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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107)
    수필/신작 2026. 6. 30. 13:07

          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107)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108. ‘녹색혁명’의 주인공은

     

       때는 1970년. 그분 부인은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박사님께서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혔습니다.”

       그분의 부인은 남편이 전화조차 받지 않자, 운전기사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먼지 나는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멕시코의 오지(奧地) 그분의 시험농장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분의 시험농장에 이르러서야 겨우 통화가 이뤄졌다.

       “여보, 당신이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셨대요. 스웨덴 당국에서 시상식에 오시래요.”

        그분의 반응은 의외였다.

       “나, 아주 바빠. 할 일이 태산이야. 누군가가 장난질하는 거겠지?”

       뒤늦게 두어 시간 걸려, 언론사 취재진들이 그분 시험농장으로 취재차 달려갔다.

       대체, 그분이 누구? 그분이 바로 ‘노만 볼로그(Norman Borlaug, 1914~2009,향년 95세,미국)’이다. 이미 지난 제 106화에서 맛보이기로 이렇게 소개하였다.

     

       <(상략) 록펠러재단은 멕시코에다가는 ‘IITA’즉, ‘국제열대농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미국 출신,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1914~2009(향년 95세)’박사가 그곳에서 ‘난쟁이밀’을 육종해내어, 수억 명의 인류를 한 방에 기근에서해방시켰다. 1970년 그분은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부득이, 그분이 ‘녹색혁명’을 일으킨 이 ‘난쟁이밀’에 관한 스토리는 다음 호에 적기로 한다.(하략)>

     

       그분은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인데, 어려서부터 농사를 배우고 부모의 농사를 도왔다. 어떤 농장의 풀은 무성한데, 또 어떤 농장의 풀은 아주 엉망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공황시절 미국 남부의 굶주림도 제대로 체험했을 듯.

       그분은 미네소타대학교 ‘임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어, 임학과? ’

       이 글을 적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필작가 윤근택도 ‘국립대학교인 충북대학교 임학과’출신이라는 점.

       그분은 재학시절 식물병리학자 ‘ 엘빈 스타크먼’을 만나, 전공을 바꿔, 식물병리학과 유전학으로 1942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제2차 세계대전시에는 듀퐁사에 입사하여 전쟁물자 개발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듀퐁사에서 근무하던 2년 뒤 록펠러재단의 ‘멕시코 농업프로그램’ 즉,‘IITA(국제열대농학연구소)’연구원으로 가게 된다.

       당시 시대상황. 전후(戰後) 베이비 붐 즉,‘ 알까기(?)’풍성해지자, 먹을거리(제발 다들 ‘먹거리’라고 모국어를, 오용하거나 오염시키지 마시길.) 가 부족하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그분은 멕시코 연구실 현장에서, 부인한테 쓴 최초 편지는 충격이다.

       “여보, 무엇을 어디서 출발해야할지 나는 모르겠어!”

       실험실보다는 멕시코의 ‘소노란 사막’에서 종일토록 뙤약볕 아래서 신품종 밀을 육종해내려고 애썼던 그분. 그분은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난쟁이 밀’을 육종해내셨다. 수확량은 3~4배, 병충해에도 강한 그 ‘난쟁이 밀’. 그 ‘난쟁이 밀’은 곧바로 멕시코를 밀 수출국으로 만들었고,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하여금 밀 자급률 100%에 닿도록 하셨다. 그분께서는 총칼 대신 ‘난쟁이 밀’의 씨앗 하나로, 1억 명이 넘는 인류를 구제하셨다.

       노만 볼로그, 그분께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시도 하고, 2007년에는 미국 의회가 미국 시민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 골드메달’도 수상하셨다.

       그분께서 95세로 세상을 뜨시기 전 손자한테 들려준 유언은 진짜 감동이다.

       “얘야, 세상에 배고픈 채로 침대에 눕는 아이는 없어야 해.”

     

     

       작가의 말)

     

       우리가 먹는 한 톨의 곡식도, 뜻있는 육종학자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나의 사랑’도 ‘쟁취’가 아닌, ‘오랜 인내의 끝 얻음’이겠지요.

       멀쉬 세리!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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