한테까지 수그렸다가 대반격을 하여, 끝내는 정권을 탈취한 사마의 부자들의 그 정변이 현실적이냐? 나는 모르겠다. 의리와 충정의 제갈량도 존경받아 마땅한지만, 70여 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사마의의 그 인내심도 외면해서는 아니 되겠단 생각.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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