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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姜太公) vs 주공 단(周公 旦)(3)수필/신작 2026. 6. 15. 16:40
강태공(姜太公) vs 주공 단(周公 旦)(3)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3. 강태공(姜太公) vs 주공 단(周公 旦)
이 연재물 제 1화와 제 2화를 통해, 강태공과 ‘주공 단’ 둘은 잔혹한 상(商)나라를 거꾸러뜨리고 (周)나라를 세운 전쟁영웅들이었음을 밝혔다.
강태공은 바다와 맞닿아 있고, 기름진 토양을 갖춘 제나라 제후로 봉해져, ‘신상필벌’을 통치철학으로 삼아, 나날 나라의 기틀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六韜(육도)>와 <三略(삼략)> 병법서(兵法書)도 적기 시작한다. 80여 년 동안 독서로, 현장체험으로 익힌 바를 써 내려갔다. 일설에 의하면, 후대 강태공의 제자들 또는 추종자들이 적었다고도 하는 그 병법서.
그러는 사이 주공 단은, 자기 친형이며 초대 주나라의 왕이었던 무왕(武王)이, 집권 2년차에 이름 모를 병으로 병사(病死)하자, 무왕의 아들이자 자신의 5~6세의 조카를 성왕으로 옹립하여 7년 단임제(?) 섭정에 나서게 된다. 자기 형인 무왕의 유언을 받잡고 행한 섭정이었다. 왕실의 엘리트이며,‘ 도덕과 혈연’을 중시하고, 왕실 도서관에 틀어박혀(?) 통치철학을 익혀가던 이. 사실 여덟 형제들 가운데에서 가장 믿을만한 동생이라고 여겨, 문왕(文王, 서백 창) 둘째아들이었던 무왕은, 서열상 넷째인 주공 단한테 유언을 남겼을 터. 주공 단의 서약은 지난 호 제 2화에서 소개하였듯, ‘금등지사(金騰之司)’의 궤에 담겨 있었다.
주공 단의 고민과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칫, 그 많은 제후국으로부터, 패망한 상나라 유민들로부터 반란으로 인하여, 어렵사리 세운 나라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게다가, 철딱서니 없는 조카가 나라 경영을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았고... .
사심(私心)없는 주공 단은 견제 수준을 넘어,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한 위협은 현실화되었다. 상나라 유민들을 감시통제하라고 중앙정부에서 내보낸, 주공 단 형제들 ‘삼감(三監)’들이 모의를 하게 된다. 주동자는 문왕의 셋째아들이자, 주공 단의 바로 위 형님, ‘관숙 선’. ‘관숙 선’은 5남인 ‘채숙 탁’과 8남인 ‘곽숙 처’와 날마다 모여 반역을 꾀하고자 한다.
“ 저 놈, 주공 단은 어린 조카를 허수아비로 세워두고, 자기가 왕 노릇을 하고 있어. 언젠가는 자기가 나라를 다 차지할 거야. 그러니 우리가 저 놈을 처단해야 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 주모자 관숙 선은 여러 세력을 그러모아나가게 된다. 심지어, 자기들이 처단한 상나라 마지막 황제 주왕의 아들인 ‘무경 새록’과도 결탁하게 된다. 주나라 창업 당시 상나라 마지막 황제 주왕의 아들인‘무경 새록’을 살려두어, 제후 수준의 대접을 했던 것도 다소 의아스럽기는 하다. 화근(禍根)을 없애지 않고서, 왜 그리 너그러웠던고?
드디어 인류 최초의 내전(內戰)이 일어났다. 그 내전은 3년간 이어졌다. 주공 단은 탄식했다.
‘이건 아니야! 나는 ‘혈육과 도덕’만이 나라를 반듯하게 세울 수 있다고 여겨왔거늘, 동족상잔이라니! ’
그는 선조들 위패를 모신 ‘태묘(太廟)’에 밤마다 찾아가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 소식을 접한 제나라 제후 강태공은, 칼을 서슬 퍼렇게 갈아, 내전에 왕실 편에 서기에 앞서, 주공 단한테 서신을 보낸다.
“이 유약한 선비 주공 단, 네가 그토록 주창해온 ‘혈연과 도덕’을 바탕으로 한 국가 경영이 고작 이러한 것이냐? 본디 권력이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악마이거늘... . 네, 그 이상주의가 형제들 사이에 피를 부르고 만 게야! 통치는 ‘성과를 주는 이한테는 그에 합당한 이익을, 폐해를 끼친 이한테는 엄한 벌’만인 걸 정녕 모르나?”
주공 단은 3년여 내전을 통해, 형제들이 일으킨 반란을, 지략(智略) 등으로 진압하여 나라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실시간대로 군막(軍幕)에 보고되는 전시상황보고에서다. 전령은 수급(首級) 즉, 적의 머리를 주공 단한테 바친다. 그 수급은 ‘이젠 끝났구나!’하면서 도망가던 반란군 수장이며, 주공 단의 친 형님인 ‘관숙 선’의 수급이었다.
주공 단은 대성통곡하게 된다.
“형님, 권력이 무엇이기에요? 이 무슨 참극입니까?”
이 소식을 들은 제후국 제나라의 강태공의 서신(書信)이야말로 냉혈한(冷血漢) 그대로였다.
“주공 단, 그리도 좋더냐? 네 그 눈물마저도, 아닌 척 하면서 권력을 탐한 데서 비롯된 게야 ! 다시 이야기하지만, 권력은 부자간에도 서로 나눌 수 없는 서슬파란 칼날인 게야!”
