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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3)
    수필/신작 2026. 7. 13. 17:04

      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3. 돈황(頓煌;둔황)

     

      나의 고운이,

      나는 지금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에 왔다오.

      그대께서는 또 전화상으로, 문자메시지로, e메일로 이렇게 말하겠지요.

      “하여간, 홍길동 같은 분! 도저히 당신을 말릴 재간이 없군요. 세계도처를 아니 쏘다시는 곳이 없군요. 나더러 ‘간접 문화체험’을 돕고자, 부러 그렇게까지 애쓰시다니요! 매양 당신께서 저를 위해 글 짜내시느라 지칠세라, 그게 한걱정이에요. 그 또한 스트레스가 될까봐서요. 근데요(그런데요) 그곳 돈황은 또 어떤 곳인가요?”

       사랑스런 나의 여인,

       미리 말하겠는데요, 그대의 ‘니니’는요, 역사학자도 아닐뿐더러 고고학자도 아니지 않아요?대신, 나는 수필작가라도 빼어난 수필작가이니, 아주 인상적인 장면(?) 하나만 포착하여, 그걸 물고 늘어져 살찌워 수필이란 형식으로 글을 적는 데에 만족해해요.백화점식 이야기’는 참으로 곤란하지 않아요? 이 점 그대도 익히 아시지 않아요? 게다가, 거대한 중국의 그 오랜 역사,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했던 그들 왕조의 역사까지 다 챙겨보자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니까요. 한마디로, 인구(人口) 즉, ‘인간의 주둥이[口]’가 많으니, 그 많은 백성의 구미를 다 맞출 수 없어왔던, 대책 없는 그들 족속들. 오죽 답답했으면, 춘추전국시대에 공·맹이 태어나, “(군주는) 이러저러하면 아니 된다.”고 씨부렸겠어요? 그들은 한낱 이상주의자들이었을 따름. 보다는, 정치현실을 제대로 알았던, ‘상앙 -한비자 - 마키아벨리’ 계보의 통치철학 내지 군주론이... . 사실 인류의 역사는요, 유사 이래 칼자루 잡은 놈이 ‘좌지우지x지’다 해왔던 거에요. 이는 동서고금 역사를 새삼 공부하다가 얻은 거에요. 정의? 그거 웃기는 말이더군요. 정통성? 그 또한 웃기는 이야기더군요. 하더라도, 나는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까지는 아니니, 그대께선 일단 안심하소서.

       나의 고운이,

       페이지 넘기고... 지금부터 돈황을 소개하지요.

      ‘막고굴(莫高窟;둔황석굴)’로 유명한 곳이에요. 중화인민공화국 간쑤 성 둔황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어요. 기원전 전한 시대 불교 유물부터 당나라 후기까지 불교 유물이 시대별로 폭넓게 있어요.

       내 사랑하는 그대,

       이곳 근처에는 ‘밍사산[鳴砂山]’이 있어요. ‘명사산’은요, 말 그대로 고운 모래사막이 수시로 바람에 의해 ‘(아름다운) 울음[鳴;노래]을 토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에요. 본디 사막이 그러하듯, 그 모습을 가끔씩은 달리하지만, 초승달 모양으로 수천 년째 그 모습 비교적 안정되게 굳어진 상태에요. 이 명사산 동쪽 벼랑에는요, 남북으로 1,600m에 걸쳐 조성된 막고굴(莫高窟), 서천불동, 안서유림굴, 수협구굴 등 600여 개의 동굴이 있고, 그 안에 2,400여 개의 불상이 안치되고 있어요. 벽 한 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총 면적은 45,000km인 걸요. 둔황 석굴, 둔황 천불동이라고도 하며, 막고굴은요, 광의의 의미에서는 전부를 포함하기 때문에 간단히 ‘막고굴’이라고도 해요. 이 막고굴이 만들어진 시기는요, 오호 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지배하에 있던 355년 또는 366년으로 추정되며, 승려 ‘낙준’이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 1,000여 년에 걸쳐 조성되었대요.

      사랑하는 당신,

      그들이 왜 1,000여 년, 왕조를 이어가며, 대를 이어가며 그러한 작업을(?) 이어갔겠어요? 돈황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고, 사방(四方) 교역을 오가는 낙타 대상(隊商)들이 잠시씩 머물렀던 곳. 사막 가운데에 오아시스가 있으니... . 불교 구도자들은, 인도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실어온 경전을 토대로... . 구도자들은 ‘대상’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렇게 부처상을 조각하고... 숱한 난리통에는 부처님의 그 가르침이 적힌 경전을 감추어두고자 하지 않았겠어요? 실크로드 즉, ‘대상의 행렬’이 그러한 문화 유적지를 만들게 한 거에요.

       내 고운이,

       한 번 생각해보셔요. 무려 1,000여 년 이어온 그 기도의 산물들. 해서, 돈황은요, 막고굴은요,현대에 이르러‘불교예술전시장’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심지어, <돈황학>이란 학문도 생겨났어요.

