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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姜太公) vs 주공 단(周公 旦)(2)수필/신작 2026. 6. 13. 17:21
강태공(姜太公) vs 주공 단(周公 旦)(2)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2. 주공 단
주(周)나라 도읍에 며칠 동안 벼락과 천둥, 폭풍과 폭우. 천재(天災)를 맞은 주나라 2대왕 젊은‘성왕’은, 대신들과 제신(祭臣)들과 함께 태묘(太廟)로 갔다. 관습적으로 행해오던 대로 제물을 바치고 엎디어, 하늘한테 노여움을 거두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다가 붉은 비단보자기에 싸인 청동 궤짝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는 ‘금등지사(金騰之司)’가 들어 있었다. 금등지사란, 당대에는 차마 말을 못하나, 억울한 점 등을 담아 후일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며 적은, 왕실의 글을 이른다.
젊디젊은 성왕은 그 죽간을 펼쳐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내용은 이러했다.
"하늘이시여, 주나라를 (저기 제 나라에 제후로 보낸 강태공과 더불어 저와 함께) 세운 형님, 무왕을 살려주십시오. 무왕은 천하 백성을 예(禮)로 이끌어야할 왕이십니다. 그런데 창업 2년 만에 몹쓸 병에 걸렸사오니... . 하늘이시여, 꼭히 목숨 하나를 원하신다면, 형님의 병을 제게 옮기시고, 저를 지옥으로라도 데려가십시오. 재주가 많고 능력은 많사오나, 세상에 쓸모없는 저를 형님 대신 지옥으로 데려가주십시오."
그 금등지사 끝에는 ‘주공 단’이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찍은 서명이 있었다. 주공 단은 밤마다 그곳에 가서 하늘에 기도를 간절히 드렸던 것이다.
젊은 성왕은, 그 금등지사가 적힌 죽간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였다.
“저, 그런 줄도 모르고서, 그 동안 숙부가 7년 동안 섭정을 하는 동안에, 다들 ‘찬탈’이라고 하는데도, 그처럼 묵묵히 독배(毒杯)를 마셔왔던 것도 모르고서... .”
그리고는 곧바로 궁으로 돌아가, 왕관과 황포를 벗어던지고, 마차를 몰아 물어물어, 붓 한 자루와 책 한 권 들고서 홀연히 망명을 떠난 숙부를 찾으러 나섰다.
허름한 남방(南方)의 숙부의 은둔처. 성왕은 마당 바닥에 엎디어, 노인이 된 숙부한테 고해를 한다.
“숙부님, 제가 크게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도 어리석었습니다. 제 나이 5~6세부터, 업어서 용상에 앉힌 숙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어서 의관을 정제하시고 저랑 궁으로 돌아가시어, 이 못난 천자를 끝까지 도와주소서.”
백발이 다 되어버리고 초췌해진 주공 단은 조카인 성왕을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대왕, 제 맘 알아주시어 고맙소이다. 부디,어진 성군이 되어 백성들을 잘 다스려주시면, 이 신하 여한이 없소이다.”
그 소식을 접한 제나라 제후, ‘강태공’은 실소를 보냈다.
“주공 단, 너는 공교롭게 천재지변과 마음여린 조카의 맘에 힘입어 영웅이 되었군. 하지만 말이다, 결코 권력은 니가 꿈꾸는 이상주의 세계로 이어갈 수는 없어.”
지금부터는 ‘주공 단’과 ‘강태공’의 서신교환 및 사신교환으로 이뤄진 대화로 꾸미고자 한다.
주공 단과 강태공은, 이 글 제 1화에서도 언뜻 소개하였지만, 폭군 상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주왕을 거꾸러뜨리고, 무왕을 옹립하여 주 나라를 세운 전쟁영웅들이었다. 그러나 둘의 정치철학은 확연히 달랐다.
