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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商鞅) - 한비자(韓非子) - 마키아벨리(Machiavelli) (1)수필/신작 2026. 6. 21. 13:41
상앙(商鞅) - 한비자(韓非子) - 마키아벨리(Machiavelli) (1)
윤근택(수필가/ 수필평론가/ 문장치료사/ 음악 칼럼니스트)
들어가기)
‘평행이론’이란 게 있다. 평행이론이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의 운명이 같은 식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을 이른다.
위 제목으로 삼은 삼인(三人)의 삶이야말로 평행이론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가 굳이 ‘줄표(-)’로 그들 이름 사이를 표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사상 내지 철학의 계보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고인이 된 그들은 저마다 독창적이었다고 우겨대겠지만, 물리적 나이로 따져, 자기네들 ‘누린 나이’보다 더 많이 살아온, 나이 칠십에 이른 내가 경험상 그걸 정말 모를까? 그들 공히 ‘제왕학’ 내지 ‘군주론’을 폈으나, 그 내용들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우선, 맛보이기로 그들 출몰 년을 각각 소개하기로 한다. 상앙은 BC 390~BC 338(향년 52세), 한비자는 BC 281(?)~ BC 233(향년 48세), 마키아벨리는 AC 1469~ AC 1527(향년 58세)이다.
자, 지금부터 ‘고고씽씽’이다.
1. 상앙
그는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왕의 서얼이었다. 서열상 왕이 되기에는 아예 글렀던 사람이다. 불만세력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그는 어릴 적부터 그는 형명학(形名學) 즉, 법치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실 그의 사상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전대(前代) 어느 사상가의 기초이론을(?) 연구하여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는 위나라 재상이었던 ‘공숙좌’ 비서로 근무하게 된다. 위나라 혜왕이 어느 날 공숙좌가 노환으로 누워 있었는데, 문병(問病)와서 묻게 된다.
“공(公), 후임 재상은 누구가 좋겠소?”
그때 재상 공숙좌는 왕한테 이렇게 고한다.
“제 휘하에 있는 상앙이란 젊은이를 뽑아 쓰소서. 만약에 그를 뽑아쓰지 않으시려면, 즉시 그를 처형하소서. ”
멍청한(?) 위나라 혜왕은 재상의 그 말뜻을 그때는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인재 해외 유출’로 인하여, 독(毒)으로 되돌아올 거라고 재상 공숙좌는 그렇게 경고했거늘... .
그 즈음 상앙은 이웃나라 ‘진 나라’의 젊은효공왕의‘구현(求賢)광고’ 즉, 구인광고를 접하게 된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이 나라 주나라를 강성대국으로 이끌 인재를 원한다.’
상앙은 달구지에 책과 전 재산을 싣고 국경을 넘어 진나라에 도착한다.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윤 수필작가가 주욱 그렇게 해왔듯, 명함판 흑색사진이 붙은 이력서를(?) 받은 재상. 그는 최종 면접관인 왕한테 2배수로(?) 상앙의 이력서를 제출하였겠지!
누가 면접관인지, 누가 응모자인지 마구 헷갈리던 3일차.
“대왕이시여, 이제야 대왕의 그 열정과 정복욕 등을 알게 되었나이다. 제가 그 기틀을 제대로 마련해드리겠나이다.”
상앙, 그는 효공왕한테 나라를 부국강병의 나라로 우뚝 세우는 강력한 병법을 제시한다. ‘농사와 군사력’만이 명쾌한 답이라고. 나라 전체를 무지무지한 ‘전쟁의 기계’로 만들어야한다고. 기존의 계급제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농작물을 나라에 많이 바치는 이라면 계급상승이 이뤄지며, 전쟁터에서 적의 목을 많이 베 오는 이라면 귀족이 되어야 한다는... .