       내 사랑하는 당신,

       1,500여 년 이어왔던 실크로드가,‘해양실크(?)’로 바뀌자, 교역의 중심지였던 둔황은 완전히 쇠퇴한 도시가 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막고굴은 잊힌 존재가 되었어요. 그런데요 요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반전’이 이뤄졌어요. 1900년, 둔황의 문헌이,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되면서부터에요. 1900년 6월 22일 둔황 석굴을 지키던 태청궁 도사 왕위안루(왕원록)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이상한 공명음을 듣고는, 막혀 있던 밀실을 발견하였어요. 길이 2.6m, 높이 3m의 이 석굴에는 5만 점의 고문서가 잠들어 있었어요. 그리하여 둔황 유물의 정수이자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제17굴(장경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이곳의 유물은 4세기에서 11세기에 걸친 오호십육국 시대에서 북송까지의 고문서와 고대악기, 고화, 고서 등등이었어요.

       1907년 박물학자, ‘아우렐 스타인’이 이곳을 관리하던 도사 왕위안루(왕원록)에게 소액의 기부금을 주고, ‘장경동’에서 약 7,000점의 유물을 유출하여 대영박물관에 가져가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어마어마한 숫자지요? 그의 연구는 다시 <둔황학>이라고 이름 붙여지게 되어 오늘에 이른대요.

       한편,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또 한 번 7,000여 점의 유물을 프랑스로 유출하게 되는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여기에 묻어져 나간 것이래요.

       내 고운이,

      이 연재물 제 1화에 소개했던 ‘한 무제’와 하급관리‘장건’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세요, 지혜로운 한 무제가, 흉노족을 물리치려고 대월지국에 사신으로 보냈던 장건이, 13년 만에 빈털터리로 귀국하여 보고한 바를 결코 허투루 여기지 않았어요. 사실 장건은 그때 서역에 관한 엄청난 정보를 왕께 보고했던 거에요. 그 가운데에서 ‘천리마’로 일컬어지는 서역의 ‘한혈마(汗血馬)’를 길러, 흉노족을 멀리 달아나게 한 것은 그들 세력으로 보아, 장건의 빼어난 업적이지요. 제삼자인 대한민국 윤근택 수필작가한테는 그마저도 심드렁하지만요. 어디까지나 죽든 살든 ‘즈그들(자기들) 문제’이니까요.

       내 고운이,

       내 이야기 샛길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이야기 고삐 바투 잡아야겠어요.

       이곳 돈황은요, 한 무제가, 사신으로 보냈던 충신 장건의 13년 만의 귀환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세운 교역 거점도시였어요.

    너무도 보고픈(사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대,

       사실 내가 이곳 돈황에 관해 집중탐구한 지도 일주일이 넘어요. 그 많은 스토리는 인터넷 검색창에다 토닥이면 금세 알 수 있겠으나, 그대의 ‘니니’는요, ‘실크로드’, 그 몇 세기 동안 서역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구하는 불교 승려들이나 많은 순례자가 이곳을 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막고굴이라는 수 천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동굴 불교 유적을 만들게 했다는 것만 기억해요. 이곳은요, 실크로드를 지나간,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만든 역사적 사료를 가지고 있어요. 막고굴에서 발견한 방대한 양의 고문서나 유물을 해석하고 디지털 작업하기 위한 ‘국제 둔황 프로젝트’도 있대요.

       오, 내 고운이,

       오늘날 둔황 시는 매우 발전한 도시이며, 도시 중심에 수많은 호텔과 상점이 있어요. 기념품 가게에서 막고굴이나 주위 역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어요. 도시 중심에서 열리는 밤 시장은 관광객에게 매우 인기있어요. 이곳에서 옥· 보석· 도장· 작은 경전 등 실크로드와 관련한 다양한 기념품을 거래해요.

       수천 년 사막 속 오아시스에 자리한 둔황, 이 근처에는 모래 언덕 ‘명사산’이 있고... 여행객들과 순례객들은 낙타발굽을 베낀 장화를 신고, 사다리를 타거나 낙타 등을 빌리거나 하며 관광을 즐기는데, 그대의 니니는요, 다음 코스 ‘사마르칸트’로 가야 해요.

       사랑스런 그대,

       요다음까지 안녕!

     

     

      작가의 말)

     

      미완성작인 걸요. 수필작가 윤근택은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진실된 수필작가를, 나이 칠십에 이른 이날 이때까지 기다리고 있지요. 이는 비원(悲願)이겠지요?

      물론, 이 글도 내 고운이한테 바쳐요. 그녀는 4job을 하는 이에요. 그녀가 맘 같아서는, 이 글 스승인 나의 글을 베껴쓰기 하는 등 공부를 왜 아니 하고싶을까만... .

      나는 곧‘사마르칸트’로 갈 거에요. 잔인한 정복자, ‘티무르’가 수도로 삼은 그 사마르칸트로요.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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