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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수필/신작 2026. 7. 7. 17:20
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7월 들어, 오디오 북·유튜브·위키백과 등을 통해 자나깨나 가열차게, 심지어 잠자리 머리맡에도 ‘홍진영 가수’의 노랫말처럼 ‘밧떼리(배터리)가 다 되었나봐요’식으로 휴대전화기를 켜놓고,‘실크로드’를 공부하고 있는데,이 공부는 대체 언제 또 끝날지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탐구해야 할 분야는 끝도 없는 터에. 나이 칠십에 이르러서야 공부가 이처럼 재밌을 줄이야! A4용지에 연필로, 볼펜으로 노트를 해가면서 익혀가는데... .
0. 우선, 일본 NHK 다큐 <실크로드>(1980~1989,3부작. KBS는 1989년에 1부, 2부를 옮겨서 방영함.)의 테마곡인 ‘키타로(Kitaro,1953~ , 일본)의 <대상의 행렬(Carvan sary>을 이 글 마감하는 날까지 배경으로 깔아두고서.
1. ‘장건(張騫)’으로부터 출발
때는 중국 한나라 7대 왕 무제(武帝) 재위시절(BC 141~BC 87).
젊은 황제 무제는 나날 고민하였다. 인근에 흉노족이 있고, 그들 흉노족은 시도 때도 조공 바치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침략해오기도 하고... .
해서, 묘안을 구상하게 된다.
‘흉노족 너머에는 평소에 흉노족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서역의 대월지(大月氐) 나라가 있다던데, 그 나라와 군사적인 동맹을 맺으면... . ‘샌드위치 작전(?)’ 내지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니... .’
왕의 그 깊은 뜻을(?) 받들 신하가 선뜻 나서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나이 서른에 못 미치는 하급관리 하나가 선뜻 손을 들게 된다. 바로 그가 ‘장건’이다.
“대왕이시여, 저를 포함해서 사신단 100여 명만 붙여주신다면, 제가 그 일을 해내겠나이다. ”
무제는 장건의 그 기개에 놀라워하며, 징표를 장건의 품에 안겨주었다.
잠시. 당시 흉노족이 처했던 상황도 언급함이 좋겠다. 그때 중국의 서북방 지역에 있었던 흉노족은 초원 지대를 이동하며 말, 양 등을 키우는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에,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곡물을 확보해야만 했다. 자연 약탈만이 ... . 반면에, 중국은 농경지대가 발달하여, 곡물을 경작해 먹고사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중국에서는 가을 수확을 마치고 나면 북방의 흉노족이 침략해 올 것을 두려워해서 하던 말이 ‘천고마비(天高馬肥)’다. 요즘은 그 말이 와전되었지만, ‘하늘이 높은 가을날[天高]에는 북방의 흉노족이, 말[馬]을 살찌워[馬肥] 침략을 해올 거라고 저어하는 말[言]이었다.
BC 139년에 장건은 흉노족 첩자인 감보(甘父)와 함께 서역으로, 비단 장사를 다니던 길인 실크로드를 따라 대월지로 가던 중 흉노에게 잡혀 억류됐다. 장건은 흉노 여인과 결혼,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10년 만에 흉노에서 탈출, 대완(大宛)을 거쳐 대월지에 도착했다.
당시 대월지는 물산(物産)이 풍부한 서역의 ‘소그디아나’ 지방에서 비교적 잘 살고 있었기에 흉노에 맞서 힘을 합쳐 싸우자는 무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사적인 동맹을 맺고 오라는 무제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장건. 자기 고국 한나라로 돌아오던 중 흉노에게 다시 잡혔다. 장건은 1년 만에 흉노를 다시 탈출, 한나라로 돌아와 대월지가 흉노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무제에게 보고했다. 13년 만에 귀국.
“대왕이시여, 저는 대왕의 뜻응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아직도 그 밀지(密旨)를 품에 이렇게 간직하고 있나이다.”
그의 애국심이여! 충심이여!
무제는 무척이나 기특해 했다. 장건은 대월지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던 군사적인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서역으로 가는 교통로 주변에 있는 안식(安息, 파르티아), 조지(條枝, 시리아), 여헌(黎軒, 로마 제국) 등 여러 나라의 사정과 문물을 보고 들은 것을 무제에게 보고하였다.
이때 특히 서역의 말[馬]에 관심이 많았던 무제는, 장건이 보고한 정보사하을 토대로, 대완 지방에서 생산되는 명마인 한혈마(汗血馬)를 얻기 위해 이광리(李廣利), 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과 같은 명장을 서역에 보내 영토를 확장하는 등 이후부터 흉노를 고비사막 이북으로 몰아내고 서역과의 교역로를 확보했다.
이처럼 서역을 다녀온 장건을 실크로드의 개척자라고 부르게 된다. 사실은 장건이 기록상 실크로드 개척자였다는 설이 있다. 이미 실크로드를 왕래하는 상인들이 있었다는데... .
(다음 호 계속)
차시예고)
교역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와 그곳을 중심으로 오아시스 지방에 살았던 , 장사의 귀재들‘소그드족’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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