주공 단은, 둘째 형이자 제 1대 황제인 무왕이 집권 2년차에 병사(病死)하기에 앞서, 유언을 받잡고 나이 5~6세 철딱서니 조카 성왕을 도와 7년간 섭정을 하게 되었다. 사실 주공 단은 8형제 가운데에서 4남이었지만, 문왕의 둘째 아들이었던 무왕과 사이는 각별했던 듯. 해서, 유언을 그렇게 남긴 듯. 특히, 무왕은 자신이 꿈꾸던‘예(禮)의 나라’를 완성해달라고. 그 맹세가 위에서 소개한 대로 ‘금등지사’의 궤에 담겨있다.
반면, 나이 80에 이르러 비로소 전쟁영웅이 된 강태공은, 제나라 제후로 봉해져서 기름지고 너른 나라를 다스리러, ‘룰룰랄라’나섰다. 그가 개선장군이 되어 제나라 제후로 가던 길에서 마주친 어느 노파(老婆). 그 노파를 대하던 태도에서부터 그의 통치철학은 분명하다. 젊은 날 가난에 허덕이며, 보따리를 싸서 집 나갔던 부인이었다. 대성하고 돌아오는 강태공의 마차 앞에 엎디어 방 한 칸만이라도 내어달라고 읍소를 하게 된다. 강태공은 시종한테 일러, 항아리에서 맑은 물을 길바닥에 붓게 한 다음, 옛 아내인 노파더러 그렇게 엎질러진 물을 항아리에 도로 담으면 받아주겠노라고. 그 유명한 ‘복수난수(覆水難收;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가 행해진다. 만약에, 예와 도덕을 한평생 실천했던 주공 단이었으면, 그렇게까지는 매몰차지 않았겠지만... .
그날 강태공의 그 실천은, 향후 제나라 통치철학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제나라 제후로 부임하던 첫날부터 숙청을 해나갔다. 기강을 바로잡으려 그리하였다. 그는 현인(賢人)으로 추앙받던 ‘화사’를 곧바로 잡아오라고 명한다.
화사는 국왕인 강태공 앞에서 꼿꼿하게 변명을 하였다.
“제왕이시여, 제가 저지른 죄가 무엇입니까? 저는 여태 나랏님한테도 허리 굽히지 않았고... 저 스스로 우물을 파고 농사를 지어왔을 뿐인데요.”
강태공은 단호했다. 그게 나라에 큰 해악을 끼친 것이라고. 나라에 충성하지 않았으며, 세금도 내지 않았고, 군역도 기피했으며... 나라에 해악을 끼쳐 법도에 어긋난 위선자라고. 해서, 화사는 강태공 부임 첫날 시법 케이스로 목이 달아났다. 이처럼 강태공은 철저히 ‘신상필벌’을 통치철학으로 삼았다. 그렇잖아도 주나라 도성의 섭정통치자인 ‘주공 단’은, ‘화사’의 명성을 알아 국사(國師)로 모시러 했던 터에 날벼락.
이에, 주공 단은 사신을 제후국 제나라에 보내, 강태공한테 강력 항의를 하게 된다. 강태공은 사신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주공 단한테 가서 똑똑히 전하시오. 나라 경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나라에 이익을 주는 이한테는 상을, 해를 끼치는 이한테는 공포와 벌을 주는 게 나라 경영의 핵심이라오.”
제나라 제후로 책봉된 나이 80의 강태공의 통치철학은,‘신상필벌’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게 통치해나간 덕분에, 제나라는 제후국으로 출발하였으나, 나라가 번성하여 후일 ‘패권’을 누리게 되었다.
다음 호 계속)
다음 호에서는 주공 단이, 나이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여 7년간 섭정하는 동안 주나라를 ‘주례와 예약’의 나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적으려 한다. 서신교환과 사신교환으로 주나라의 주공 단과 제후국 제나라의 강태공이 ‘나라 경영 철학’으로 서로 팽팽하게 겨루는 이야기가 될 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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