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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5)수필/신작 2026. 7. 17. 12:43
윤 수필가, 실크로드를 걷다(5)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5. 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
때는 서기 751년 ~8월 사이. 고구려 유민 2세이며 당나라 장수였던 ‘고선지(高仙芝, ?~ 756)’가 일으킨 전투이다. 고선지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원정정복을 해나간다. 그는 이미 튀르크(돌궐)을 정복하였고, 747년에는 파미르산맥을 넘어 토번(티베트)까지 정복하였다. 거침없는 그의 정벌은, 751년에 이르러 광기(狂氣)의 절정에 이른다. 이미 항복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석국(현 우즈베키스탄 수도이여작은 나라였던 타슈겐트)을 침공하여 무고한 백성까지 도륙하는 한편, 석국의 왕 차비쉬 현종과 그의 아들을 당나라까지 끌고 간다. 차비쉬 왕은 처형되었다. 배신을 때린 고선지. 차뷔쉬의 아들은 서방으로 달아나서 여러 나라에 읍소를 한다. 여론을 조성한다.
“ 당나라는 믿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항복을 하더라도 끝내는 죽이고 맙니다. 그러하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렇잖아도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동방을 향해이슬람 세력을 넓히고자 꿈꾸던 아랍의 압바스왕조. 충분히 빌미가 되었다.
“ 그래, 한번 붙어보자. 실크로드의 패권은 이젠 우리가 누릴 차례야!”
당나라의 고선지는 군사력면에서는 절대우위에 있었다. 고선지한테는 군사연맹을 맺은 튀르키계 카를룩도 있었다. 그런데 대반전. 카를룩이, 배신자인 고선지의 행태를 알아, 돌변해서 압바스 카리파국에 붙어버렸다. 배신은 그처럼 곧잘 또 다른 배신을 낳는 법. 결국 고선지는 두 군사세력으로부터 협공당해 대패하여 퇴각했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는 이슬람화가 가속화된다.
참, 소제목으로 삼은 ‘탈라스의 전투’에 나오는 ‘탈라스’가 어떤 곳인지 소개하는 걸, 깜빡 잊고 지냈다. 탈라스는 현 키르기스스탄의 강(江) 이름이다. 그 강변 대평원에서 그들 양진영은 큰 싸움을 벌였다.
이 탈라스 전투가 우리 인류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그때 당나라 고선지가 그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동서간의 문물교류와 인적교류가 100여 년 늦춰졌을 것이다.”
이 무슨 이야기냐고? 그때 당나라 군인들 가운데에서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바그다드로, 사마르칸트로 가게 되었는데, 그 포로들 가운데에는 ‘제지(製紙) 기술자’들을 포함해서 고대 중국의 각종 장인(匠人)들이 섞여 있었고... .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문명의 발달과 지식의 평준화, 그리고 문화융합을 이룩해내곤 하였다.그렇다면 전쟁은 필요악? 하기야, 수년째 이어지는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그 어떤 화기(火器)도 아닌 ‘드론’으로까지 발전했으니. 특히, 이 ‘탈라스 전투’에서 고구려 유민 당나라 장수 고선지의 대패(大敗)는, 중국의 제지기술이 서역으로 쾌속(快速)으로, 빛의 속도로 전파토록 하였다.
더듬어 보자니, 우리네 삶은 모두 다 실크로드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입은 듯.
차시 예고)
로마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왕국(고대 이란고원을 중심으로 성장한 유목 민족)’을 쓰러뜨리 나섰다가, 파르티아 군대의 비단 깃발로 말미암아 전장(戰場)에서 패배하고... 자신은 전사(戰死)하고... 그 머리통은 파르티아 왕의 술잔이 되고... . 그 덕분에(?) 비단이 로마인들로 하여금 더욱 더 넋나가게(?) 한 이야기를 적으려 합니다.
작가의 말)
물론, 이 글을 적으면서도 내내 나의 유일한 뮤즈, 그대만 그리워했어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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