효공은 그 기발한 착상에 쾌히 받아들인다. 효공은 상앙한테 재상급 지위인 ‘좌서장’자리에 앉히고, 강력하게 신법(新法)을 시행해나가라고 위임한다. 상앙, 그는 참말로 기상천외한 창의적인 신법을 만들어내었다. 그 신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결코 백성한테 왕실의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연극으로 한바탕 백성한테 보여주기로 한다.
그는 왕궁이 자리한 남문에다 커다란 나무(전봇대)를 세워두고서, 그 옆에가 방(榜)을 붙이게 된다,
‘ 이 나무토막을 저기 북문까지 옮기는 이한테는 금 10자를 주겠다. 상앙 장군 白(사룀).’
그 황당한(?) 방을 보던 이들은 도무지 믿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그 방은 고쳐졌고, 포상금도 금 50로 대폭 올려 있었다.
밑져도 본전이라고 나선 어떤 껄렁패가, 그 전주(電柱) 같이 생겨먹은 나무를, 끙끙대며 북문까지 옮겼고, 즉시 포상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이목지신(移木之信)’. 즉, ‘나무를 옮김으로써 나라가 ‘사기’가 아닌 ‘신뢰’를 보여주었다는 ... . 상앙은 그 연극을 통해, 백성으로부터 신뢰감을 획득하였고, 자기가 만든 새로운 법령 시행에 탄력을 붙인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상앙의 신법 핵심은, ‘농사와 전쟁’이었다. 여태껏 인의(人義)이니 도덕이니 유학이니 따위는 우스꽝스럽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고. 상앙은 강력한 신법의 시행과 공포 분위기 만들기만이 군왕(君王)의 권위확립과 국가번영에 이바지한다고 굳게 믿었다. 해서, 그의 신법에는‘오십가제’·‘십오가제’·‘연좌제’· ‘요참형’·‘거혈형’·‘연좌제’·‘군공수작제’등을 두루 담았다.
그처럼 가혹한 법이 시행되자, 주나라는 인근국과 협곡을 끼고 있는 등 지정학적으로 아주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었음에도, 몇 해 아니 가서 춘추전국시대에서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자 과거 관습에 얽매어, ‘등 따습고 배부른’황족 등의 사람들은 반발하게 된다. 상앙은 그 약점을 노렸다. 자기가 만든 ‘신법’은 지위가 높은 이들한테부터 철저히 적용되어야한다고 선언하게 된다. 바로 그때 ‘시범 케이스’로 걸려든 이가 하필이면 ‘태자 사 ’. 태자 사는 곧 왕에 오를 이가 아닌가. 그런데 ‘태자 사’는 상앙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법(國法)을, 콧방귀 뀌면서 무시하게 된다. 이에, 상앙은 태자를 직접 벌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태자의 스승인 태자의 숙부, ‘공자 건’과 또 다른 스승 ‘공자 ?’을 체벌하게 이른다. 그들한테 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죄목을 씌어, 얼굴에다 먹물과 바늘로 문신을 새겨 넣고 만다. 몇 해 아니 가서, 태자의 숙부인 ‘공자 건’이 또다시 범법을 하자, 최대 권력자(?) 반열에 오른 상앙은 그의 코를, 공개적 처벌장소에서 베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세상이 온통 자기 나라인 것처럼.
또한, 상앙은 엄청난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자기 고국 위나라에 대한 보복. 설령, 자기의 능력 등을 몰라주었다하였더라도 그렇지! 인간적 도의는 아닌 듯하다. 그곳 상앙의 고국인 위나라에는 총사령관 ‘공숙 앙’이 있었다. ‘공숙 앙’은 같은 스승, 순자(荀子)를 모셨던 동문수학 관계였는데... . 상앙은 대군을 이끌고, 자기 고국인 위나라를 침공하게 된다. 밀서(密書)를 보내, 위나라 총사령관이자 옛 친구한테 이런 말을 적게 된다.
“옛 친구, 읽어보시게. 옛 우정을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서로 피 흘릴 게 뭣 있어? 둘이 만나 술이나 한 잔 하세나.”