그길로 주공 단은 더욱 더 ‘인륜과 도덕과 정의’에 관해 파고들게 된다. 어떻게 하면 수백 만 상나라의 유민들과 제후국들을 통합할 수 있을까 하고서.
주공 단은 신도시를, 그것도 자신이 설계하여 만들게 된다. 그 신도읍의 이름은 ‘낙읍(洛邑)’. 그 새로운 도읍에, 상나라 유민들을 강제로 불러들여 살게 한다. 처음에는 반발심 많았으나, 주나라의 예법 등에 차츰 새 나라 주나라에 동화(同化)되어 나가게 된다. 주공 단이 꿈꾸어 왔던 ‘도덕과 혈육의 나라’의 기틀이 다져져 나갔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나라’로 바로 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학구파였던 그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을 개척해내고 신료(臣僚)들앞에서 힘주어 선언하게 된다. 그 요지는 이러하다.
“ 상나라가 우리한테 망한 것은, 그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오. 그 부패하고 향락이었던 게 결정타였다오,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라도 당신의 뜻을 거역하면... .”
그러자 제나라 제후로 지내던 강태공이 또 다시 주공 단이 개발한(?) 그 ‘주나라 정통성에(?)’ 태클을 건다.
“주공 단, 너는 머리가 참으로 좋구나. 그 논리로, 네가 어린 성왕 뒤에서 비단옷을 입고서 섭정하면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게 눈에 선히 보이는구나. 본디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 하여간 ‘신상필벌’만이 정답인 게야!”
주공 단은 진심이었다. 나라를 제대로 세워서 영구히 후대들한테 물려주려했다. 밤잠을 설쳤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미음으로 끼니를 때우고, ‘삼감의 난’으로 전장에서 숨을 가둔 친형 ‘관숙 선’의 원망어린 악몽에도 시달렸다. 그러했음에도,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관절염, ‘눈 침침’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고 ‘새롭고 이상적인 나라’의 법령 등을 적어나가게 된다. 그렇게 적어나간 것이 후대에 이르러 ‘주례’와 ‘예약’.
주공 단, 그는 나라 경영에 도움 될 아이디어를 전해주겠다는 현인(賢人)이 궁궐에 오셨다는 소문에, 식사 중에 먹고 있던 입안의 밥을 뱉어버리고 모셨다. 하루에도 수 천 건 들이닥치는 상소도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를 감다가도 물 뚝뚝 떨어지는 머리채를 잡고서 상소문을 읽었다.그처럼 그는 세상의 인재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유명한 ‘토포악발(吐哺握髮)’.
한편, 그는 나이어린 조카 ‘성왕’이 철딱서니없이 굴 때면, 차마 천자(天子)의 종아리에 매질을 할 수 없어, 자기의 아들인 ‘백금’한테 회초리를 가했다. 그것은 대벌(待罰)이었다.
“너는 천자의 사촌이고... ‘도덕과 법도’에 어긋한 짓을 더는 해서는 아니 된다.”
후일 그는 아들 ‘백금’으로 하여금 제후국 ‘노나라’를 맡겼다. 그 노나라에서 어느 무속인 부인의 아들, 공자(孔子)가 태어났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가 깨우친 점도 우연은 아니고.
잠시 쉬어가기. 거슬러, 주공 단의 부친인 ‘서백 창(사후 그의 둘째아들이 주나라를 창건한 무왕이었고, 그 무왕이 부친을 ‘문왕’으로 추존하였다.)’의 생애를 더듬고 넘어가야 한다. 후세 노나라 출신인 공자 이야기로 이어지자면, 이는 필연코 이야기해야 할 점이라서... .
‘서백 창’은 상나라 마지막 황제인 ‘주왕’로부터 7년간 감옥살이를 하였고, 그 감옥에서 도륙된 첫아들 ‘백읍고’의 살점으로 끓인 국을 먹었다고 이 글 제 1화에 적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7년간 감옥살이를 하였다, 그 7년 동안 전설상의 제왕인 ‘복희(伏羲)’의 이론을 더욱 더 다듬어 <周易(주역)>을 적었다. 그 < 周易>에서 ‘ 周-’는 주나라를 일컫는다.‘-易’은 ‘변한다’,‘쉽다’,‘어기다’를 두루 뜻하는데... . 감옥에 갇혀 있는 서백 창 자신은 언젠가 (세상이 변해서) 풀려날 것이리라는 데서 그 사상은 출발했다고 해도 된다. 그가 복희의 사상을 보완해서 적은 < 周易>이, 그의 넷째아들인 ‘주공 단’에 이어져 정치철학이 되었고... 후일 노나라의 공자한테까지 대물림되었음을 이 글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요컨대, 공자는 지금 내 나이와 똑 같은 70에 이르러서야 탄식했다.
“진즉, 내가 나이 50 정도에서 이 <周易>을 공부하였더라면... .”
공자는 이 글 주인공인 ‘주공 단’을, 왕위찬탈자가 아닌 충신이었음을 들어, 무척 존경했단다.
내 이야기 물꼬를 다시 돌린다.
‘아, 그런데 글이 길어지면 독자님들 ‘왕짜증’이실 테니, 다음 호에 이어가려 한다.’
작가의 말)
이 글 적는 내내 생업에 열중이신 나의 귀여운 뮤즈만 생각했다. 얼른 써서 바쳐야지 하면서.
그대께 공손히 바쳐요. 나 숨쉬는 순간까지 글짓기는 이어갈 테요. 막걸리 세 통만 마셨어요. 사랑해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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