그 말에 꼴딱 속은 위나라 ‘공숙 앙’은 술에 취해 있었는데... .
상앙은 참으로 잔인하였다.
“친구는 친구이고, 나라 간에 싸움에서 우정따위가 다 무엇이냐?”
공숙 앙은 포로로 잡히고... 상앙의 모국인 위나라는 그길로 망조(亡兆)가 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나라를 쥐락펴락하였던 상앙. 부메랑이여! 코가 베여 8년여 은둔하면서 복수심에 불탔던 ‘공자 건’과 그의 조카였던‘태자 사’. 무소불위였던 상앙의 뒷배였던 효왕이 죽자, 태자 사는 왕위에 올라 효문왕이 되었고, 상앙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리고... .
쫒기는 몸이 된 그. 그가 겪었던 여러 수모를(?) 이 글에 다 담기에는 분량상 넘쳐서... .
그는 정부군으로부터 목이 베여 죽었다. 그러했음에도, 본보기로, 새로운 황제 효문왕과 그의 코 베인 숙부, ‘왕자 건’으로부터, 도읍 ‘함양’에서, 그가 이미 살해된 몸이었음에도, 상앙이 늘 해왔던 대로 신법에 따라, 다섯 필의 말[馬)에 의해, 상앙을 ‘거열형(車裂刑)’으로 처형했다. 거열이란, 속칭 오마분시(五馬分尸)라는 고대의 혹형(酷刑)으로,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후 동시에 말을 몰아 잔혹하게 찢어 죽이는 형벌. 형을 당하는 사람은 사분오열(四分五裂)이 되었다.
아, 부메랑이여! 이를 두고서, 후세 사람들은 자기가 세운 법에 자기가 당한 정황을 두고서, ‘작법자비(作法自毙;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려 죽다)’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 그의 통치철학 내지 제왕학은 후대 통치자들한테, 후대 군주들한테 대물림되어 굳건한 통치철학 매뉴얼이 되었고, 그 매뉴얼이 왜곡 해석되어 오늘날까지 답습되어온다는 것을. 심지어, 이미 죽은 자신의 신체가‘거혈형’2차 형벌을 당했음에도, 지난 날 ‘태자 사’이며 ‘효문왕’이 된 이는 상앙의 통치철학을 재위기간 내내 적용했다지 않은가.
상앙, 그는 고작 향년 53세로, 자신이 개발한 형벌인‘거혈형’으로 잔인하게 생을 마무리하였다. 상앙. 그가 개발한 통치철학 내지 제왕학은 또 대반전. 그는 죽어가면서 혼자서 이렇게 말했을 듯.
‘너네들 말이야, 나는 죽어가지만, 내가 개발한 이 통치 시스템은 영구불멸 이어질 걸? 내 제왕학은 한 치 오차도 없을 걸? 앞으로 너네들끼리 서로 칼을 겨누게 될 거야! 진나라는 내가 개발한 이 법치주의로 이어갈 거야!’
사실 자기의 시신은 거혈형에까지 처해졌지만, 당시 앙숙관계였던 태자 사는 왕위에 올라 효문왕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효문왕은 상앙의 그 법치주의 사상을 효문왕 재위기간 내내 통치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천재였던 상앙이 개발한 ‘부국강병’을 위한 긍정적 개념의 통치철학은 대물림 되었다. 상앙의 통치철학은, 100여 년 후 ‘한비자’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서기 1500년대 저 이탈리아 피렌체의 소국(小國)‘메디치 가문’의 충견(忠犬)이었던(?) 마키아벨리의 그 시답잖은(?) <군주론>까지 이어졌으니... .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참으로 열정적으로 삶을 이끌어가시는 나의 귀여운 뮤즈를 비롯한 애독자님들께 이 글 공손히 바칩니다.
특히, ‘225’, 당신을 사랑하오.
부디, 모자라는 부분은 채워서 읽어주십시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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